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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심리학-한국사회를 읽는 에리히 프롬 다시 읽기. 김태형 지음 1

현대인의 인간 소외 소외라는 단어에 민감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부모님과 동거를 했던 학창 시절, 가난이 짓눌렀던 상황이 버거워 도망을 치고 싶었지만 도망조차 돈이 드는 일이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가정에서 겉돈다는 느낌은 일종의 소외였습니다. 이런 소외는 어디서 생기는 것일까? 제 자신이 주체가 되지 못하는 상황이 소외라고 생각했습니다. 대학을 다니면서 통학거리가 멀고 버스를 갈아타야 하고, 버스가 늘 만원이라 어려움을 호소하여 자취를 하였습니다. 자유를 얻었습니다. 자유가 없는 삶은 소외된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가 저를 보살핀다는 핑계로 자취방으로 거처를 옮기자 저의 자유도 사라졌고 덩달아 제 생활은 간섭을 받았고, 소외되었다는 느낌이 다시 들었습니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책을 읽었..

매일 에세이 2024.01.30

한 사람의 마을. 류량청 지음. 글항아리 간행 5

그르친 일 한때 경로사상이 유난히 강조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경로석은 지금도 있습니다. 50대 늙은이들은 간혹 그 자리에 앉기도 하지만, 젊은이들은 좀체 그 자리에 앉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 한창 노인과 청년 사이에 다툼이 있을 때는 젊은이들도 의도적으로 경로석에 앉는 것을 본 기억이 납니다. 반발을 표시한 것이지요. 경로석보다는 임산부석을 만들라는 충고도 있었습니다. 경로석을 두고 노인들이 젊은이들을 버스나 지하철에서 훈계하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경로석에 앉은 젊은이들을 나무란 것인데 그 정도가 심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노인들이 권리로 인식하곤 자기의 권리가 침해당한 것에 대해 따지면서 젊은이들을 일반화해서 비난을 하는 것이 패턴이었습니다. 함무라비 법전에도 있는 말을 한 겁니다. “요즘 젊은..

매일 에세이 2024.01.30

한 사람의 마을. 류량청 지음. 글항아리 간행 4

봄의 걸음걸이 제가 3년 전에 농장주와 같이 보살폈던 사과 과수원은 고작 300주의 과수만 있는 조그만 밭입니다. 주말이면 반드시 내려가서 나무를 만나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새벽 동이 틀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밭에 있어야 했습니다. 매주 내려간다고 했던 계획도 틀어져 2주에 한 번 내려가는 것으로 바뀌다가 다른 일이 있으면 그 조차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 주를 쉬면 그만큼 밭일은 늘어나 있습니다. 일 년의 경험으로 그쳤습니다. 도저히 짬을 낼 수 없으니 남의 밭만 망치는 꼴이었습니다. 농장주의 건강도 나빠져 이웃의 다른 분에게 밭을 넘겼습니다. 서툴렀지만 그래도 바삐 보내며 과수를 다루는 방법을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불과 3년 전과 작년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냉해를 걱정하는..

매일 에세이 2024.01.29

한 사람의 마을. 류량청 지음. 글항아리 간행 3

쥐와의 공유경제, 다른 경험을 듣다 식량 자급자족이 초미의 관심사이고 다급한 국가 정책인 시절이 있었습니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 북한군 장교가 이장을 잘 따르는 주민들을 보면서 그 비결을 묻습니다. 이장은 간단하게 답을 합니다. “잘 멕여야 돼” 그 짧은 대사가 선답으로 들렸습니다. 정곡을 찌르는 답에 귀가 뚫리고 세상이 보였습니다.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는 정권의 정통성에 도전하는 국민들이 없게 하려면 굶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고 그래서 식량 자급을 위한 독려에 시간과 비용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모자라는 쌀을 대신해 보리쌀 밀 같은 잡곡을 섞어 밥을 짓게 하고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도시락을 검사하며 혼식을 강요했습니다. 쌀밥은 각기병을 일으킨다고 하면서 어린 학생들을 위협하기까..

매일 에세이 2024.01.26

한 사람의 마을. 류량청 지음. 글항아리 간행 2

꽃 한 송이에 미소 짓다 작가는 들판 비탈에 누웠습니다. 들판의 풀들이 모조리 꽃망울을 터뜨렸습니다. 풀이 산들바람 속에서 허리가 끊어져라 웃고 있습니다.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풀도 있고, 입술을 반쯤 가리고 웃음을 참으려 안간힘을 쓰는 풀도 있습니다. 작가 곁에 꽃 두 송이가 있습니다. 한송이는 작가를 보면서 얇은 분홍빛 꽃잎을 펼치는데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만 같습니다. 다른 한 송이는 고개를 돌려 얼굴을 가렸지만 웃음을 감추진 못합니다. 작가도 참지 못하고 웃기 시작합니다. 빙그레 미소 짓다가 하하하 웃음을 터뜨립니다. 황야에서 혼자 소리 내어 웃어보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고 합니다. 한 번은 밀밭 남쪽에 있는 풀 속에서 자다가 웃었습니다. 작가는 한 조각 푸르른 풀밭이 너무 좋답니다. 더없이 짙..

