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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은 생각한다. 문태준 시집. 창비시선471. 1

서정시인, 문태준 시인을 만났습니다. 짧은 시 구절에서 자연과 동화된 듯한 시인, 자연을 읽어주는 시인을 만났습니다. 그런 마음만 읽은 것도 아닙니다. 시인 곁의 이웃들에 대한 선한 마음을 보았습니다. 이를 “타자에 대한 연민과 돌봄의 마음”이라고 문학평론가 이경수는 설명합니다. 마음 따뜻하게 하는 시집입니다. 밥값 허름한 식당에서 국밥을 한술 막 뜨고 있을 때 그이가 들어섰다 나는 그이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수레에 빈 병과 폐지 등속을 싣고 절룩거리며 오는 그이를 늦은 밤 좁은 골목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이가 식당 한편 벽에 걸린 달력의 28일을 오른손으로 연거푸 짚어 보였다 무슨 말인가를 크게 했으나 나는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식당의 여주인은 조금도 언짢아하는 기색이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짧은..

매일 에세이 2024.02.21

희망의 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재인 간행

희망이 없는 삶, 지옥일 것입니다. 지옥 같은 현실을 살면서 끝내 놓지 못 하는 것은 희망이라는 끈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독한 오늘을 버티게 하는 힘. 희망입니다.    이렇게 유명한 작가를 그동안 모르고 지냈습니다. 추리소설이란 것이 사람이 죽고 범인을 찾는 과정에서 추악한 욕망을 보거나, 무모한 욕심을 보면서 이를 응징하는 모습에 통쾌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런 재미가 없습니다. 통쾌함 보다는 안타까움이 줄곧 이어집니다.    비극은 또 다른 비극으로 이어지면서 극한의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이 얽히고설키면서 만든 이야기는 엉뚱한 방향으로 뛰어듭니다. 하지만 이 또한 그 시간 그 상황에서는 피할 수 없는 인간의 굴레요 운명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 작품의 장르를 쉽게 정..

매일 에세이 2024.02.18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문미순 장편소설. 나무옆의자 간행 2

추천의 글 속에 숨겨진 불편함 이야기의 끝에는 ‘추천의 말’이라고 실명의 관계자들이 쓴 글이 있었습니다. 아마 상을 주면서 추천한 글이거나, 독자에게 읽기를 추천하는 글일 수도 있지요. 그건 그렇고 그들이 추천하는 글이 품고 있는 문약함과 비겁함이 저를 불편하게 했습니다. 혈연 가족을 가로질러 새로운 가족의 구성을 모색하는 문미순은 어쩌면 새롭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하면서도 이 소설은 어느덧 도덕의 피안이다라고 최원식(문학평론가)은 풀이합니다. 그러면서 국가라는 장치가 퇴색하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민(民) 스스로 새로운 공동체를 구성하는 희망의 정수박이가 빛나는 이 소설은 가장 비천한 현실 속에서 가장 고귀한 인간적 진실을 길어 올리는 소설의 본령에 문득 다가서던 것이다라고 평가합니다. 불행의 늪에 빠져 ..

매일 에세이 2024.02.17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문미순 장편소설. 나무옆의자 간행 1

왜 이 이야기는 불편할까? “가난을 증명하는 것도 어렵고 수치스러운데, 몸이 아프다는 걸 증명하는 건 더 복잡하고 굴욕적이었다.” 문미순 작가의 소설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을 찾도록 한 이야기 속 문구였습니다. 지금은 전체학생에게 무상으로 급식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무상급식 이슈는 지금의 서울시장이 몽니를 부리다 서울시장 자리를 박원순에게 넘긴 정책이기도 했습니다. 무상급식을 반대하던 사람들은 이건희 손자에게까지 공짜밥을 줄 필요까지 없다는 주장을 폈습니다. 찬성론자의 논리 중 하나는 어려운 아이들에게만 무상급식을 하자는 주장은 아이들이 가난을 증명하게 하여 수치심을 자극하는 방법이 된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의 수치심을 얘기할 때 제 눈이 번쩍 떠졌던 기억이 났습니다. 이 주장은 현장에서 경험하지..

매일 에세이 2024.02.17

암컷들(BITCH). 루시 쿡 지음. 조은영 옮김. 웅진싱크빅 간행 7

수컷 없는 삶 철저한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 알바트로스를 설명하면서 암컷끼리 알을 낳고 그 중 하나의 알 만을 선택하여 새끼를 키우는 경우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경이감을 느꼈습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했나요. 수정할 때만 수컷을 찾고 그후 암컷들끼리 알을 낳습니다. 알바트로스의 포란반 때문에 결국 한 개의 알은 포기하지만 수컷을 배제한 채 암컷끼리 새끼를 양육하는 것에서 알바트로스 세계의 창의성을 보았습니다. 가족은 전통적인 모습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동물의 세계에서 확인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무성생식을 하는 동물들을 소개합니다. 우리는 유성생식이 왜 진화론적으로 우수한가를 이야기할 때 돌연변이의 축적을 방지하고, 유전적 다양성을 유지하여 생존의 가능성을 높인다고 들었습니다. 무성생식을 ‘..

