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따라 걷는 생각 6
죽음은 연습할 수 없다 최영미 시인
-그해 여름의 문자메시지
아버지 위독하시대
아버지 운명하셧다
(맞춤법이 틀려도 그냥 넘어갔다)
영정사진 갖고 병원 장례식장으로 와
아버지 주민등록 주소 좀 알려줘 빨리
엄마랑 통화했어
아버지 세례명 요한
천주교 식으로 장례 치르지 말래
안치료 20만
입관료 20만
음식값 기본 50만
상복 대여비 2만
수의 38만
관 25만
운구비 40만(기사 팁 포함)
화장비 10만
유골함 3만
꽃값은?
계산은 나중에 하자
아무도 원하지 않는 아버지의 피 묻은 틀니를
가져가려는 자식이 없어
무슨 전염병 만지듯
흰 장갑을 낀 손으로 쓰레기통에 버렸다
80이 되도록 젊은이처럼 단단하던,
당신의 자랑이던 몸이 뜨거운 재가 되기까지
40분도 걸리지 않았다
상속포기 서류를 법원에 접수하고
하우스 와인을 한 잔 마신 뒤에
성가신 여름이 끝났다
“난 내일 죽어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를 쳤다.
매일을 죽기 하루 전날 같이 열심히 산다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자연히 애정을 갖고 애착을 가지는 것도 별로 없었다.
그저 꾸역꾸역 살아가는 것이,
자식을 키우고, 아내를 보호하는 것이
내 삶의 목적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아내도 아이도 모두 늙고 컸다.
아이들과 함께 저녁을 먹는 주말이 즐거운 일상이 되었다.
나에겐 웃음 아끼던 아내가 아이들과 함께면 웃음이 헤프다.
서운한 마음이 생기더라.
아이들과 내일 헤어진다면 어떨까 생각이 드는 날이 잦다.
‘-그해 여름의 문자메시지’를 받던 내가 아니게 되면서
난 내일 죽으면 아이들이 보고 싶지 않을까?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40분 뒤면 뜨거운 재가 될 자리가 바로 옆에 있는데, 혹 미련이 남은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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