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턴은 외톨이 은둔형 과학자가 아니다
18세기 초 영국의 유명한 수학자 뉴턴은 노예무역에 투자했습니다. 그는 남해 회사의 주식 2만 파운드 이상을 매입했는데 오늘날 가치로 200만 파운드가 훌쩍 넘는 엄청난 액수였습니다. 18세기에 노예무역은 절정에 달했습니다. 뉴턴이 금융업에 종사했다는 사실은 종종 간과되는 18세기 과학의 한 측면을 암시합니다. 뉴턴은 18세기 대부분의 과학자처럼 외톨이 천재로 묘사되곤 합니다. 1687년에 뉴턴은 기념비적인 저작인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출간했는데 이 책은 ‘프린키피아’로 더 잘 알려졌습니다.
뉴턴의 프린키피아는, 저자의 책에서 뉴턴을 소개하기 이전에 그리스의 아이디어, 오스만제국, 아프리카의 천문학자들, 베이징과 인도의 천문 지식을 소개하면서, 그들이 제시한 여러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정확한 수학적 세부 사항과 함께 뉴턴 자신의 이론을 제시했으며 이로써 뉴턴은 우주의 작용 방식에 관련된 철저한 수학적 설명을 제공하면서 고대 철학의 그림자를 완전히 없앴습니다.
프린키피아의 중심에는 만유인력 이론이 있었습니다. 뉴턴은 이 아이디어를 어디서 얻었을까? 흔히 알고 있는 상식과는 달리, 뉴턴은 머리에 떨어진 사과에 영감을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신 프린키피아의 핵심 구절에 ‘장 리셰르’라는 프랑스 천문학자의 실험을 인용했습니다.
뉴턴은 “온 세상이 다 알고 있듯 나는 관찰을 하지 않는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역사학자들은 그동안 이 말을 뉴턴이 외부와는 고립된 이론가였다는 뜻이라고 이해했지만 사실 그가 말하고자 한 바는 자신이 지구 반대편에서 다른 사람들이 행한 관찰에 의존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적도 부근에서 이뤄진 리셰르의 실험은 뉴턴이 프린키피아를 저술하는 동안 의존한 수백 개의 데이터 원천 가운데 하나였을 뿐입니다. 그뿐 아니라 뉴턴은 중국에서 돌아온 동인도회사 간부들이 전해준 조수에 대한 데이터나 메릴랜드 주 노예 주인들이 관찰한 혜성에 대한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뉴턴이 천문학 관련 서적보다 여행 서적을 2배나 많이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 이 점을 아주 잘 드러냅니다. 뉴턴이 우주를 지배하는 기초적인 물리적 힘에 대한 생각을 뿌리부터 바꿀 수 있도록 한 동력은 과학과 제국의 보다 넓은 세계에 연결된 방대한 정보의 수집이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프린키피아는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원대한 과학 고전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 뉴턴의 아이디어는 엄청난 논란에 휩싸였고 18세기 물리학의 역사는 1727년에 뉴턴이 사망한 뒤에도 계속 논의되었던 그의 주장을 둘러싼 논쟁으로 점철되었습니다. 이 논쟁은 남아메리카에서 태평양까지 이어졌습니다. 18세기 내내 유럽 국가들은 새로운 영토의 점유권을 주장하고 그 영토를 따라 과학적인 관찰을 수행하면서 수많은 탐험을 후원했습니다. 18세기 유럽의 탐험가들은 지구 이곳저곳의 새로 발견된 지역을 가로지르는 길을 찾고 여러 관측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잉카 천문학자와 타히티 선원들을 포함한 토착민의 과학 지식에 의존했습니다. 이러한 토착 지식이 없었다면 뉴턴의 이론은 불완전했을 것입니다.
(이상은 저자의 책 133~143쪽을 요약한 내용입니다)
저자는 18세기 유럽의 과학을 발전시킨 원동력을 노예제와 식민지 무역, 그리고 식민지 확보를 위한 전쟁에서 찾습니다. 유럽인들의 약탈과 폭력이 식민지 토착민들의 과학지식을 탈취하고 이용한 사례를 무수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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