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따라 걷는 생각2
시(詩) 최영미 시인
나는 내 시에서
돈 냄새가 나면 좋겠다
빳빳한 수표가 아니라 손때 꼬깃한 지폐
청소부 아저씨의 땀에 전 남방 호주머니로 비치는
깻잎 같은 만원권 한장의 푸르름
나는 내 시에서 간직하면 좋겠다
퇴근길의 뻑적지근한 매연 가루, 기름칠한 피로
새벽 1시 병원의 불빛이 새어나오는 시
반지하 연립의 스탠드 켠 한숨처럼
하늘로 오르지도 땅으로 꺼지지도 못해
그래서 더 아찔하게 버티고 서 있는
하느님, 부처님
썩지도 않을 고상한 이름이 아니라
먼지 날리는 책갈피가 아니라
지친 몸에서 몸으로 거듭나는
아픈 입에서 입으로 깊어지는 노래
절간 뒷간의 면벽한 허무가 아니라
지하철 광고의 한 문장으로 똑떨어지는 고독이 아
니라
사람 사는 밑구녁 후미진 골목마다
범벅한 사연들 끌어안고 벼리고 달인 시
비평가 하나 녹이진 못해도
늙은 작부 뜨듯한 눈시울 적셔주는 시
구르고 구르다 어쩌다 당신 발끝에 채이면
쩔렁! 소리 내어 울 수 있는
나는 내 시가
동전처럼 닳아 질겨지면 좋겠다
시가 허황되면 고상해지고, 먼지가 낀다. 그런 시를 쓴 시인의 얼굴은 밝은 듯, 칙칙하다. 조명 속 디민 얼굴엔 만들어진 웃음이 있지만, 조명 밖 손은 유부녀 허벅지를 더듬고 있을지 모른다.
시가 고상하고, 허황되면 시인 꼴은 더러워진다.
아는 사람만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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