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의 글 속에 숨겨진 불편함
이야기의 끝에는 ‘추천의 말’이라고 실명의 관계자들이 쓴 글이 있었습니다. 아마 상을 주면서 추천한 글이거나, 독자에게 읽기를 추천하는 글일 수도 있지요. 그건 그렇고 그들이 추천하는 글이 품고 있는 문약함과 비겁함이 저를 불편하게 했습니다.
혈연 가족을 가로질러 새로운 가족의 구성을 모색하는 문미순은 어쩌면 새롭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하면서도 이 소설은 어느덧 도덕의 피안이다라고 최원식(문학평론가)은 풀이합니다. 그러면서 국가라는 장치가 퇴색하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민(民) 스스로 새로운 공동체를 구성하는 희망의 정수박이가 빛나는 이 소설은 가장 비천한 현실 속에서 가장 고귀한 인간적 진실을 길어 올리는 소설의 본령에 문득 다가서던 것이다라고 평가합니다.
불행의 늪에 빠져 살려고 버둥대는 모습에서 새로운 가족의 구성을 모색한다는 철학을 끌어낸 시선은 과대망상으로 보입니다. 사악한 현실에서 어떤 도움도 구할 수 없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행위를 문학적 의도는 ‘새로운 가족의 구성’을 모색한 주도면밀한 의도로 해석하지만 소설이 문학이라고 해서 거기에 소요된 소재를 요란한 무지갯빛으로 염색한 안경을 통하여 보면서 문학적 해석을 한 것은 한참을 오버한 것으로 보입니다. 더욱이 국가라는 장치가 퇴색하는 것을 ‘거대한 흐름’이라고 단정하면서 국가의 의무 방기를 당연한 사실로 확정한 것은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무책임한 현실인식이기도 합니다. 그의 무책임은 새로운 공동체를 구성하는 희망의 정수리가 되어 자신이 방기한 책임을 소설 속 무기력한 캐릭터의 책임으로 전가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비천한 현실 속에서 가장 고귀한 인간적 진실을 길어 올릴 것이라고 기대하는 척하며 이것이 소설이 가진 역할이자 의무라고 합니다. 아무 말이나 생각도 없이 하면서 듣기 좋은 단어를 쓰는 그의 추천사는 게으르고 반사회적이고 반문학적이며 소설의 지위를 격하시키는 난문이었습니다. 불편한 이야기에 유려한 추천사는 오히려 사회를 병들게 하기 쉽다는 생각이 들어 불쾌하기까지 했습니다.
은희경(소설가)의 평은 개인의 불행이 일어나는 잔혹한 현실은 역설적이게도 인간적인 연대와 온기를 발견해 가는 과정으로 전환된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추동하는 힘과 작가의 신념 혹은 배짱이 인상적이다고 감상을 적었습니다. 역시 온전히 잔혹한 현실에 대한 이야기는 빠지고 이를 극복해 가는 작가의 개인적 신념과 개인적 배짱에 인상을 강하게 받은 모양입니다. 작가의 개인적 신념과 배짱이 이 소설의 의미가 된다면 이 이야기는 역시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이야기로 전락하게 됩니다. 작가의 이야기에서 수차 거론되는 숨은 사회의 책임은 은희경에게는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정유정(소설가)의 추천의 글이 솔직합니다.
작가가 혹독한 수련을 했겠다. 한 순간도 자신이 하려는 이야기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이야기를 장악하는 능력도 뛰어나고 마지막 묵직한 질문이 신선하면서도 노련하다. 그래서 군계일학이다. 작가의 글솜씨를 마음껏 상찬하는 것이 훨씬 편한 추천의 글이었습니다.
박혜진(문학평론가)은 이 이야기가 개인의 실패인지 공동체의 실패인지 묻기는 하지만 답을 쉽게 할 수 없다고 회피하면서 이 소설이 인간 존엄과 사회 제도에 대해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만을 인정합니다. 비겁한 문약으로 보이지 않으십니까?
오직 하성란(소설가) 만이 스스로 자신이 생존을 챙길 수밖에 없는 야만의 시대에 윤리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소설 속 인물들과 다를 것 없이 야만의 계절을 보내고 있는 지금의 우리에게 딱 필요한 질문이다라며 이 소설을 읽은 독자들과 함께 질문하고 당연히 답을 찾을 공간을 예비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에서 우리 사회의 문제를 알 수 있었고 그 해결책을 찾기를 바라는 소망을 읽었습니다. 그러면서 문학(소설)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이렇게 밀려서 도피하는 등장인물들이 어쩔 수 없이 서로를 위로하면서 간신히 살아내는 유약한 위로일 뿐이라고 읽었습니다. 문학의 왜소함을 솔직히 고백하고 반성하는 작가의 작품이었고 이야기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바입니다. 불편한 이야기가 사족이 붙어 불편해진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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