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835

우린 정말 관심을 가졌을까? ‘목요일의 아이’, 시게마쓰 기요시 지음

우린 정말 관심을 가졌을까? ‘목요일의 아이’, 시게마쓰 기요시 지음 ‘하루히코가 꾸며 내던 빈틈없는 미소를 꾸짖을 자격 같은 건 내게 없다. 나도 진짜 웃는 표정을 하루히코에게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었다.’ ‘나는 하루히코 앞에 무릎을 꿇었다. 무릎을 콘크리트 바닥에 찧은 순간 이상한 그리움이 느껴졌다. (중략) 신에게 기도를 드리고, 신의 은총을 받는 사람처럼. 나는 하루히코에게 말했다. “캡슐을…… 아버지에게 전부 줄래……?”’ 중2학년 남의 자식을 사랑하는 여자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42살에 아버지가 되기로 했던 주인공이 아들에게 간절히 바람을 전달하는 대목입니다. 자신의 생명으로 세상과 맞서기로 결심한 것도 모른 채, 아들과 대화를 시도했지만 아들은 항상 빈틈이 없었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

매일 에세이 2022.02.03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 마이클 샌델, 와이즈베리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 마이클 샌델, 와이즈베리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사과 농사를 짓는 경우, 사과가 많은 충청도 지역에서 병해충으로 사과농사가 망하면, 무주에서 사과를 키우는 나는 웃는다. 사과금이 좋을 것이기 때문이다. 작게 농사짓는 경우도 문제이지만, 크게 농사짓는 충청도 사과재배 농민은 외상으로 처리해둔 농약비용과 이미 지급한 일용노동자의 노임이 많기에 크게 손해 본다. 남의 불행에 웃기에는 마음이 불편하다. 배추 농사도 그렇다. 배추가 금값이 되려면 내 밭의 배추에만 문제가 없어야 한다. 다른 많은 배추 농민의 밭에 있는 배추가 수확이 없거나 적어야 내 주머니가 두둑하다. 그래도 이것은 내가 결정한 것이 아니다. 자연이 베푼 혜택(?)..

매일 에세이 2022.01.26

부동산경기 동향 읽기 : 김경민 교수의 책 ‘부동산트렌드2022’

부동산 경기동향 읽기 : 김경민 교수의 책 ‘부동산 트렌드 2022’ 부동산 가격을 예측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래도 부동산으로 돈을 벌려면 절대 아웃사이더가 되면 안 된다. 경기를 예측하려고 하지 말고, 부동산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는 가를 알면 된다. 그러려면 부동산을 가진 자들과 같이 움직이는 것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왜 ‘것들’이냐고? 그들은 가진 자들끼리 노름을 하지 않고, 가지지 못해 안달복달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노름을 하기 때문이다. 소위 ‘아이들 손목 비틀기’ 한다. 부동산 거래의 아이들은 영끌하는 20~30대라고 나는 생각한다. 은행 돈을 빌려 집을 사는 이들은 나름 부동산 가격을 예측하기는 하지만 정보를 얻는 방법에는 한계가 있다. 그들은 가짜 정보에..

매일 에세이 2022.01.24

정유정 장편소설, 종의 기원, 은행나무

정유정 장편소설, 종의 기원, 은행나무 이야기를 몇 장 넘기면서 ‘어~이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책을 읽었던 것인지, 영화에서 본 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행동을 기억하지 않으려던 유진이처럼. 만약 전에도 읽었던 책이라면, 왜 이토록 기억이 나지 않는지, 왜 이렇게 이야기가 불편한지, 왜 이렇게 이야기를 읽는 동안 긴장을 하는지, 도무지 토막 난 기억의 단서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 유진이 그런 것처럼, 나도 불편한 이야기를 ‘재미있었다’는 감정만으로 처리하고 잊어버리려 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았다. 읽던 이야기를 중단하고 이야기의 끝을 찾았다. 유진이가 새우잡이배에서 돌아와 길을 걷는 장면이었다. 주인공은 분명히 살인을 한 것 같지만 나는 끝까지 지..

매일 에세이 2022.01.19

시 따라 걷는 생각 7(오늘은 두 편의 시 아니 세 편)

시 따라 걷는 생각 7(오늘은 두 편의 시 아니 세 편) 원고 청탁 최영미 시인 시 2편 달라는 메일을 받고 세수도 하지 않고 세수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잊고 계량기 교체하느라 단수한다는 안내방송도 듣지 못하고 시간의 마우스를 이리저리 옮겨 이미 여러 번 우려먹은 기억을 재활용하느라 새벽부터 엉덩이 붙이고 앉아 브런치를 약속한 시간이 다가오는데, 10분 전인데 의자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어떤 사랑의 묘약이 이보다 독하랴 데이트 약속만 떠올려도 기분이 좋았다. 드디어 그녀를 만난다는 것이 꿈만 같다. 독사진이 없어 무리 속에 찍힌 사진을 보며 흐릿한 얼굴을 보정한다. 너무 예쁘다. 예쁜 이 여자와 데이트를 한다는 사실에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고, 운동하지 않아도 심장이 고동친다. 사랑은 묘약이었다. ..

