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따라 걷는 생각 3
꽃들이 먼저 알아 최영미 시인
당신이 날 버리기 전에
내가 먼저 떠나지 않을 거야
나비가 날아든다는 난초 화분을 집 안에 들여놓고
우리의 사랑처럼 싱싱한 잎을 보며 그가 말했다
가끔 물만 주면 돼.
물, 에 힘을 주며 그는 푸른 웃음을 뿌렸다
밤마다 나의 깊은 곳에 물을 뿌리고픈 남자와
물이 말라가는 여자의 불편한 동거
꽃가루 날리는 봄과 여름을 보내고
첫눈이 오기 전에 나는 그를 버렸다
아니, 화분을 버렸다
소설을 쓴답시고 정원을 배회하며
화분에 물 주기를 잊어버렸다
꽃들이 더 잘 알아.
나비가 날아들지 않는 난초 화분 옆에서
시들시들 떨어진 꽃잎을 주우며 그가 말했다
얘네들이 더 잘 알아.
당신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당신이 날 버리기 전에
내가 먼저 시들지 않을 거야
먼저 버린 건, 당신 아니었나?
연인의 마음을 붙잡는 일은 어렵다. 먼저, 많이 사랑할수록
먼저, 더 많이 상처를 받는다.
주기만 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했는데...
내가 한 말과 내가 한 행동으로 인하여
그의 금 갔던 마음 거울을 보면서 나는 그랬다.
"왜 네 거울은 금이 갔니?"
나는 내가 던진 돌을 잊고는 항상 그렇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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