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835

시 따라 걷는 생각2

시 따라 걷는 생각2 시(詩) 최영미 시인 나는 내 시에서 돈 냄새가 나면 좋겠다 빳빳한 수표가 아니라 손때 꼬깃한 지폐 청소부 아저씨의 땀에 전 남방 호주머니로 비치는 깻잎 같은 만원권 한장의 푸르름 나는 내 시에서 간직하면 좋겠다 퇴근길의 뻑적지근한 매연 가루, 기름칠한 피로 새벽 1시 병원의 불빛이 새어나오는 시 반지하 연립의 스탠드 켠 한숨처럼 하늘로 오르지도 땅으로 꺼지지도 못해 그래서 더 아찔하게 버티고 서 있는 하느님, 부처님 썩지도 않을 고상한 이름이 아니라 먼지 날리는 책갈피가 아니라 지친 몸에서 몸으로 거듭나는 아픈 입에서 입으로 깊어지는 노래 절간 뒷간의 면벽한 허무가 아니라 지하철 광고의 한 문장으로 똑떨어지는 고독이 아 니라 사람 사는 밑구녁 후미진 골목마다 범벅한 사연들 끌어안고..

매일 에세이 2021.12.23

시 따라 걷는 생각1

시 따라 걷는 생각 1 선운사에서 최영미 시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꽃이 어디 선운사에서만 피고 지겠습니까. 마음 허전하면 찾아갈 곳이 어디 선운사만 있겠습니까. 하필이면 꽃이 지는 계절, 사람을 잃어버린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습니까. 사람을 얻을 때, 한두 번 겪는 일도 아닌 잊지 못할 일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씨앗에 숨긴 꽃을 피우려 추운 겨울을 견디고, 싹이 나면서 들이차는 빗물에 쓸리면서도 약한 뿌리로 버티던 세월 동안의 추억이 알알이 새겨져..

매일 에세이 2021.12.22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에 대한 의문 해소, 긍정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 전영미옮김, 출판사는 부.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에 대한 의문 해소, 긍정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 전영미옮김, 출판사는 부.키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했다는 기사에 붙은 사진은 회사에서 해고된 직장인이 사물을 담은 박스를 들고 회사문을 나서는 쓸쓸함이 가득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1997년 IMF 외환위기사태를 겪을 때의 고통이 생각났습니다. 급여에 맞춰 생활하던 동료들은 너도나도 가진 예금과 보험을 해약하여 생활비에 보탰습니다. 갑자기 아이들의 학원을 끊을 수도 없고, 생활 규모를 하루아침에 줄일 수도 없었습니다. 예상되었던 수입이 주는 것은 그래도 다행이었습니다. 곧이어 해고의 칼이 춤을 추었습니다. 본사 인사부가 휘두르던 칼은 각 부서의 임원에게 주어졌습니다. 각 부서가 정해서 감원 대상자를 인사부로 통보하라는 방식..

매일 에세이 2021.12.20

독서후기: 병목사회, 조지프 피시킨 지음/유강은 옮김, 문예출판사

독서후기: 병목사회, 조지프 피시킨 지음/유강은 옮김, 문예출판사 공정한 사회를 젊은이들은 목놓아 외칩니다. 부모를 잘 만나, 좋은 기회를 얻어 인턴을 한다던가, 여러 기회를 통해 결국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 좋은 직장을 갖는 것에 대하여 부러움과 함께 자기에게는 주어지지 못한 기회에 대하여 박탈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마도 인천공항정규직 사건처럼 오랜 기간 한 직종에서 전문성을 가진 계약직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에 대하여도 기존의 정규직원들이 반대를 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공부해서, 높은 경쟁관문을 뚫고 왔는데, 쉽게 계약직원으로 입사한 후 어떤 시험도 치르지 않고 정규직원이 되는 것은 불평등하다”고 주장합니다. “너희도 시험 쳐서 정규직원이 되어라”는 주장이지요. 업역도 다르고,..

매일 에세이 2021.12.08

책 이야기 : 내 아이가 힘겨운 부모들에게, 오은영 지음, 녹색지팡이 출판

책 이야기 : 내 아이가 힘겨운 부모들에게, 오은영 지음, 녹색지팡이 출판 오은영 선생이 지은 책을 몇 권 구입하고는 이제 다 읽었다. 내 아이들이 이십 대 후반이고 삼십 대 초반이지만 아이와 아이를 키운 나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지금 어린 자녀들을 키우는 분들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을지 생각하면 안타깝다. 하지만 어쩌랴, 부부가 좋아 낳은 아이들인 건 분명하니 배우고 익혀 아이들과의 관계를 잘 만들어가면서 키울 수밖에… 다른 방법을 아는 분은 알려주시라. 문. 초등학교 2학년밖에 안 됐는데도 갑자기 말을 안 들어요. 벌써 사춘기가 아닌가요? 답. 아닙니다. 그러나 너무 이른 반항기는 대부분 심각한 사춘기의 예고편입니다. 문. 사춘기 아이가 똥고집을 부리네요? 답. 똥고집을 부릴..

