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간행 18

희랍어 시간. 한강 장편소설. 문학동네 간행

희랍어를 왜 배울까? 남자는 왜 희랍어를 배웠으며 여자는 왜 희랍어를 배우려고 할까? 희랍어는 문법적으로 복잡하며 철저하게 문법을 지키는 언어라고 하는데, 그래서 배우기도 어렵지만, 그걸 배워 어디에 쓸까 막막하기만 한 언어 같은데 왜? 굳이 소설의 제목을 ‘희랍어 시간’이라고 정한 것은 어떤 의도일까? 나름 소설을 이해하려고 하지만 항상 벽에 부딪힌 듯한 느낌이 듭니다.   한강 작가의 글은 잘 읽힙니다. 문단과 문단의 연결에 어떤 저항감도 들지 않고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에도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않고 제 발로 따라나섭니다. 글쓰기를 직업으로 한 작가이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적절한 비유를 잘 섞어 글을 쉽게 이해되고 읽기가 편하기는 작가라고 다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이야기 속 주인공들..

매일 에세이 2025.02.10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김연수 소설. 문학동네 간행

“하나의 사실에 대한 단 하나의 이해와 서술이 불가능하리라는 회의, 숨어 있는 진실을 위해 거듭 반성해야 한다는 권고, 현실은 되풀이될 수 없듯이 결코 재현될 수도 없다는 관점이 김연수의 작가적 인식에 깊숙이 미만(未滿과 彌滿은 뜻이 반대입니다) 해 있어 작품 곳곳에서 모티프로 작용하고 사건에 대한 서술자의 의식으로도 풀려나가며 그의 서두 도입부 수법과 함께 여러 방법론으로 확산되고 있다.” (296쪽, 김병익 문학평론가 해설 중에서)  이야기가 소설이지요? 이야기라면 재미가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이 작가의 이야기는 읽기에 불편해요. 불편하니 이야기도 재미가 없지요. 그런데 재미가 없다고 하기에도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어요. 제가 미욱하니 어디서 왜 어떻게, 명확하지 않지만 땅거미처럼 드리우는 ..

매일 에세이 2024.12.13

이중 작가 초롱. 이미상 소설. 문학동네 간행

연작소설이라면 시간과 공간의 변화에도 등장인물들을 따라가는 데 힘이 덜 들 텐데, 어떤 이야기에도 작가의 집착에 가까운 관심이 떠나지 않고, 이야기마다 다른 듯, 같은 느낌이 떠나지 않으면 이야기들을 이어 붙이다가 떼어 놓기를 반복하여 읽고 따라가기 힘이 듭니다. 아무리 따라붙으려 해도 좁혀지지 않는 거리를 절망하는 마라토너가 된 기분입니다. 좋은 코치가 필요할 때입니다. 전승민 문학평론가의 작품 해설 ‘혁명의 투시도’가 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이야기가 어렵다기보다는 작가가 천착하는 주제가 저에겐 불편했던 모양입니다. 마치 안(전파)남이 된 듯하였고(334~337쪽) 두 딸을 가지면서 이해했던 페미니즘의 졸렬함이 드러나 괜히 작가에 대한 원망과 비난의 눈초리가 되었습니다. ‘혁명의 투..

매일 에세이 2024.12.03

성소년. 이희주 장편소설. 문학동네 간행

이야기를 쓰는 일이 간단하지만은 않다는 것은 짧은 이야기 한 편에 매달려 애를 써보면 알게 됩니다. 항상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것은 창작이 직업인 사람에게도 예외가 없을 것입니다. 시작은 재미있지만 갈수록 힘이 떨어지는 이야기가 있기도 하고, 시작이 별 흥미를 끌지 못하더니 갑자기 흥이 돋는 이야기도 있을 법합니다. 요즘처럼 비디오방을 가지 않고도 리모컨 하나만 있고 약간의 여유만 있다면 책 읽는 수고를 하지 않고도 썰을 푸는 영화를 볼 수 있습니다만 재미있는 영화를 찾기가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작가나 영화감독이나 참 어려운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의 이야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음을 잊지 마시고 파이팅 하시기 부탁드립니다.   연예인 출근길에 얼굴 한번 보자고 따라붙는 팬들이..

매일 에세이 2024.11.25

샤이닝. 욘 포세 장편소설. 손화솔 옮김. 문학동네 간행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면 신문지와 방송국에서 한 꼭지 이상의 기사를 내보냅니다. 대단한 상이라고 하지만 실제 얼마나 권위 있고 훌륭한 상인지는 실감이 잘 나지 않습니다. 각 부문에서 훌륭한 성과를 이룬 사람들에게 주는 상이라고 하지만 훌륭한 성과의 내용을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런가 보다’ 짐작만 합니다. 한때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면 출판사들이 급히 수상자의 작품을 출판하곤 했습니다. 그분들의 책을 몇 권 읽은 경험은 있지만 그게 그렇게 훌륭한 작품인지는 수긍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라고 해도 관심이 가지 않았을 겁니다.   욘 포세라는 노르웨이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라서 책을 고른 게 아닙니다. 책을 소개할 때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라는 소개는 보지 못한 ..

