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간행 14

샤이닝. 욘 포세 장편소설. 손화솔 옮김. 문학동네 간행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면 신문지와 방송국에서 한 꼭지 이상의 기사를 내보냅니다. 대단한 상이라고 하지만 실제 얼마나 권위 있고 훌륭한 상인지는 실감이 잘 나지 않습니다. 각 부문에서 훌륭한 성과를 이룬 사람들에게 주는 상이라고 하지만 훌륭한 성과의 내용을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런가 보다’ 짐작만 합니다. 한때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면 출판사들이 급히 수상자의 작품을 출판하곤 했습니다. 그분들의 책을 몇 권 읽은 경험은 있지만 그게 그렇게 훌륭한 작품인지는 수긍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라고 해도 관심이 가지 않았을 겁니다.   욘 포세라는 노르웨이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라서 책을 고른 게 아닙니다. 책을 소개할 때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라는 소개는 보지 못한 ..

매일 에세이 2024.08.02

제발 조용히 좀 해요. 레이먼드 카버 지음. 손성경 옮김. 문학동네 간행

제가 좋아하는 운동은 테니스입니다. 공을 치는 것을 좋아합니다. 다행히 저의 아파트에는 코트가 있습니다. 저녁을 먹고 8시경, 코트에 나가면 아무도 없습니다. 박스볼을 치고 땀을 내는 일상을 매우 귀중하게 생각합니다. 아무도 없는 넓은 코트를 혼자 차지하고 있으면 부자가 된 기분입니다. 사람이 없으니 문제가 생길 일이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사람과 사람이 엮이면서 만들어집니다. 공에만 집중하는 시간은 나만의 시간이고 집중의 시간이며 무념무상의 시간입니다.   운동을 같이 하는 사람끼리 모이면 동호회가 됩니다. 테니스에도 동호회가 있습니다. 복식을 위주로 경기를 하니 같이 운동을 하는 사람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테니스를 치려는 공동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입니다. 이해관계가 생길 틈이 별로 없고..

매일 에세이 2024.07.25

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소설. 문학동네 간행 2

김연수의 소설집입니다. 이야기 속에 빨려 들지도 책을 놓지도 못했습니다.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제가 이야기를 이어서 정리해 보겠습니다. 글을 끊어 정리했습니다. 6. 내겐 휴가가 필요해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 불철주야 반정부 좌익세력을 축출하는 일에 전념했던 형사가 매일 도서관을 찾아 책을 읽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이 왜 중요한지, 반정부 좌익세력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그는 책 속에서 찾으려 애썼습니다. 그가 해변에서 죽음으로 발견되었을 때 그는 답을 찾았을까요? 그를 찾던 사람들은 그의 죽음에 안도하거나 아쉬워했을 수도 있지만 그를 이해하지는 못했던 모양입니다. 이해는 사라지고 이용은 넘치는 세상입니다. 7.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잊어버리려 ..

매일 에세이 2024.05.17

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소설. 문학동네 간행 1

김연수의 소설집입니다. 이야기 속에 빨려 들지도 책을 놓지도 못했습니다.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제가 이야기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 사랑했던 케이케이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알지만 왜 죽었는지는 모른 채 케이케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을 찾아온 외국인은 밤메를 찾습니다. 밤메인지 밤뫼인지 도대체 알 수 없는 곳, 케이케이가 어린 시절 송장헤엄을 치며 놀던 곳은 이야기로 들었던 곳과는 전혀 다른 산업단지가 조성된 곳이었습니다. 이곳을 찾아 낯선 나라로 왔던 여인은 가슴속에 불꽃만을 기억할 뿐 케이케이에 대해서는 더 알지 못합니다. 2. 기억할 만한 지나침 고3이 된 아이를 가진 두 집이 바다가로 여행을 왔습니다. 고3이 된 아이들이 시험을..

매일 에세이 2024.05.17

정본 백석시집. 고형진 엮음. 문학동네 간행 2

그림 같은 시를 소개합니다. 흰밤 넷성의 돌담에 달이 올랐다 묵은 초가지붕에 박이 또 하나 달같이 하이얗게 빛난다 언젠가 마을에서 수절과부 하나가 목을 매여 죽은 밤도 이러한 밤이었다 초동일(初冬日) 흙담벽에 볕이 따사하니 아이들은 물코를 흘리며 무감자를 먹었다 돌덜구에 천상수가 차게 복숭아나무에 시라리타래가 말러갔다 *무감자: 고구마 *돌덜구: 돌절구 *천상수: 빗물 *시라리타래:시래기를 길게 엮은 타래 하답(夏畓) 짝새가 발뿌리에서 닐은 논두렁에서 아이들은 개구리의 뒷다리를 구워 먹었다 게구멍을 쑤시다 물쿤하고 배암을 잡은 눞의 피 같은 물이끼에 햇볕이 따그웠다 돌다리에 앉어 날버들치를 먹고 몸을 말리는 아이들은 물총새가 되었다 *짝새: 뱁새 *닐은: 일어난의 고어 *눞: 늪의 평안 방언 흰밤은 핼로..