매일 에세이 2021.11.24

시사in 읽기 : 조경현 뉴욕대 교수 인터뷰 기사. 전혜원 기자

인공지능 최전선에서 편향과 영향을 논하다. 시사IN 읽기 : 조경현 뉴욕대 교수 인터뷰 기사. 전혜원 기자 인공지능의 세계적 권위자들이 나란히 손에 꼽는 차세대 톱스타는 1985년생인 조경현 뉴욕 대학 컴퓨터과학과 교수랍니다. 조 교수와 한 인터뷰 내용 중 눈에 쏙 들어오는 내용이 있어 정리를 해봅니다. 전 기자 : 최근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상금을 기부하는 이유를 언급하며 “실제 능력 차이보다 아웃풋(결과) 차이가 작은 게 좋다”라고 말했습니다. 조경현 교수 : 일단 이 사람의 능력이 저 사람보다 더 좋다, 안 좋다 얘기하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보통, 능력이라는 게 사회적인 프록시(대용물)를 써서 재는 거잖아요. 대학 입학시험을 잘 봤는지, 어느 회사에 입사했는지, 연봉이 얼만지, 사..

매일 에세이 2021.11.23

독후감 :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장편소설, 문학동네.

독후감 :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장편소설, 문학동네. 제주 4.3 사건을 알게 된 것, 그리고 대통령이 직접 사과를 했던 것을 기억한다. 2003년의 일이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고 여전히 4.3 사건의 발단이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가 시발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다시 득세했다. 다시 나라의 대통령이 제주를 방문하여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한 것이 2018년 4월 3일이었다고 한다. 대통령의 사과가 2003년이었고 2018년에야 다시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참석하였으니 이 이야기는 15년의 세월이 촛불처럼 타고 나서야 이뤄진 것이다. 작가 한강은 ‘작가의 말’에서 ‘2014년 6월에 이 책의 첫 두 페이지를 썼다. 2018년 세밑에야 그다음을 이어 쓰기 시작했으니, 이 소설과 내 삶이 묶여 있..

매일 에세이 2021.11.22

소개 받은 책, 최영미 시집 (다시 오지 않는 것들), 친구의 에세이 글

저는 시집을 읽으려고 노력해도 잘 못 읽습니다. 쉽게 다가오지 않는 시어들에 읽기가 힘들었습니다. 쉽게 읽으며 감동받은 시집으로는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과 원태연의 (손끝으로 원을 그려봐 네가 그릴 수 있는 한 크게 그걸 뺀 만큼 널 사랑해) 정도입니다. 좋아한 시는 윤동주의 서시, 박목월의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이 표현된 시(나그네)입니다. 대충 어떤 시어를 좋아하는지 아실 듯하지요. 그런데 친구가 보낸 카톡에서 시집을 소개받았습니다. 책을 소개하려는 글이 아니라, 시집을 읽은 감상을 적은 소감글이었습니다. 그래서 제 블로그로 옮겨왔습니다. 동의는 나중에 받으려고 합니다. 허락할 겁니다. 詩 읽기를 생활로 하다시피 하는 분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다. 최영미 시집 시집을 읽으며 이렇게 마음이 ..

매일 에세이 2021.11.18

C.J.튜더 장편소설 ‘초크맨’, 이은선 옮김, 다산 책방(다산 북스)

C.J. 튜더 장편소설 ‘초크맨’, 이은선 옮김, 다산 책방(다산 북스) 괴기스럽지 않으면 좋겠다. 불가해한 자연현상으로 핑계 대지 않으면 좋겠다. 귀신, 악마, 사탄이 모든 죄를 덮어쓰고 끝내지 않으면 좋겠다. 스티븐 킹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간혹 그런 생각이 든다. 나도 비현실적인 모든 가능성을 다 고려한다면(그 존재 증명을 요구할 수 없는 악마나 귀신 악령의 출현) 토커티브할 수 있고 수다스럽고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꾸밀 수 있지 않을까? 잘 꾸며진 추리 소설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어쩌면 과문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워낙 스릴러물이라고 해도 요즘은 악령의 출현이 너무 잦다. 이런 단점을 극복한 추리소설이었다. 처음 들어본 이름 C.J. 튜더, 영국 작가라고 한다. 초크맨이라는 제목에서 쉽게 ..

매일 에세이 2021.11.15

시사in읽기 738호 : 법정에서 용기 낸 그 아이 덕분에, 오지원(변호사) 씀

시사in 읽기 : 법정에서 용기 낸 그 아이 덕분에, 오지원(변호사) 씀 법정에서 만난 한 소녀를 말하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립니다. ‘낯선 아저씨가 술에 취해 아이를 학교로 끌고 가 돌로 아이의 머리를 치고 바지를 벗겼는데 아이가 겨우 도망쳐서 성폭행을 면했다. 어머니는 아이를 법정에 데려갈 수 없다고 했다. 상처도 크고 무엇보다 아이의 장래가 걱정된다고 했다. 피고인이 전면 부인하고 있었기에 아이의 법정 증언이 꼭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어머니는 완강했다.’ “네 잘못이 아냐” 이렇게 우리는 아이에게 말을 해주어야 합니다. “조심해서 다니지” “그래서 밤늦게 다니지 말라고 했잖아” “엄마가 얼마나 걱정하는지 알면서 그랬니” 이 말을 듣는 아이는 무슨 생각이 들까요? 왜 저런 걱정을 엄마에게 끼..

매일 에세이 2021.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