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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은 끝으로 이어진. 박승민 시집. 창비시선448. 4

당신은 저 사람들 안에서 당신을 볼 수 있습니까? 시인은 타인 안에서 자신을 봄으로써 타자와 함께 공동체를 이루며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108쪽) 그래서 그는 타인의 삶과 죽음을 시의 소재로 삼았나 봅니다. 그런데 ‘타자(타인)’는 ‘나’에게 낯선 것, 이질적인 것입니다. 세계에는 그런 것이 지천입니다. 박정희에서 박근혜로 이어지는 “패키지 상품”(번지점프)에 현혹된 것은 우리의 ‘적’이 아니라, ‘산으로 가는 밭’에서도 그렇듯 우리의 부모님이고 지인입니다.(109쪽) 그런데 타자 안에서 자신을 본다는 것이 말만큼 쉽지만 않습니다. 편이 갈렸는데, 사회적 지위가 다른데, 먹고 사는 데 차이가 있는데, 정치적 소신이 다른데 어찌 그런 사람에게서 자신을 볼 수 있겠습니까? 아니 어떨 땐 타인 안의 자신을..

매일 에세이 2024.02.06

끝은 끝으로 이어진. 박승민 시집. 창비시선448. 3

허 씨 노인에 이은 심만평(75세) 씨 소식 농사를 돈을 보고 짓냐? 그렇게 얘기하며 꼭두새벽에 밭으로 가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자식 입에 들어가는 밥을 보는 부모 마음이 그렇게 보기 좋다면서요? 그래서 자식들이 “그것 몇 푼 된다고 고생을 하십니까? 제가 버는 돈으로 쌀은 먹을 만큼은 되니 이제 그만 농사지으세요.” 자식의 타박 정도야 참을 만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추수 때면 바리바리 자식에게 보내는 아내의 손길에 자꾸 눈이 갔습니다. 그런데 변하지 않는 게 어디 있겠습니까? 허리 굽혀 밭만 보던 농부도 돈 계산쯤은 해야 사람대접받는 시절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돈이 되지 않는 밭은 해고됩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닌가 봅니다. 밭이 해고되다 쌀 이십 키로가 손자들 피자 네판 값..

매일 에세이 2024.02.06

끝은 끝으로 이어진. 박승민 시집. 창비시선448. 2

쓰러진 붉은 돌멩이 한알 6년 전의 기억입니다. 냉장창고 가득히 수확한 사과를 보관하여 내년 재미라도 보려고 했던 농부는 너도나도 같은 뜻을 품은 사람들로 인해 오히려 사과금이 내리는 불상사를 겪었습니다. 무주 만의 사정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봉화 만 평이나 되는 사과밭을 일구던 농부는 땅을 팔겠다는 결심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젠 힘들어서 못하겠다는 푸념이 일상이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도 무주와 봉화의 농부는 계속 사과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땅을 판 사과밭 주인 허 씨 노인의 근황이 알려졌습니다. 시인을 통해서 알려온 소식은 이러합니다. 쓰러진 붉은 돌멩이 한 알 밭 앞으로 도로가 뚫리자 땅값이 평당 삼십만원으로 뛰었다. 삽시간에 이십오년생 사과나무 수백그루가 베어지고 꿈틀거리며..

매일 에세이 2024.02.05

끝은 끝으로 이어진. 박승민 시집. 창비시선448. 1

산으로 가는 밭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슬픔을 말리다’는 대지적인 존재로서 흙에 매인 사람들을 주로 그렸다고 합니다. 시인의 관심이 이러할 진 대 이 시집이라고 다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가 가끔씩 다니는 무주는 산골입니다. 무주읍에서 30분가량을 차로 가면 거창과 김천에 접한 무풍면이 나옵니다. 행정구역은 전라북도이지만 억양은 경상도 냄새가 짙습니다. 전라도 단어와 경상도 억양이 서로에게 무던한 산골입니다. 1290미터의 대덕산이 허리를 타고 해발 500미터가 조금 넘는 금평마을로 굽이친 곳에는 사과밭이 가득합니다. 지금은 공투라고 불리는 포클레인이 사과를 지탱할 쇠막대를 박습니다. 돈이 없다고 인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작업차량이 없으면 손도 대기 힘듭니다. 포클레인 한 삽을 뜨면 붉은 흙..

매일 에세이 2024.02.05

싸우는 심리학-한국사회를 읽는 에리히 프롬 다시 읽기. 김태형 지음 7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젊을 때 여자를 정말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아내와 오랜 세월을 만났지만 데이터는 일 년에 세 번만 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 만나면 서로 좋았다가, 두 번째 만나면 뭔가 뒤틀리는 느낌이 들고, 세 번째 만나면 이별을 통보받았습니다. 같은 패턴으로 서른 번쯤 만나면 여자를 이해하고 싶어 지고 사랑의 기술을 배우고 싶어 집니다. 제가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골랐던 이유입니다. 명백한 실수입니다.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김 소장의 이 책을 통해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김 소장은 사랑을 ‘어떤 대상을 귀중히 여기고 아끼는 마음’으로 정의합니다. 이것은 단지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는 사랑이 아닌, 사랑 일반에 대한 정의입니다. 이에 비해 프롬은 사랑을 ‘사랑받는 자의 성장과..

