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롬을 다시 읽는 이유
이제 이야기는 결론으로 치닫습니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가지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인간 심리를 김 소장은 설명합니다. 초기 자본주의를 지나 현대 자본주의에서 사는 사람들을 지배하는 감정을 설명하면서 고립감(추방의 공포), 무력감(복종과 의존과 학대의 연쇄들), 권태감(지옥이 있다면, 바로 이 무한한 권태감), 기타 감정들(무가치감과 회의감)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이러한 감정에서 자유로운 분들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상습적으로 계속해서 느끼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누구에게나 어느 때 불쑥 찾아오는 감정이라고 하면 지나칠까요?
사람에게 부정적인 감정이 극심해지면 그것을 방어하려는 동기가 그의 주요 동기가 됩니다. 부정적 감정의 비대화는 곧 고통이자 정신병의 본질이기도 하므로, 사람은 무엇보다 고통과 병에 집중합니다. 현대인은 지독한 고립감, 무력감, 권태감 등에 시달리고 있으므로, 인간 본성에 기초한 동기는 오히려 부차적이고 사치스러운 동기로 전락했습니다. 한마디로 현대인은 물질적으로 가난해서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몹시 병들어 있어서, 그에게는 사람답게 사는 삶이 마치 비현실적인 동화처럼 들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김 소장은 현대인의 주요한 동기를 힘(무력한 자의 굴종과 숭배), 현실 회피(현실에 관해서는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대세 추종(고립으로부터의 도피), 인간 상품(만인은 만인의 상품), 소유와 소비(행복에 관한 새로운 미신)로 자세히 설명합니다.
현대 자본주의는 무엇보다 현대인의 동기와 감정을 규정함으로써 새로운 인간, 프롬의 개념으로 표현하자면 ‘새로운 사회적 성격’을 탄생시킵니다. 그러면서 프롬의 이론에 근거한 현대 자본주의에 전형적인 사회적 성격들을 규정합니다. 무력한 자의 심리로서 권위주의적 성격, 고립자의 심리는 대세 추종적 성격, 권태로운 자의 심리는 쾌락지향적 성격, 그리고 인간 상품의 심리는 시장 지향적 성격을 만듭니다.
현대인의 이러한 사회적 성격은 사회와 관계하면서 만들어진 성격입니다. 사회가 병이 들었다면 사람의 정신 건강을 악화시킨다는 것이 프롬의 주장이며 그는 자본주의 사회가 인간 본성을 무참히 유린함으로써 사람을 정신적으로 병들게 만드므로, 자본주의 사회야말로 병든 사회라고 규정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심리학자들은 암묵적으로 비정상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으로 간주하지만, 프롬은 그런 견해에 강력히 반대합니다. 프롬은 ‘인간 중심적인 건강의 개념과 사회적 적응 문제에서의 건강 개념이 서로 모순 관계에 있다’고 선언하면서, ‘병든 사회에서 훌륭히 적응해 갈 수 있는 인간은 인간적인 의미로 볼 때 확실한 환자’라고 주장했습니다. 병든 사회에서 정상적으로 적응하고 살 수 있는 사람은 병든 사람이라는 지극히 논리적이며 딱 맞는 설명입니다. 눈 둘인 붕어가 눈 하나인 붕어들만 사는 동네에서 비정상이라고 불리는 이야기는 여러분도 들어 보셨지요? 그 동네에 적응하려면 눈 하나를 빼야 할까요?
그런데도 왜 대부분의 심리학자는 명시적 혹은 암묵적으로 사회에 대한 적응을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으로 채택하고 있을까요? 프롬의 설명을 통속적으로 말하면, 대부분의 심리학자들은 설사 사람들의 정신 건강을 위해 사회변혁이 필요함을 알고 있더라도, 밥벌이에만 급급해 자기들이 살고 있는 병든 사회를 비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정상과 비정상은 ‘사회에 대한 적응’은 물론이고 ‘다수결’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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