매일 에세이 2024.02.16

암컷들(BITCH). 루시 쿡 지음. 조은영 옮김. 웅진싱크빅 간행 6

모성애만 지녔다는 암컷이 지배하는 동물 사회 동물의 암컷은 오랫동안 마치 다른 역할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어머니와 동일시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저자의 책에서는 수많은 사례를 제시하며 다윈의 모성 본능은 우리 모두 안에 잠재되어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것은 여성에게만 제한된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여러 동물을 소개하며 이어집니다. 그렇다면 암컷은 수컷의 간택만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태도만을 지녔다는 주장에도 이의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 또한 수동적이라고 여겼던 암컷들 간의 경쟁도 치열하다는 이야기가 전개되며 마침내 암컷이 지배하는 동물 사회를 소개합니다. 유명한 네덜란드 영장류 학자이자 조지아주 애틀랜타 에모리대학교 동물행동학 교수인 프란스 드 발은 암컷의 권력이 과소평가되었다는 점에 동..

매일 에세이 2024.02.16

암컷들(BITCH). 루시 쿡 지음. 조은영 옮김. 웅진싱크빅 간행 5

사랑은 전쟁터이다 저자는 성적 동족 포식을 하는 동물을 소개하면서 저녁식사와 데이트를 동시에 해결하는 암거미의 성향은 빅토리아 시대 남성 동물학자들에게 여러모로 모욕적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단지 악랄하고 지배적인 이 암컷 킬러들은 사랑이 전쟁이라는 사실을 진즉 알았을 뿐이라고 변호합니다. 과학은 그림까지 상세히 곁들인 설명으로 음경의 변이에 관한 탄탄한 문헌을 쌓아 올렸습니다. 그러나 그에 상응하는 암컷의 기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었습니다. 여성의 생식기는 사정한 정자를 받아서 전달하는 관에 불과하다는 것이 통념이었기 때문입니다. 소유주인 암컷 본체처럼 진화에 영향을 미칠 하등의 힘이 없는 수동적이고 불변의 기관으로 여겨진 것입니다. 동물계 전반에서 수컷들은 암컷의 동의와 상관없이 새끼의 아비..

매일 에세이 2024.02.16

암컷들(BITCH). 루시 쿡 지음. 조은영 옮김. 웅진싱크빅 간행 4

조작된 암컷 신화 암컷이 배우자를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춤을 잘 추는 수컷? 온갖 잡동사니를 모아 집을 꾸민 수컷, 덩치가 크고 힘이 세 보이는 수컷? 잘 생긴 수컷? 20년에 가까운 집중 연구 끝에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 유일하게 합의에 도달한 한 가지가 있으니 암컷의 선택이 ‘본질적으로 종잡을 수 없다’는 사실이라고 합니다. “뭐가 미안한지 알아? 말해 봐. 저 봐. 모르네. 그러니까 나는 절망이야. 그만 만나.” 남성이 여성을 절망하게 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종잡을 수 없’는 여성의 배우자 선택 기준을 아직도 모른다는 데에 있었습니다. 남성우월주의 사회에서 암컷은 마냥 순진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습니다. 당시 시대의 일반적인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졌습니다. 연구자들은 붉은날개검은새 수컷을 정관..

매일 에세이 2024.02.16

암컷들(BITCH). 루시 쿡 지음. 조은영 옮김. 웅진싱크빅 간행 3

암컷이란 무엇인가 피상적인 수준에서 사람들은 생식기를 성을 구분하는 손쉬운 지표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두더지, 거미원숭이, 포사, 점박이 하이에나 암컷의 음핵은 이를 거부합니다. 성 분화의 표준 패러다임은 1940년대와 1950년대에 프랑스 발생학자 알프레드 조스트가 확립했습니다. 조스트의 이론은 여성은 대체로 수동적이고 남성은 능동적이라는 통념에 아주 잘 부합했습니다. 조스트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남성이 되는 길은 길고 지난하고 위험한 모험이다. 내재된 여성성을 거르는 투쟁이다.” 여성은 배아에 고환이 없어서 남성이 되지 못한 채 그냥 기본값으로 발생한 존재라는 주장인데 이런 편견은 놀랍도록 오래 지속되어 심한 손상을 입혔습니다. 조스트는 테스토스테론을 강조합니다. 저자가 주장하는 조스트의 편견에 대..

매일 에세이 2024.02.16

암컷들(BITCH). 루시 쿡 지음. 조은영 옮김. 웅진싱크빅 간행 2

다윈의 고정관념을 거스르는 암컷들의 관찰된 사실을 배제하는 확정편향 과학적 사실을 소개하는 책이니 각 장에서 주장한 요지를 간략하게 정리하여 저자의 주장에 대한 사색의 단서를 제공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자연선택을 내세운 다윈의 진화론은 어떻게 공통 조상에서 시작해 생명의 풍부한 다양성이 유래했는지를 설명합니다. 환경에 잘 적응한 생물은 살아남아 자신의 성공을 도운 유전자를 후대에 물려줍니다. 이 과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와 종의 분화를 유발합니다. 이 발상은 단순하기에 더없이 훌륭하며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지적 혁명의 하나로 정당하게 환영받습니다. 그렇기는 하나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자연선택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다윈도 이 같은 사실을 인지했기에 오랫동안 괴로워했고, 마침내 다윈은 ..

매일 에세이 2024.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