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시사in읽기 738호 : 법정에서 용기 낸 그 아이 덕분에, 오지원(변호사) 씀

무주이장 2021. 11. 12. 10:56

시사in 읽기 : 법정에서 용기 낸 그 아이 덕분에, 오지원(변호사)

 

 법정에서 만난 한 소녀를 말하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립니다. ‘낯선 아저씨가 술에 취해 아이를 학교로 끌고 가 돌로 아이의 머리를 치고 바지를 벗겼는데 아이가 겨우 도망쳐서 성폭행을 면했다. 어머니는 아이를 법정에 데려갈 수 없다고 했다. 상처도 크고 무엇보다 아이의 장래가 걱정된다고 했다. 피고인이 전면 부인하고 있었기에 아이의 법정 증언이 꼭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어머니는 완강했다.’

 

 네 잘못이 아냐이렇게 우리는 아이에게 말을 해주어야 합니다.

조심해서 다니지

그래서 밤늦게 다니지 말라고 했잖아

엄마가 얼마나 걱정하는지 알면서 그랬니

이 말을 듣는 아이는 무슨 생각이 들까요? 왜 저런 걱정을 엄마에게 끼쳤는가 하고 착한 아이들일수록 자신을 질책하게 되지 않을까요? 상처 입고 놀란 마음에 다시 무거운 돌을 얹는 말이 될 겁니다. 오지원 변호사는 12살의 어두운 기억으로 인하여 어른이 되어 외부 세계에서 이룬 성취와 밝고 명랑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혼자 있을 때는 알 수 없는 불안감과 불행감이 배경음악처럼 흐르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엄마는 증언을 반대했지만 저는 하고 싶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또 생기면 안 되거든요. 제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두려워해서도 안 될 것 같아서요. 저 사람이 저를 강간하려고 했던 사람이 분명합니다.” 아이는 증언을 했다고 합니다.

 

 오 변호사는 이 경험을 한 후를 이야기합니다.

그날 밤 야근을 하다 밤새 울었다. 내가 아주 깊이 억압해둔, 존재했으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기고 싶었던 내면의 기억이 수면 위로 완전히 떠올랐다. 물론 그다음 날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웃고 떠들며 살았지만 나는 그날 이후 내 피해 경험에 대해 아주 추상적으로나마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네 잘못이 아냐

인간의 (고통과) 죽음은 자연의 영역이 아니라 사회적 조건들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 조건 자체가 자연화되었고 그에 압도적으로 영향을 받는 계층이 있다.’(시사in, 17년 차 작가의 인사 평안하시기를, 임지영 기자 인터뷰에서 황정은 작가의 말)

 

 우리 주위에 있는 가족이나 친지 친구들이 겪는 고통은 우리를 옥죄면서도 우리가 무기력감을 느낄 정도로 변화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그래서 우리가 변화시킬 의지도 힘도 없을 듯한 사회적 조건들에 얽매여 스스로 뱉는 말들에 의해 우리의 가족과 친지와 친구들에게 2차 고통을 가할 수 있다는 것에 화들짝 놀라면서 다시 말합니다. 안 되면 외우기라도 하려고요.

네 잘못이 아냐!”

시사in 738호, 시사인 홈페이지에서 빌려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