매일 에세이 2022.01.07

시 따라 걷는 생각 6

시 따라 걷는 생각 6 죽음은 연습할 수 없다 최영미 시인 -그해 여름의 문자메시지 아버지 위독하시대 아버지 운명하셧다 (맞춤법이 틀려도 그냥 넘어갔다) 영정사진 갖고 병원 장례식장으로 와 아버지 주민등록 주소 좀 알려줘 빨리 엄마랑 통화했어 아버지 세례명 요한 천주교 식으로 장례 치르지 말래 안치료 20만 입관료 20만 음식값 기본 50만 상복 대여비 2만 수의 38만 관 25만 운구비 40만(기사 팁 포함) 화장비 10만 유골함 3만 꽃값은? 계산은 나중에 하자 아무도 원하지 않는 아버지의 피 묻은 틀니를 가져가려는 자식이 없어 무슨 전염병 만지듯 흰 장갑을 낀 손으로 쓰레기통에 버렸다 80이 되도록 젊은이처럼 단단하던, 당신의 자랑이던 몸이 뜨거운 재가 되기까지 40분도 걸리지 않았다 상속포기 서류..

매일 에세이 2022.01.05

시 따라 걷는 생각 5

시 따라 걷는 생각 5 괴물 최영미 시인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Me too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 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 나는 소리쳤다 “이 교활한 늙은이야!” 감히 30년 선배를 들이받고 나는 도망쳤다 En이 내게 맥주잔이라도 던지면 새로 산 검정색 조끼가 더러워질까 봐 코트자락 휘날리며 마포의 음식점을 나왔는데 100권의 시집을 펴낸 “En은 수도꼭지야. 틀면 나오거든. 그런데 그 물이 똥물이지 뭐니” (우리끼리 있을 때) 그를 씹은 소설가 박 선생도 En의 몸집이 커져 괴물이 되자 입을 다물었다 자기들이 먹는 물이 똥..

매일 에세이 2022.01.04

시 따라 걷는 생각4

시 따라 걷는 생각4 마법의 시간 최영미 시인 사랑의 말은 유치할수록 좋다 유치할수록 진실에 가깝다 기다려찌 어서와찌 만져줘찌 뜨거워찌 행복해찌 유치해지지 못해 충분히 유치해지지 못해 너를 잡지 못했지 너밖에 없찌, 그 말을 못해 너를 보내고 바디버터를 덕지덕지 바른다 너와 내가 함께 했던 마법의 시간으로 돌아가고파 망고와 파파야 즙을 머리에 바르고 올리브오일로 마사지하고 싱그러운 페퍼민트와 장미꽃 향으로 중년의 냄새를 덮고 어미의 병실에서 묻은 기저귀 냄새도 지우고 기다려찌 너밖에 없찌 젊은 날, 사랑하는 사람에게 저러고 싶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남들이 “미친 놈”하고 조롱했다. 조롱이 무서워 개그 프로그램에서만 즐겼다. 나 예쁘찌? 나 좋찌? 실실 조롱하듯 웃으면서 속으로는 부러웠다. 그냥 그렇게..

매일 에세이 2021.12.30

오랜만에 든 그림책 해설 : 벌거벗은 미술관, 양정무의 미술 에세이, 창비

오랜만에 든 그림책 해설 : 벌거벗은 미술관, 양정무의 미술 에세이, 창비 그림 속에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 사람은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입니다. 정치적 의견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있지만, 그의 책 '미학 오디세이'는 서양미술에 대하여 잘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을 성실하고도 친절하게 해 주는 책입니다. 우리 집에도 아내가 젊은 시절 사놓은 도판 그림책이 제법 있습니다. 세계적인 미술관을 소개하는 책들인데, 그 시절 제법 많은 돈을 들여 산 책이라고 짐작합니다. 해외여행 이라고는 일본 후쿠오카나 유후인, 태국 파타야나 한두 번 가본 것이 다인지라, 누가 해외여행을 가서 루브르를 방문했다고 하면 기가 죽기도 했던 시절이 제게도 있습니다. 그래서 책을 꺼내 루브르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미술품들을 도판으..

매일 에세이 2021.12.28

시 따라 걷는 생각3

시 따라 걷는 생각 3 꽃들이 먼저 알아 최영미 시인 당신이 날 버리기 전에 내가 먼저 떠나지 않을 거야 나비가 날아든다는 난초 화분을 집 안에 들여놓고 우리의 사랑처럼 싱싱한 잎을 보며 그가 말했다 가끔 물만 주면 돼. 물, 에 힘을 주며 그는 푸른 웃음을 뿌렸다 밤마다 나의 깊은 곳에 물을 뿌리고픈 남자와 물이 말라가는 여자의 불편한 동거 꽃가루 날리는 봄과 여름을 보내고 첫눈이 오기 전에 나는 그를 버렸다 아니, 화분을 버렸다 소설을 쓴답시고 정원을 배회하며 화분에 물 주기를 잊어버렸다 꽃들이 더 잘 알아. 나비가 날아들지 않는 난초 화분 옆에서 시들시들 떨어진 꽃잎을 주우며 그가 말했다 얘네들이 더 잘 알아. 당신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당신이 날 버리기 전에 내가 먼저 시들지 않을 거야 먼저 버..

매일 에세이 2021.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