매일 에세이 2024.08.02

제발 조용히 좀 해요. 레이먼드 카버 지음. 손성경 옮김. 문학동네 간행

제가 좋아하는 운동은 테니스입니다. 공을 치는 것을 좋아합니다. 다행히 저의 아파트에는 코트가 있습니다. 저녁을 먹고 8시경, 코트에 나가면 아무도 없습니다. 박스볼을 치고 땀을 내는 일상을 매우 귀중하게 생각합니다. 아무도 없는 넓은 코트를 혼자 차지하고 있으면 부자가 된 기분입니다. 사람이 없으니 문제가 생길 일이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사람과 사람이 엮이면서 만들어집니다. 공에만 집중하는 시간은 나만의 시간이고 집중의 시간이며 무념무상의 시간입니다.   운동을 같이 하는 사람끼리 모이면 동호회가 됩니다. 테니스에도 동호회가 있습니다. 복식을 위주로 경기를 하니 같이 운동을 하는 사람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테니스를 치려는 공동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입니다. 이해관계가 생길 틈이 별로 없고..

매일 에세이 2024.07.25

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소설. 문학동네 간행 2

김연수의 소설집입니다. 이야기 속에 빨려 들지도 책을 놓지도 못했습니다.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제가 이야기를 이어서 정리해 보겠습니다. 글을 끊어 정리했습니다. 6. 내겐 휴가가 필요해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 불철주야 반정부 좌익세력을 축출하는 일에 전념했던 형사가 매일 도서관을 찾아 책을 읽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이 왜 중요한지, 반정부 좌익세력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그는 책 속에서 찾으려 애썼습니다. 그가 해변에서 죽음으로 발견되었을 때 그는 답을 찾았을까요? 그를 찾던 사람들은 그의 죽음에 안도하거나 아쉬워했을 수도 있지만 그를 이해하지는 못했던 모양입니다. 이해는 사라지고 이용은 넘치는 세상입니다. 7.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잊어버리려 ..

매일 에세이 2024.05.17

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소설. 문학동네 간행 1

김연수의 소설집입니다. 이야기 속에 빨려 들지도 책을 놓지도 못했습니다.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제가 이야기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 사랑했던 케이케이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알지만 왜 죽었는지는 모른 채 케이케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을 찾아온 외국인은 밤메를 찾습니다. 밤메인지 밤뫼인지 도대체 알 수 없는 곳, 케이케이가 어린 시절 송장헤엄을 치며 놀던 곳은 이야기로 들었던 곳과는 전혀 다른 산업단지가 조성된 곳이었습니다. 이곳을 찾아 낯선 나라로 왔던 여인은 가슴속에 불꽃만을 기억할 뿐 케이케이에 대해서는 더 알지 못합니다. 2. 기억할 만한 지나침 고3이 된 아이를 가진 두 집이 바다가로 여행을 왔습니다. 고3이 된 아이들이 시험을..

매일 에세이 2024.05.17

정본 백석시집. 고형진 엮음. 문학동네 간행 2

그림 같은 시를 소개합니다. 흰밤 넷성의 돌담에 달이 올랐다 묵은 초가지붕에 박이 또 하나 달같이 하이얗게 빛난다 언젠가 마을에서 수절과부 하나가 목을 매여 죽은 밤도 이러한 밤이었다 초동일(初冬日) 흙담벽에 볕이 따사하니 아이들은 물코를 흘리며 무감자를 먹었다 돌덜구에 천상수가 차게 복숭아나무에 시라리타래가 말러갔다 *무감자: 고구마 *돌덜구: 돌절구 *천상수: 빗물 *시라리타래:시래기를 길게 엮은 타래 하답(夏畓) 짝새가 발뿌리에서 닐은 논두렁에서 아이들은 개구리의 뒷다리를 구워 먹었다 게구멍을 쑤시다 물쿤하고 배암을 잡은 눞의 피 같은 물이끼에 햇볕이 따그웠다 돌다리에 앉어 날버들치를 먹고 몸을 말리는 아이들은 물총새가 되었다 *짝새: 뱁새 *닐은: 일어난의 고어 *눞: 늪의 평안 방언 흰밤은 핼로..

매일 에세이 2024.04.17

정본 백석시집. 고형진 엮음. 문학동네 간행 1

우선 ‘정본’이란 말이 제목에 왜 붙었는지 궁금했습니다. 백석은 분단 이후 북쪽에서도 얼마간 작품활동을 했지만, 백석 시의 본령은 그 이전에 발표한 작품들에 있다고 합니다. (4쪽) 백석 시에서는 방언과 고어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모두 표준어로 바꾸면 시의 맛이 사라지고 맙니다. 이상적인 것은 원본에서 오자와 탈자, 편집과정에서 일어난 착오만을 고치는 것인데, 그 밖에 백석이 당시 제정된 맞춤법 규정을 충분히 수용하지 않아 일어난 표기의 혼란도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백석 시의 원본에서 방언과 고어는 살리고 맞춤법 규정에 위배된 표기와 오 ∙ 탈자를 바로잡은 ‘정본’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 시집에 ‘정본’을 붙인 이유입니다. (4~5쪽) 김연수의 소설 ‘일곱 해의 ..

매일 에세이 2024.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