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내가 되는 꿈. 최진영 장편소설. 현대문학 간행 1

무주이장 2024. 1. 21. 12:09

“네가 되었으면 해”

 

  주말 아침 아내가 먼저 주방으로 나갔습니다. 일요일 간혹 같이 아침을 먹을 때면 제가 아침을 준비합니다. 포장된 사골 한 봉지를 냄비에 붓고 그만큼 물을 더합니다. 따로 멸치 다시물을 낼 필요가 없어 편합니다. 사골만으로 떡국을 끓이면 사골 국물이 너무 진해서 다음에 또 먹고 싶은 생각은 줄어들지만 물을 타면 언제든지 다시 먹을 자신이 생깁니다. 떡국의 맛국물로서 파는 사골은 그럴듯합니다. 물이 끓는 것을 보고는 물에 잠깐 담가 둔 떡을 넣는데, 아내가 둘째 아이와 한 시간 넘게 새벽에 통화를 하였다고 전합니다.

 

  젊은 시절에는 아이를 키우는 것은 엄마의 몫이라고 분업을 선언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아이가 자라는데 큰 어려움이 생기지 않도록 꾸준히 경제적 지원을 해야 하는 일로 한정을 했습니다. 아내가 시키는 대로 모든 것을 다하지 못하고 단지 경제적 지원만을 했습니다. 아이와 같이 시간을 보내달라는 요청도 무시하였고, 아내가 외롭다며 곁에 머물기를 요청했지만, 말로만 그러겠다고 했을 뿐입니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아프리카의 속담인지 어디 중국의 경험인지 기억하지 못하지만 틀리지 않다는 생각을 아내도 저도 했습니다. 아이를 낳기 전에 국가에서 교육을 시키고 자격증을 받은 부모들만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넋두리를 할 정도로 아내가 지쳐있을 때에도 저는 가족에 대한 경제적 책임에서 눈을 돌려 주변을 살펴보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럴 능력이 되지 못했습니다.

 

  아이는 ‘자기’가 되기 위해 주어진 환경에서 애를 태우며 노력하였습니다. 작가가 “내가 되는 꿈”이라는 제목의 이야기를 한 권 가득 채워 이야기를 하였듯이 십 대의 아이 또한 “내가 되는 꿈”을 몇 권의 공책에 기록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 가득 채워진 자기가 되는 꿈은 현실에서 입 밖에 꺼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같은 꿈을 꾸는 아이들과 서로 질투하고 경쟁하며 편을 가르는 환경이 옆에서 지켜본 아내조차도 숨쉬기가 어려울 정도였던 모양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교차하며 갈등을 만들고 갈등에 치여 상처를 입는 과정을 당연한 일상이라고 생각하지만 힘에 부친 것은 어쩔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엄마들도 감당하기 어려운 심리적 전쟁터에서 십 대의 아이들은 방향 잃고 난무하는 지시에 우왕좌왕하였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되어 아이와 아내를 안정시킬 정도의 대야가 되지도 못해 목욕을 하려는 두 사람을 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저도 “내가 되는 꿈”을 꾸고 있었지만 술기운에 입 밖으로 그 꿈을 얘기할 때면 넋두리가 되고 원망이 되고 미움이 되어 아이와 아내의 상처 난 가슴에 박혔을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내가 되는 꿈”은 다른 사람에게는 공격의 말이 되었고, 스스로에게는 비관적인 세계관을 갖게 했습니다.

 

  아내라고 해서 자기가 되는 꿈을 모르고 살았던 것도 아닐 것입니다. “내가 되는 꿈”은 가족 모두가 한 때 가졌고, 지금도 가지고 있고, 미래에는 이뤄지길 바라는 소망입니다. 그 꿈들이 모두 이뤄지길 바라면서 서로에게 지원을 한다고 믿었지만, 결국은 살다 보면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일들로 날실과 씨실이 되어 원하지 않는 천을 짜게 됩니다. 직물이라면 다시 풀어 다른 무늬를 넣기라도 하겠지만, 가족이기에 한 번 뭉쳐지면 어찌할 수 없는 유기체 덩어리가 될 수도 있어 그냥 손을 놓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의지로 이 덩어리를 해체하려는 일은 많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다른 곳에 쓸 에너지를 여기에 퍼붓느라 자기의 꿈이 해체되는 고통을 겪기도 합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내 문제를 인식하기까지 혹시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결국 문제의 해법은 본인에게 달려있다는 것은 엄연합니다. 새벽에 아내가 받은 아이의 전화는 문제를 인식하고 해법을 의논하는 노력입니다. 아이와 아내가 나눈 대화는 공감과 투사를 함께 하며 전달하는 응원입니다. 그 이야기를 아침 떡국을 끓이고 나눠 먹으면서 아내는 나에게 전달한 것입니다. 답은?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응원은 이기기 위하여 팀에게 힘을 전달하는 수단입니다. 이기든 지든 응원이 가진 힘은 제한적입니다. 이야기를 전하는 아내의 말에 힘이 들어 있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아내는 이미 익숙해졌고 상식이 체계화되어 지식이 된 듯합니다.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