매일 에세이 2024.02.02

싸우는 심리학-한국사회를 읽는 에리히 프롬 다시 읽기. 김태형 지음 6

프롬을 다시 읽는 이유 이제 이야기는 결론으로 치닫습니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가지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인간 심리를 김 소장은 설명합니다. 초기 자본주의를 지나 현대 자본주의에서 사는 사람들을 지배하는 감정을 설명하면서 고립감(추방의 공포), 무력감(복종과 의존과 학대의 연쇄들), 권태감(지옥이 있다면, 바로 이 무한한 권태감), 기타 감정들(무가치감과 회의감)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이러한 감정에서 자유로운 분들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상습적으로 계속해서 느끼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누구에게나 어느 때 불쑥 찾아오는 감정이라고 하면 지나칠까요? 사람에게 부정적인 감정이 극심해지면 그것을 방어하려는 동기가 그의 주요 동기가 됩니다. 부정적 감정의 비대화는 곧 고통이자 정신병의 본질이기도 하므로, ..

매일 에세이 2024.02.02

싸우는 심리학-한국사회를 읽는 에리히 프롬 다시 읽기. 김태형 지음 5

프롬의 정신분석학과 인격 이해하기 정신분석학에서는 인간 심리를 올바로 이해하려면 사람의 전체적인 인격(Personality)을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사람의 사고와 행동이 기본적으로 인격에 의해 좌우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그 인격에 의해, 일정한 방식으로 행위하고 생각하려고 하는 동기를 갖는 동시에, 그렇게 했다는 사실 때문에 만족하는 것이다’라는 프롬의 말은 이러한 정신분석학적 입장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신분석학은 대부분의 지식이 ‘저마다 하나의 감정적인 핵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 ‘감정적인 핵심은 개인의 인격 구조에 뿌리내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프롬은 ‘감정적인 핵심’을 단지 감정만이 아닌 동기와 감정을 모두 포괄하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결국 정신분석학은 지식이 차지하..

매일 에세이 2024.02.02

싸우는 심리학-한국사회를 읽는 에리히 프롬 다시 읽기. 김태형 지음 4

인간 본성 이해하기 인간 본성이란,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에게는 없는 속성이자 그것이 있음으로써 비로소 인간으로 되게 해주는 속성입니다. 사람에게만 있는 고유한 속성을 찾아서 그런 속성들 중에서 가장 근본적인 속성을 찾아내야 인간 본성을 규명할 수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사람의 본성 혹은 본질에 관한 문제는 심리학이 아닌 철학에서 다루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에 대한 연구가 심리학을 비롯한 여러 개별 과학들에 의하여 진행되긴 하지만 사람의 본성이나 본질에 관한 문제는 사람과 세계와의 관계를 다루는 철학에 의해서만 해명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 소장은 사람이 사회적 존재라는 인식을 가졌으므로 사회적 관계를 떠나 있는 순수인간-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에 대한 추상적인 논의에 바탕을 둔 철학에는 비판적입..

매일 에세이 2024.02.02

싸우는 심리학-한국사회를 읽는 에리히 프롬 다시 읽기. 김태형 지음 3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 ‘사람을 어떤 존재로 보는가’는 심리학의 근본 문제입니다. 사람을 동물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생물학적 존재로 보는가 아니면 동물과는 질적으로 다른 사회적 존재로 보는가에 따라 심리학 이론이 결정적으로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생물학적 존재다라는 주장과 사람은 사회적 존재이다는 주장, 그리고 사람은 생물학적 존재인 동시에 사회적 존재다라는 3가지 주장이 있을 수 있지만 김 소장은 다른 두 개의 주장은 결국 같은 것이라면서 사람은 사회적 존재라고 주장합니다. 이기적 유전자를 가진 동물인 사람, 개미, 벌 등이 자기희생적인 행동을 하면서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이유를 사람이 사회적 존재임을 인정하는 진화심리학자들은 종족 생존을 위한 맹목적인 방어 행동으로 설명하는데 이는 이성을 가진 동물..

매일 에세이 2024.01.30

싸우는 심리학-한국사회를 읽는 에리히 프롬 다시 읽기. 김태형 지음 2

좋은 심리학 선생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살아가는 것도 익숙해질 수 있다는 충고를 어른들은 자주 합니다. 아니 어떤 경우에는 강요를 합니다. 독재정권이 무서워 독재라고 말을 못하는 것이 당연하니 거리에서 학교에서 떠들지 말고 조용히 가만히 있으라고 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에 우리의 소외된 지도자 안철수 씨가 가만히 있었던 것은 과거 들었던 익숙한 충고 때문일 것이라 이해가 되었습니다. 압수수색이라도 들어오면 먼지 하나도 없음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니까요. 저는 이해합니다. 하지만 억눌린 자유, 억눌린 행동은 그 대가를 반드시 치러야 합니다. 우리 시절 정신과를 전공하는 의사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때는 정신과를 찾는 사람을 미친 사람으로 간주했기에..

매일 에세이 2024.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