매일 에세이 2024.04.17

정본 백석시집. 고형진 엮음. 문학동네 간행 1

우선 ‘정본’이란 말이 제목에 왜 붙었는지 궁금했습니다. 백석은 분단 이후 북쪽에서도 얼마간 작품활동을 했지만, 백석 시의 본령은 그 이전에 발표한 작품들에 있다고 합니다. (4쪽) 백석 시에서는 방언과 고어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모두 표준어로 바꾸면 시의 맛이 사라지고 맙니다. 이상적인 것은 원본에서 오자와 탈자, 편집과정에서 일어난 착오만을 고치는 것인데, 그 밖에 백석이 당시 제정된 맞춤법 규정을 충분히 수용하지 않아 일어난 표기의 혼란도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백석 시의 원본에서 방언과 고어는 살리고 맞춤법 규정에 위배된 표기와 오 ∙ 탈자를 바로잡은 ‘정본’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 시집에 ‘정본’을 붙인 이유입니다. (4~5쪽) 김연수의 소설 ‘일곱 해의 ..

매일 에세이 2024.04.16

일곱 해의 마지막. 김연수 장편소설. 문학동네

1956년부터 1962년 일곱 해를 살았던 시인 백석(백기행)을 작가 김연수는 소설로써 기억합니다. 사람은 저마다의 정체성을 가집니다. 정체성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그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두리번거리며 당황하게 됩니다. 백석이 시를 쓴 마지막 기간이 1956년부터 1962년이었다고 합니다. 일곱 해의 마지막, 1962년에서 김연수의 이야기가 끝나는 이유입니다(백석은 1996년 사망했다고 합니다). 백석은 1912년 태어났고, 1996년 북한에서 죽은 시인입니다. 동족이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하던 전쟁통, 낙동강 전선까지 참전하여 인민군 종군기자로서 기사를 썼던 백석은 전쟁 후, 이념의 칼날이 사람을 난도질하는 북녘에서 시인으로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를 기억하며 작가 김연수는 ‘일곱 해의 마지막’을 기억..

매일 에세이 2024.04.09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김연수 소설. 문학동네 간행 4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 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고 라틴어로 된 학명을 줄줄 외우시는 보건소장님을 지켜본 아이의 추억담입니다. 어느 먼 아프리카의 오지에 있는 마을 같은 80번지 마을에 장티푸스가 퍼집니다. 하수도 시설도 없는 마을이라 조금 큰 도시라면 여기저기 한 곳 이상에는 있는 같은 이름을 가진 마을 ‘똥골’같이 위생상태가 좋지 못한 마을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80번지 대장쥐가 장티푸스를 퍼뜨린 원흉이라며 쥐를 잡아 하수구 구정물이 모이는 개천에 버립니다. 복개천 아래로 찾아간 보건소장님은 장티푸스균을 퍼뜨려 쥐를 박멸하려던 계획이 틀어져 쥐는 장티푸스에 면역을 가졌다며 장티푸스를 옮기는 종은 이 세상에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밖에 없다고 주민들에게 설명합니다. 신..

매일 에세이 2024.03.27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김연수 소설. 문학동네 간행 2

뉴욕제과점과 첫사랑 그리고 똥개는 안 올지도 모른다 가겟방이라는 말이 있던 시절입니다. 가게라도 얻으려면 집 보증금을 빼야 했습니다. 추가로, 덧붙여, 하나 더, 별도로 얻을 수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가게가 빵집이라도 되면 거기에서 책보 들고 나오는 아이는 보기 좋습니다. 술을 파는 가게에서 교복 입고 나오는 언니라면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미장원에서 나오기 싫어 사주경계 후 나오는 남학생의 마음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뉴욕에는 절대로 없을 법한 ‘뉴욕제과점’이 김천 어디쯤 있다고 해서 다를 바가 없었을 것입니다. 김천역을 나와 광장이라고 할 수도 없는 좁은 마당을 나와 뉴욕제과점이 있던 자리의 국밥집을 찾아가는 작가의 발길이 어딘가 익숙합니다. 김천역을 지나간 경험이 있어 그랬던 모양입니다. 김천역 옆 ..

매일 에세이 2024.03.27

섬에 있는 서점. 개브리엘 제빈 장편소설. 엄일녀 옮김

제가 다녔던 대학은 버스를 내리면 정문까지 백 미터 남짓 거리가 됩니다. 정문까지 거리의 양 옆에는 서점이 4~5개 있었습니다. 돈이 생기면 책을 사려고 들르곤 했습니다. 교양 수업을 하던 국어국문과 교수님이 교재를 판매하는 서점을 소개하면서 대학가에 서점이 자꾸 줄어든다며 대학이 이래서는 안 된다고 걱정을 하셨던 것이 기억났습니다. 서점 옆에는 찻집과 당구장 그리고 술집이 에워싸고 있었지요. 복사집도 기억이 납니다. 서점이 힘에 부쳐하던 시절이었지만 책을 친구처럼 곁에 두고 읽던 곳이 대학이었습니다. 교과서가 되었던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든, 서점에서 고래 힘줄 같은 제 돈으로 샀던 책이든 늘 책을 곁에 두는 곳이 대학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정문을 기준으로 해서 대학 구내와 밖의 공기가 달랐던 기억이 납..

매일 에세이 2023.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