매일 에세이 2024.01.25

한 사람의 마을. 류량청 지음. 글항아리 간행 1

중국도 고향을 잃는 중인가 봅니다 류량청은 1962년 중국 신장 사완현에서 태어나 농사일로 잔뼈가 굵으며 자랐고 향토문학작가로 불리는 유명인이라고 합니다. 처음 책을 소개하는 내용을 접했을 때는 한 사람을 키우는 마을의 사람들을 얘기하는 책인 줄 알았습니다. 잘못 알았지만 ‘한 사람의 마을’이나 ‘한 사람을 키우는 마을’이나 둘러치고 메치면 형태를 틀어 숨겼던 말을 꺼낼 수도 있을 듯합니다. 가축을 키우며, 들을 일궈 농사를 짓는 마을 사람들과 섞이면서 일어나는 상념들은 나귀의 속에도 들락거리고, 토끼길을 쫓기도 합니다. 밀을 수확할 때는 밀과 대화하고 수확을 마무리할 때는 홀로 일하며 자신과 대화합니다. 마을 주위를 배회하던 사는 꼴이 변변치 못한 늑대와도 눈싸움을 하며 대화를 시도하기 조차합니다. 먹..

매일 에세이 2024.01.24

악의 평범성. 이산하 시집. 창비시선453. 7

이 세상에는 야만만 어둠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야만이 흔하지 않아 뉴스가 되고 짐승이 거리를 휘저으며 여기저기 흘린 침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아 기억에 남을 뿐입니다. 제 멋에 겨워 깔롱지며 돌아다니는 짓이 우스꽝스럽지만 누구도 입이 더러워질까 말을 하지 않을 뿐입니다. 평범한 시민은 그들을 피합니다. 젊은 시절 응징이 답이라고 느끼며 태권도를 배웠던 치기는 사라졌습니다. 그들을 무시하는 방법은 들을 말을 듣고 아름다운 것을 보는 것이 가장 효과가 좋습니다. 시인이 갈무리하여 들려주는 말이 '유언'이란 시입니다. 어둠 속에 둘 시가 아니라고 믿습니다. 유언 “구하고 난 나중에 나갈게. 우리 승무원은 마지막이야.” -故 박지영 승무원 “빨리 여기서 빠져나가.” -故 남윤철 단원고 교사 “내 ..

매일 에세이 2024.01.22

악의 평범성. 이산하 시집. 창비시선453. 6

세월호 유가족들이 단식 농성을 하는 바로 옆에서 치킨 먹방을 했던 짐승의 소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싶지 않아 귀만 씻었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주의를 게을리하면 짐승들과 마주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주경계를 게을리하면 안 됩니다. 이태원에서 사고가 났습니다. 이번에는 침을 질질 흘리며 먹이에 다가서는 야만의 생얼을 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또 눈을 버렸습니다. 익명의 죽음이 누운 빈소를 보았던 것입니다. 근조 리본은 뒤집어 달았다고 합니다. 야만의 침을 가린 마스크만 보였습니다. 시을 읽다가 본 야만은 시인의 위로가 있어 읽고 난 후 뱉어야 하는 가래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악의 평범성 1 “광주 수산시장의 대어들.” “육질이 빨간 게 확실하네요.” “거즈 덮어놓았습니다.” “..

매일 에세이 2024.01.22

내가 되는 꿈. 최진영 장편소설. 현대문학 간행 2

나도 네가 되는 꿈을 응원할게 교회를 갈 준비를 합니다. 오늘따라 교회를 가는 일이 거북합니다. 아이가 전한 이야기를 아내를 통해 들으면서 힘이 빠진 게 분명합니다. 화성의 동굴에서 해법을 찾는 것에 익숙한 남자는 힘이 빠졌습니다. 갈까 말까 망설입니다. 금성에서 공감과 투사에 익숙한 아내는 벌써 교회 갈 준비를 착수했습니다. 동굴의 외로움을 알기에 따라가기로 정합니다. 씻으려고 준비하는데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이미 아내를 통해 들었던 이야기를 아이가 시작합니다. 열심히 듣습니다. 아이가 얘기하는 중간중간에 추임새도 넣어보고, 나의 의견도 조심스럽게 얘기합니다. 아이가 내 의견에 관심을 두지 않으면 개켜 한쪽으로 밀어 두고 나의 이야기에 관심을 두면 가능한 아이가 관심을 가질 법한 단어를 사용하여..

매일 에세이 2024.01.21

내가 되는 꿈. 최진영 장편소설. 현대문학 간행 1

“네가 되었으면 해” 주말 아침 아내가 먼저 주방으로 나갔습니다. 일요일 간혹 같이 아침을 먹을 때면 제가 아침을 준비합니다. 포장된 사골 한 봉지를 냄비에 붓고 그만큼 물을 더합니다. 따로 멸치 다시물을 낼 필요가 없어 편합니다. 사골만으로 떡국을 끓이면 사골 국물이 너무 진해서 다음에 또 먹고 싶은 생각은 줄어들지만 물을 타면 언제든지 다시 먹을 자신이 생깁니다. 떡국의 맛국물로서 파는 사골은 그럴듯합니다. 물이 끓는 것을 보고는 물에 잠깐 담가 둔 떡을 넣는데, 아내가 둘째 아이와 한 시간 넘게 새벽에 통화를 하였다고 전합니다. 젊은 시절에는 아이를 키우는 것은 엄마의 몫이라고 분업을 선언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아이가 자라는데 큰 어려움이 생기지 않도록 꾸준히 경제적 지원을 해야 하는 일로 한정..

매일 에세이 2024.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