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뮤얼 헌팅턴의 약력을 확인하던 중 그가 카터 행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1977~1978)을 지냈다는 정보를 보고는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같은 카터 행정부에서 1977년부터 1981년까지 안보담당보좌관을 지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입니다. ‘거대한 체스판(the grand chessboard)’이라는 책이 번역되어 읽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의 감상은 한마디로 ‘기분이 더럽다’였습니다. 세계를 하나의 큰 체스판으로 보고 국제적 역학관계와 미국의 전략을 소개하는 책으로 기억합니다. 미국의 행정부에서 근무했던 사람의 책이니 미국이 세계를 보는 시선을 잘 보여주는 책이라고 생각해서 읽었는데 일방적인 그들의 생각에 체스판의 졸이 된 우리나라를 보는 현실이 싫었습니다.
40여 년간 지속된 냉전 체제가 1990년을 전후해 갑자기 해소되자 냉전 이후 세계질서의 구조가 사회과학계에서도 논쟁의 초점이 되었고 기선을 제압한 것은 프란시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말’이란 도발적 표현으로 제시한 자본주의 일원론이었습니다. 후쿠야마는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로 인류의 사회문화적 진화가 종착점에 도달하고 있다고 주장을 했다고 합니다. 승리에 도취한 주장으로 보입니다. 반대편에 있던 우리나라의 지식인들은 이때 심한 좌절감에 빠졌다는 얘기를 듣고는 의아했습니다. 이념이 갈려 같은 민족끼리 잔인한 전쟁을 겪었으면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을 할 법도 한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가 봅니다. 요즘은 시선이 많이 달라졌지요?
엊그제 ‘하이재킹’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비행기를 납치해 북한으로 가려는 납치범과 그에 대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북한으로 가는 민항기의 엔진을 쏘라는 명령을 무시한 공군 조종사인 주인공은 그들이 비록 북한으로 갔지만 죽지는 않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의 상관은 비행기를 쏘라는 명령을 따르지 않으므로 해서 피납되어 북송된 승객의 가족 수천 명이 겪을 고통을 생각하지 않았느냐고 반박합니다. 피납된 원인이 어디에 있든 북쪽에 갔다 온 사람들은 사상 검증을 받아야 했습니다. 연좌제가 판을 치고 빨갱이라고 하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세상이었습니다. 2024년 7월, 과거 하이재킹 사건을 보는 우리의 시선에는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성숙함이 있습니다. 이념이 지배하는 인간 세상이 아니라 사람 먼저 생각하는 세상에 다가갔다고 믿습니다. 이야기가 옆길로 빠졌습니다.
저자는 냉전 체제가 비록 붕괴되었다 하더라도 세상은 자본주의로 통일되어 평화가 오리라는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다른 문명 속에 사는 국가와 민족은 충돌을 한다는 주장을 합니다. 세계정세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자세히 설명하면서 그는 주장을 펼칩니다. 이슬람문명, 기독교문명, 아시아의 유교문명, 인도의 힌두문명 등이 지금 어떻게 갈등을 하면서 충돌하는지를 증거를 들이대며 주장합니다. 서구 기독교 문명을 기반으로 자본주의를 발전시키고 성숙한 민주주의 선진국이 된 핵심 국가들 간의 분쟁보다는 서로 다른 문명을 가진 단층선이 분명한 국가들 간의 단층선 전쟁이 어디서나 언제나 일어날 수 있으며 일어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발칸반도에서의 분쟁은 어떤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분쟁이 어떻게 체첸과 러시아 간의 분쟁과 연결되어 있는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지금의 전쟁은 과거 어떤 사건 사고들에 의해 예비되어 있었는지 알 수 있게 했습니다.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베트남, 필리핀의 분쟁은 어떤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국내 정치의 활력을 우리 정보회사들은 매일 보도라는 이름으로 팔고 있지만 동아시아의 변방의식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국제정보에 대해서는 주체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지 않은 듯합니다. 주체적이지 못하니 국제정보에 대한 중요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한 듯도 합니다. 그들을 통하여서는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국제무대에서 행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힌트를 얻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세계를 폭넓게 보고 이해하는 학자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하마스가 공격한 것에 대하여 보복공격을 하고 이에 대하여 전 세계가 보복의 정도가 심하다고 비난을 하지만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공격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헤즈블라가 이스라엘 정착촌에 대한 공격을 합니다. 이스라엘은 헤즈블라와의 일전도 불사하겠다고 합니다. 미국의 지원은 받으면서도 미국의 간섭은 싫다는 이스라엘이 많이 나가면 이란과의 전쟁도 예상된다는 뉴스도 나옵니다. 이 분쟁은 유대문명과 이슬람문명 간의 갈등이 원인일 것입니다.
저자는 남중국해에서 분쟁이 발생할 경우 동아시아 세력과 미국의 세력이 충돌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책의 끝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최근 한미일이 ‘동맹’이라는 주장을 하는 국민의 힘 의원들에게 ‘정신 나갔다’는 비판을 한 의원이 있습니다. 그의 설명을 들으며 우리 영토에 대한 야욕을 드러내고 평화헌법을 부정하며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되겠다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펴는 일본이 생각났습니다. 미국에 바짝 붙어 중국과도 일전을 불사할 듯 설치는 일본이 보입니다. 그런데 미국인의 시각에서는 일본이 결국 중국 편에 붙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봅니다. 과연 그럴까요? 저 같은 초보가 어찌 알 수 있을까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국제 정세를 잘 읽어주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저렴한 방법을 찾는 게지요. 책이 좋겠지요. 아~ 사뮤엘 헌팅턴에게도 한국은 여전히 졸로 보이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 대한 언급은 단어로만 존재합니다. 문장은 없습니다. 참고하시고 읽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독도를 지키는 독도경비대원들은 무시무시한 바다 모기에 시달릴 것입니다. 그들의 노고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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