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의 역동성이 대단하다는 말을 합니다.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쉽게 예상하기가 힘들다는 말도 자주 듣습니다. 정치학은 사회과학의 영역입니다. 기본적으로 정치가 학문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현실 정치를 해석하는 수단으로써 효능이 있어야 합니다. 어중이떠중이 전문가들이 종편과 공중파의 방송을 허비하는 시절이 계속되었습니다. 웬만한 그들 주장은 시사인을 읽는 독자라면, 정치에 약간의 관심만 있다면, 올바른 정보를 찾는 방법을 조금만 안다면 중언부언이요 시간 낭비라는 것을 압니다. 그들이 행여나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며 큰소리나 치지는 않는지 걱정이 됩니다. 자기의 지식이 금과옥조나 되는 듯 강요하는 선생을 만나는 불행이 계속되지 않으면 좋겠지만 세상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학위 간판이 아직도 힘을 쓰는 세상입니다.
전 기자의 기사는 민주당이 당원권 강화를 위한 방안을 실행하였다고 소개하면서 같은 당 김영진 의원이 공개적으로 비판하여 주목을 받았다고 적고 있습니다. 김의원은 “민주당을 내부로부터 멍들게 하고 혼란스럽게 하는 결정이다. 정권교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을 하면서 “당원권 강화라는 미명하에 원내대표와 국회의장을 뽑는데 당원 의사를 반영하게 되면, 이른바 ‘개딸(개혁의 딸)’로 불리는 열성 당원의 의사에 반하는 사람은 사실상 원내대표와 국회의장이 될 수 없게 된다. 이러면 재선 때부터 5선까지 내내 열성 당원들에게 충성하는 말과 행동 밖에 하기 어렵다. ‘개딸’과 당대표의 생각이 무엇인지 먼저 살피는 상황으로 가면 건강하고 힘 있게 민주당을 확대 강화하고 국민에게 신뢰받는 정책 정당으로 갈 수 있겠나?” 주장을 합니다. 이 주장은 당내에서 “엘리트주의다”라는 비판을 받습니다.
전 기자는 당대표나 최고위원이 어쨌거나 민주당 전체를 대표한다면, 원내대표는 민주당 국회의원들을, 국회의장은 국회 전체를 대표하는 존재다고 하면서 박상훈 전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정치학 박사)의 말을 인용합니다. 엘리트주의라고 비판한 다른 의원의 주장에 대한 반박입니다. 반박의 내용은 이재명 대표가 당의 의사결정에 당원 참여를 반영하는 것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는 표현을 즐겨 쓰는 것은 “민주주의와 정당에 대한 굉장한 오해”라면서 미국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의 말을 인용합니다. 정당은 ‘내부’가 아니라 정당 ‘사이’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며 중요한 건 정당 사이의 경쟁이 얼마나 폭넓고 강하게 이뤄지느냐이고 그러려면 정당 내부는 분열하기보다 통합하고 단결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당원보다는 당에 더 많이 관여하고 헌신하는 국회의원, 당직자, 대의원들이 당의 의사결정에서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적고 있습니다. 또 당원투표를 책임 없는 유튜브 등 인플루언서들이 예전 국회의원이나 지구당위원장의 자리를 대체했다며 이를 비판적으로 지적하면서 포퓰리즘의 한 유형인 ‘국민투표제적 민주주의’라고 주장합니다.
전 기자는 이재표 대표 연임을 염두에 둔 당헌 개정이라며 반발하는 김영진 의원의 말을 다시 전하면서 당대표 연임은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전례가 없다고 소개합니다. 그러면서 기사의 끝을 맺습니다. “정당의 중요한 의사결정은 어떻게 이뤄져야 하나. 민주당 당헌. 당규 개정은 한 정당의 내부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앞에서 정치학은 현실을 해석하는 효능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을 제가 했습니다. 정치부 기자는 현실에서의 정치적 사건, 사고를 알려주고 그 의미를 독자에게 전달해야 할 것입니다. 박상훈의 비판에서 당원을 국민으로 대체하여 읽으면 어디가 잘못되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국민의 선택을 받은 대표들이 가진 기능이 있으니 그 기능을 통합하고 단결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대의기관들이나 그 소속원들은 국민의 의사는 무시할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특히 책임지지 않는 유튜브 등 인플루언서들이 국민의 뜻으로 포장하여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포퓰리즘이라는 말이 됩니다.
