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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된 잔. 로버트 잭슨 베넷, 레비아탄의 그림자 시리즈1. 이나경 옮김. 황금가지 간행.

책을 소개할 때, 나의 취향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혹 잊습니다. 유명 신문이 추천한 100대 작품이거나, 무슨 문학상을 받았다거나, 광고비를 많이 써서 알려졌다거나, 인터넷 서점에서 베스트셀러라거나 소개를 받아 연 책 중에서 간혹 실망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치 과거 유선방송에서 시간을 죽이려고 방영한 3류 중국무협영화처럼 그만 보려고 마음먹었다가도 ‘다음에 계속’에 이끌려 이어 보는 것과 비슷하게, 추리소설이라고 해서 열었는데, 이게 어디 있는 나라인지도 모를 가상의 공간이 나타나면 뜨악하면서도 계속 읽게 됩니다. 진격의 거인을 처음 보았을 때, 거인이 어떻게 해서 출현하게 되었는지 인간과는 어떤 이유로 싸우는지, 거인들의 먹이는 인간 밖에 없는지 등등 궁금해서 보다가 시리즈가 이어지면서..

매일 에세이 14:59:29

꿀벌의 예언 1, 2. 베르나르 베르베르 장편소설. 전미연 옮김. 열린책들 간행.

사람들마다 선호하는 작가나 작품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하도 유명하다고 광고를 해서 전에도 구해 읽었지만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지 않은 것으로 봐선 이 작가의 작품이 마음에 썩 들진 않았나 봅니다. 한 작품은 기억이 나지 않고, 다른 하나는 사전 형태의 책으로 조금 읽다가 덮었습니다. 단어에 대한 그 나름의 개념을 기록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의 상상력이 광범위하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시간이 주어진다면 누구나 그런 책 한 권은 만들 수 있을 듯했습니다. 그러나 그 정도의 분량을 만들려면 뛰어난 상상력이 필요하긴 할 겁니다. 이 책 ‘꿀벌의 예언’은 일종의 과학서가 아닐까 생각하고 골랐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책 표지 아래에 분명히 ‘장편소설’이라고 자신을 알리고 있습니다. 베르나..

매일 에세이 2026.09.28

너의 나쁜 무리. 예소연 소설집. 한겨례엔 간행.

겨울에 입던 외투는 입으면 어깨를 누를 정도로 무겁습니다. 그런 외투를 겨울 내내 입고 다녔습니다. 전쟁 영화에서 군인들이 입던 모포 같은 직물로 짠 외투에 비하면 그래도 가벼운 편이었을 겁니다. 요즘 겨울 외투는 매우 가볍습니다. 과거를 살았던 우리는 무겁게 살았습니다. 이념과 혁명을 논하며 목에서 피가 끓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과거의 그들이 만든 세상이 대동세상이 된 것도 아닙니다. 이상문학상 수상작 ‘그 개와 혁명’으로 예소연 작가를 처음 만났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맏딸로서 장례를 치르며 일어났던 일들이 펼쳐집니다. 운동권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던 아버지의 문상객은 당연히 역시 운동권을 들락거렸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운운했던 혁명의 기개는 이제는 죽음을 앞둔 늙은이들의 추억..

매일 에세이 2026.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