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1029

악의 평범성. 이산하 시집. 창비시선453. 2

스타 괴물 시인의 장례식에 묻을 장밋빛 미래의 덧에 걸린 영혼 중에는 스타 괴물이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괴물의 실체를 찾아봅니다. 그의 주장에는 아쉬움과 한탄으로 인한 슬픔이 묻어납니다. 초보운동권 시절 한 국방색 야전잠바 선배가 담배연기 자욱한 카페 밀실에서 여러 낯선 선배 ‘동지’들을 가리키며 이쪽은 ‘투스타’ ‘쓰리스타’이고 저쪽은 ‘아직 완스타’라고 엄숙하게 소개했다. 나는 두 번 놀랐다. 한 번은 깜빵 갔다 온 횟수에 따라 평소 경멸하던 육사 출신 장군들의 계급장대로 ‘완스타’ '투스타'라 부른다는 것과 또 한 번은 ‘아직’이라는 표현 때문이었다. 세상이 적당히 좋아진 수십 년 뒤 난 그 야전잠바들의 선견지명에 또 놀랐다. 별의 숫자만큼 입신양명이 증명되었던 것이다. 멀리 내다보고 일찍부터 스..

매일 에세이 2024.01.18

악의 평범성. 이산하 시집. 창비시선453. 1

시인의 이름이 풍기는 기운이 남다릅니다. ‘산하’라는 이름이 본명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시인의 나이로 견주어 보면 아버지 세대가 ‘산하’란 이름을 지어 주시기에는 시대가 엄혹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지만 자식이란 것이 이름 때문에 굴곡진 삶을 살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이름을 지을 때는 이것저것 생각이 많아지기 마련입니다. 혹여 관재수를 끼고 살아야 할 이름을 지었다면 이것처럼 낭패를 느낄 아버지의 고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자식들이 크면서 아비의 뜻대로 사는 경우가 어디 그렇게 흔하겠습니까? 그렇다고 아비의 뜻을 따른다면 아비의 그릇 이상으로 자랄 수도 없을 것이니 아비 된 입장에서 다만 이름에라도 어떤 액운이 없길 바라며 이름을 지을 따름일 것입니다. 하지..

매일 에세이 2024.01.18

과학의 반쪽사. James Poskett 지음. 블랙피쉬 간행 3

아인슈타인이라고 다를까? 저는 수학과 물리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 아인슈타인의 주장을 정리해서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해의 차원을 떠나 귀동냥을 한 것은 뉴턴의 고전물리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을 아인슈타인이 설명을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중력을 설명하면서 시공간이란 개념을 사용했다고도 들었습니다. 대단한 과학자이지요. 이런 천재적인 과학자에 대한 저자의 설명을 인용합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종종 더 넓은 지적, 정치적 세계와 크게 동떨어진 고립된 천재로 여겨집니다. 물론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은 과학자들이 물리적 우주를 이해하는 방식에 변화를 불러왔습니다. 하지만 그는 결코 고립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아인슈타인은 상하이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이르는 전 세계..

매일 에세이 2024.01.14

과학의 반쪽사. James Poskett 지음. 블랙피쉬 간행 2

뉴턴은 외톨이 은둔형 과학자가 아니다 18세기 초 영국의 유명한 수학자 뉴턴은 노예무역에 투자했습니다. 그는 남해 회사의 주식 2만 파운드 이상을 매입했는데 오늘날 가치로 200만 파운드가 훌쩍 넘는 엄청난 액수였습니다. 18세기에 노예무역은 절정에 달했습니다. 뉴턴이 금융업에 종사했다는 사실은 종종 간과되는 18세기 과학의 한 측면을 암시합니다. 뉴턴은 18세기 대부분의 과학자처럼 외톨이 천재로 묘사되곤 합니다. 1687년에 뉴턴은 기념비적인 저작인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출간했는데 이 책은 ‘프린키피아’로 더 잘 알려졌습니다. 뉴턴의 프린키피아는, 저자의 책에서 뉴턴을 소개하기 이전에 그리스의 아이디어, 오스만제국, 아프리카의 천문학자들, 베이징과 인도의 천문 지식을 소개하면서, 그들이 제시한 ..

매일 에세이 2024.01.14

과학의 반쪽사. James Poskett 지음. 블랙피쉬 간행 1

유럽의 과학사는 반쪽짜리 과학사에 불과하다 우리가 비록 과학에 문외한이라고 해도 우주의 원리를 이해하는 기초를 아이작 뉴턴이 세웠다는 상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얼마나 연구에 몰두한 은둔형 과학자였던지 자기 일에만 몰두한 엉뚱한 면도 많은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그가 연구에 집중하느라 늦은 점심을 먹으려고 도시락을 꺼냈는데 이미 비워져 있어 자기가 이미 점심을 먹었다는 것을 잊은 것으로 생각하고 다시 연구를 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입니다. 만화에도 TV 프로그램에서도 아이들을 상대로 숱하게 소개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한 명의 천재가 수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린다는 이야기가 한동안 회자되었습니다. 일등이 되지 못하면 생존과 발전이 불가능하다는 말을 쉽게 하면서 마누라만 빼고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고 윽박..

