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의 고정관념을 거스르는 암컷들의 관찰된 사실을 배제하는 확정편향
과학적 사실을 소개하는 책이니 각 장에서 주장한 요지를 간략하게 정리하여 저자의 주장에 대한 사색의 단서를 제공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자연선택을 내세운 다윈의 진화론은 어떻게 공통 조상에서 시작해 생명의 풍부한 다양성이 유래했는지를 설명합니다. 환경에 잘 적응한 생물은 살아남아 자신의 성공을 도운 유전자를 후대에 물려줍니다. 이 과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와 종의 분화를 유발합니다. 이 발상은 단순하기에 더없이 훌륭하며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지적 혁명의 하나로 정당하게 환영받습니다.
그렇기는 하나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자연선택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다윈도 이 같은 사실을 인지했기에 오랫동안 괴로워했고, 마침내 다윈은 자연선택과는 전혀 다른 진화의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바로 성에 대한 추구였고, 그래서 그는 그것을 ‘성선택 sexual selection’이라고 불렀습니다. 새로 밝혀진 진화의 원동력은 현란하고 이색적인 형질을 잘 설명했습니다. 거추장스러운 장식물의 유일한 목적은 이성을 차지하거나 유혹하는 것임이 분명합니다. 다윈은 그런 형질이 본질적으로 생존과는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생식기관처럼 생명을 영속하는 데 필수 불가결한 ‘일차적 성적 특성’과 구분하기 위해 ‘이차적 성적 특성’이라고 불렀습니다.
다윈 앞에서 성적 이형성은 행동으로 연장되었고 각 성의 역할은 신체적 특징만큼이나 예측 가능했습니다. 수컷은 암컷을 ‘소유’ 하기 위해서 특별히 진화된 ‘무기’나 ‘매력’을 들고 치열하게 싸움으로써 진화의 주도권을 잡는다고 이해했습니다.
다윈은 성선택의 역학에서 수컷끼리의 경쟁 외에도 ‘암컷의 선택’이라는 요소의 필요성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설명하기는 몹시 껄끄러웠으니, 암컷에게 수컷을 쥐락펴락하는 불편할 정도로 적극적인 역할을 부여하기 때문이었고, 이는 가부장적인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에서는 쉽게 받아들여질 수 없는 발상이었습니다. 다윈은 여성의 영향력을 축소하고자 하는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다윈의 성선택 이론은 어디까지나 여성혐오 문화에서 배양되었으므로 그 안에서 암컷의 진실이 왜곡된 것도 놀랄 일은 아닙니다만 진짜 놀랄 일은 관찰된 사실들을 무시하게 되는 생물학자들의 확정편향입니다. 기존 학계의 지배층이 동물계를 수컷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남성들이었고 또 많은 분야에서 지금도 그렇다는 사실이 문제를 악화시켰습니다. 많은 이들이 암컷에는 일절 관심이 없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쇼비니즘 문화에서 시작한 것이 한 세기 동안 과학의 힘으로 배양되었고 결국 다윈에게서 인증 도장을 받은 정치적 무기로서 다시 사회에 분출된 것이 성차별적 편견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진화심리학이라는 새로운 과학에 헌신한 일부 소수의 남성에게 강간에서부터 강박적인 스토킹, 남성 우월주의에 이르기까지 온갖 파렴치한 행동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주장할 이데올로기적 권위를 주었습니다. 하지만 암수는 사실상 다른 점보다는 비슷한 점이 훨씬 더 많습니다. 선을 어디에 그어야 할지 난감할 정도입니다.
'매일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암컷들(BITCH). 루시 쿡 지음. 조은영 옮김. 웅진싱크빅 간행 4 (4) | 2024.02.16 |
---|---|
암컷들(BITCH). 루시 쿡 지음. 조은영 옮김. 웅진싱크빅 간행 3 (0) | 2024.02.16 |
암컷들(BITCH). 루시 쿡 지음. 조은영 옮김. 웅진싱크빅 간행 1 (0) | 2024.02.16 |
일주일. 최진영 소설. 자음과 모음 간행 2 (0) | 2024.02.12 |
일주일. 최진영 소설. 자음과 모음 간행 1 (0) | 2024.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