국민은 국가의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고 싶어 합니다. 다만 효율적인 수단이 없어 그동안 참여가 제한되었습니다. 군인이라면 총칼이 있어 쿠데타로 정권을 쥡니다. 성공한 쿠데타는 심판할 수 없다고 법원은 전문가로서의 의견을 내지만 성공한 쿠데타라고 해도 미래 어느 시점 처벌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국민의 뜻입니다. 보다 적극적인 국민은 성공한 쿠데타를 심판할 수 있다고 해서 국민의 저항권을 인정합니다. 시민운동단체에 가입해서 사회와 정치를 바꾸려던 노력은 실제 정치에 참여할 통로가 막혔기에 택한 대안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당원으로서 정당을 통한 정치참여가 가능합니다. 적극적인 의사표현을 하는 당원을 ‘개딸’이라며 조롱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소수이고 실제 권력을 쥐지 못했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당원권을 강화하면 그들을 조롱할 수 없습니다. 정당에 가입하여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을 꿈꾸는 정치인들은 가장 적극적인 의사표현을 위해 행동에 나선 자들입니다. 적극성을 비판한다면 누구도 국회의원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개딸의 조롱 여부는 그들의 의견의 정당성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일개 당원이니까 선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시할 수 없습니다. 개인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을 민주주의라고 하지 않습니까? 엘리트라야 말을 할 수 있다? 선출된 권력이 선출한 권력을 무시하는 기능을 누가 인정했습니까? 그동안 국민과 정당원은 수단이 없었던 겁니다. 이제 그 수단을 가지려 하고 그들의 주장을 인정하는 정치인이 많아진 겁니다. 그들을 비판하는 것은 현실을 해석하는 효능을 잃고 그저 배운 지식의 편린으로 가르치려는 몽니에 불과합니다.
정당의 기능은 정권을 잡아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것입니다. 다수 국민의 뜻을 따라야 정권을 쥘 수 있습니다. 정치적 기능을 다하기 위하여 우리는 행정부와 입법부를 구성합니다. 그들의 기능은 전체 목적을 위하여 기능하도록 정합니다. 언제 그 기능이 국민의 뜻을 무시하도록 설계되었습니까? 과거에는 비록 가능했지만 이제 현실에서는 많은 제약을 받습니다. 그 이유는 많은 정보가 유통되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유튜브에 출연하는 많은 사람들이 과거 유통했던 정보와 지금 유통되는 정보를 공유합니다. 그들의 정보는 특권층을 형성하려는 노력을 좌절시킵니다. 이제 권력을 눈치 보지 않고 함부로 행사하기에는 많은 부담이 생겼습니다. 이게 퇴보일까요 아니면 발전일까요?
조국혁신당이 출발하자 별의별 논리로 비판을 해대던 정치(학) 전문가들이 있었습니다. 일어난 현실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그들은 자신의 희망을 얘기하는 무당들이었습니다. 국민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조국혁신당을 지지했습니다. 조국혁신당을 선택한 국민들은 선거판에서만 권력을 쥐길 원하지 않습니다. 국회에서 지지한 정치인들의 행동을 독려하고 지지하며 힘을 보태고 싶어 합니다. 그 경로를 확보해 달라는 주장을 하자 당원권을 강화하는 방법이 제안된 것입니다. 이 경로를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것을 정치학을 통해 비판하는 것은 도그마를 강조하는 학문의 오만이고 무지입니다. 다음 선거에서 당원들은 다시 정치인 개개인을 지역구 단위로 평가하고 심판할 것입니다. 그 힘은 더 커져 후보자 선정부터 작용할 것입니다. 그 힘을 비판하기보다는 자기의 정치 소신을 밝히고 정치활동을 하면 됩니다. 지지는 당원과 국민의 몫입니다. 남의 몫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을 무어라 불러야 할까요.
문명의 충돌이라는 책에서 읽은 대목을 소개하면서 글을 마칩니다. “다른 문명들이 역사를 순환적이거나 정적인 상태로 보는 것과는 달리 이슬람교와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와 함께 역사를 목적론적으로 이해한다.”(346쪽) 과거 정당원들이 수단이 없어 정적이었다면 지금의 정당원들은 동적입니다. 자신들이 지지해 뽑았더니 당선 후 자기 마음대로 함부로 정치하며 당원의 뜻을 무시하는 작태를 고치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행동을 합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정당원들이 과거와 달리 많아졌고 정당에 요구하는 적극성도 활성된 것입니다. 효율적인 수단을 가지기 위해 더욱 적극적일 것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만 허용되었다는 전례가 왜 지금은 일어나지 말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명확히 알려줘야 한다고 믿습니다. 정치의 역동성과 살아있다는 말이 왜 욕 비슷하게 들리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끝.
'매일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명의 충돌. 새뮤얼 헌팅턴 지음. 이희재 옮김. 김영사 (1) | 2024.07.07 |
---|---|
신도 주사위 놀이를 한다. 이언 스튜어트 지음. 장영재 옮김. 북라이프 출간 (0) | 2024.06.26 |
어떻게 (살) 것인가. 이광수 지음. 에덴하우스 간행 (0) | 2024.06.20 |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유시민 지음. 돌베개 간행 (2) | 2024.06.14 |
아흔 살 슈퍼우먼을 지키는 중입니다. 윤이재 지음. 다다서재 간행 (2) | 2024.06.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