매일 에세이 2024.01.14

그림자를 가지러 가야 한다. 신동호 시집. 창비시선478 2

구만리, 겨울새 구만리의 집들은 지붕이 낮다. 눈이 내리면 어깨까지 굽어서 더 깊숙이 고개를 숙인다. 그만 작은 산봉우리가 될 것처럼, 부끄러운 듯 눈 아래 가만히 세속을 감춘다. 새 한마리가 가끔 손님으로 찾아와 작은 흔적을 남기며 처마 밑에 머문다. (겨울새 중에서) 금곡동 공창부락의 지붕도 낮았습니다. 기와를 얹은 경우가 아니면 격년에 한번 초가지붕을 새로 엮었습니다. 어른들이 힘을 모아 같이 작업을 하는 것을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튼실한 어른이 살았던 집이나 그랬겠지요. 어른 없는 집은 행여 비 샐까 맘이 까맣게 타 들어가듯 초가지붕도 까매졌습니다. 어린아이들의 키가 크지 않았지만 여름 저녁에 후라쉬 하나 들고 굴뚝새를 잡으러 돌아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초가지붕이 낡은 집 처마에는 굴뚝새가 집을..

매일 에세이 2024.01.09

그림자를 가지러 가야 한다. 신동호 시집. 창비시선478 1

이번 시집은 신동호 시인의 시집입니다. 처음 듣고 보는 시인이라 책을 고를 때 그가 1965년생이라는 것만 보고 골랐습니다. 동시대를 산 사람들끼리 말이 통하리라 생각해서 그랬습니다. 예상대로였습니다. 그는 유독 장소와 관련한 시를 많이 쓴 듯합니다. 우선 시인의 시를 해설한 문학평론가 오연경의 설명을 보겠습니다. “신동호 시인은 끝없이 갈라지는 길 위에 서 있다. 그 길은 과거로부터 뻗어왔지만 늘 새롭게 시작되고, 분명 하나의 길을 걸어온 것 같은데 여러 갈래의 길을 지나왔으며, 혼자 고독했지만 여럿의 발자국이 남아 있다. 시인은 길에서 배웠고 길에서 사랑했고 길을 살았다.” 고향 화천, 아득한 눈길 설날, 춘천에서 화천 큰댁으로 가는 길. 지금은 삼십분 찻길이지만 예전엔 한시간 반, 겨울 눈길엔 두시..

매일 에세이 2024.01.09

오늘 역사가 말하다. 전우용 지음. 투비북스 간행 6

쌍팔년도 (130쪽) 제가 다녔던 과거 상업고등학교에서는 ‘일반상식’이라는 과목이 있었습니다. 은행의 입행시험 과목 중 하나였습니다. 두께도 제법 두꺼운 책으로 기억합니다. 책의 구성은 말 그대로 일반적인 ‘상식’을 나열한 책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공식 인정한 국제기구인 UNCTAD를 묻고 이를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하나의 상식을 설명하는 문장은 그리 길지 않아 책 한 쪽수에 5~6개의 상식을 설명하였습니다. 조각난 상식을 알기 위해서는 좋은 책이었지만 이들 상식이 연결된 지식을 배우기에는 기대 난망이었고 지식이 상식에 그쳐 지혜를 얻는 것도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휴전’은 6.25 전쟁이 끝난 것을 설명하는 말입니다. 정실인사도 알 듯합니다. 원조물자도 부정축재도 아는 말..

매일 에세이 2024.01.08

오늘 역사가 말하다. 전우용 지음. 투비북스 간행 5

조선의 학생운동 권당 (128쪽) 권당이란 조선시대 성균관 유생들의 ‘학생운동’이었다고 합니다. 정치적이거나 비정치적인 사건이 있으면 유생들이 집단적으로 ‘기숙사’를 이탈하는 것을 말합니다. 세종이 궐 안에 내불당을 짓자 유교를 숭상하던 유생들이 그랬고, 성종 때는 교관이 회초리로 때렸다고 해서 그런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선생은 학생운동은 여러 이유로 일어났지만, 일제강점기 이후로는 주로 ‘지식인 정치운동’의 일환이었다고 설명을 합니다. 대학교육이 대중화하기 전에는, 대학생들은 대개 ‘중산층’ 이상의 가정 출신이었고 스스로 ‘지식인’이거나 ‘예비 지식인’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학생 개개인의 이해관계보다는 사회 전체의 이익을 우선했었지요. 그런데 근래의 반값 등록금 운동을 보면, 학생..

매일 에세이 2024.01.08

오늘 역사가 말하다. 전우용 지음. 투비북스 간행 4

선교사의 똘레랑스 (112쪽) 과거 법학개론을 배울 때 기억나는 내용이 있습니다. 총을 고정, 거치하고 사격을 하면 총알은 같은 곳에 탄착점을 만드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는 답변이었습니다. 물리학이라는 자연과학이 항상 같은 답을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설명하면서 법학의 결론이 그때그때 사안에 따라 다른 결론이 나오더라도 학문으로서 과학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설명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사회과학, 인문과학이더라도 깊이 들어가면 자연과학과 상통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럴듯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법관의 판결에 깊은 법학 지식의 기반이 있다면 그 판결이 과학이 적용되는 현실과 동떨어지지는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검사로서 수사를 한 경험이 있어 그 분야에 전문가다”라는 주장이 참인 것은 아닙니다...

매일 에세이 2024.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