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레이먼드 카버지음. 장영문 옮김. 문학동네

무주이장 2024. 7. 14. 08:11

 사랑을 말할 때 우리는 무엇을 이야기할까요? 나이를 제법 먹었는데도 풋풋한 사랑 이야기를 하려나보다 착각했습니다. 멋을 잔뜩 부려 미니스커트를 입고 나가던 옆집 이모 뒷모습을 보며 예쁘다고 감탄했던 마음도 어떻게 보면 사랑이고, 사춘기 통학길에 만났던 마음에 든 여학생에게 포장도 하지 않은 책을 선물하겠다며 호기를 부렸던 마음도 사랑입니다. 눈을 똥그랗게 뜨고는 거절을 하던 여학생 앞에서 갑자기 달려든 부끄러움을 주체하지 못했던 것도 사랑의 다른 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실패한 사랑, 혼자 한 사랑, 즐거웠던 사랑, 부끄러운 사랑 등, 갑자기 책 제목에 많은 생각이 책을 펼치기 전에 벌써 쏟아졌습니다. 사랑, 말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거 좀 이상합니다. 즐거운 추억이 가득할 것 같았던 책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울적하다. 외롭다. 힘들다는 말 한마디 않는 등장인물들은 행동으로 그들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야기를 따라가면 절망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거 뭐지? 우울함이 전달되며 작가의 사랑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차갑다는 것을 느끼고 책 읽기를 잠깐 멈췄습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 사랑의 모양이 각양각색임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저는 사랑의 다른 모양, 외로움 서글픔 아쉬움 후회 분노 등, 사랑의 이름으로 보지 않으려 회피하고 있었던 마음을 찾았습니다. 이 책을 계속 읽어야 하나 망설였습니다.

 

 세상을 살기 쉽지 않습니다. 마음을 푸근하게 풀어놓고 긴장하지 않은 채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서로 사랑한다며 어루만지고 안고 입을 맞추는 사이에도 돌연 폭력과 살인이 발생하고, 헤어지자고 말을 어떻게 할지 주저하며 어긋난 사랑 속에 번민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소식이 연일 들립니다. 누구는 어머니와 형에게 믿고 맡긴 재산을 횡령당하고 누구는 듣기만 해도 애가 타는 자살 소식과 함께 돌연 나타나 “내가 네 엄마였다”며 재산을 욕망하는 소식에 분노를 느낍니다. 이들은 모두 한때 “사랑한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타령을 했을 것입니다.

 

 세상을 살 때 부딪히는 여러 어려운 일을 감당할 수 있게 하고, 그럭저럭이라도 삶을 지탱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얘기합니다. 세상사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고, 행운이 오면 뒤이어 불행이 옵니다. 산전수전 공중전의 결과가 나빴던 관계를 기억하며 오열하고 분노하는 사람들조차 그전 좋았던 기억을 회상하며 스스로 위로를 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의 유전자에 각인되어 오늘도 놓기 힘든 일은 ‘사랑하기’가 분명합니다.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반드시 즐겁고 낭만적이며 꿀이 흐르는 이야기여야만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처음이 좋았다고 끝도 좋은 이야기만은 아닐 것입니다. 드라마의 연인들처럼 어려움을 같이 겪고 사랑을 이루어가는 이야기만 세상에 가득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런 엄연한 현실에 산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기에 현실에서는 없을 법한 사랑이야기에 심취할 뿐인 줄도 모릅니다.

 

 이미 고인이 된 1938년생 작가 레이먼드 카버는 세상의 사랑을 직시하고 있습니다. 부부와 연인의 사랑, 자식과 부모의 사랑, 친구들 간의 사랑,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과 살인, 배신당한 사랑, 배신하는 사랑, 도망가지 못하는 사랑, 도망가고 싶은 사랑, 사랑이 유발한 질투심, 질투가 일으키는 사건과 사고는 그래서 사랑의 다른 말일 겁니다.

 

 노년에 접어든 독자는 다시 책을 펼칩니다. 그리고 그의 마음을 읽으면서 공감을 시작했습니다. 사랑을 이야기할 때 나는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까?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생각은 꼬리를 물고 그의 이야기는 가슴을 파고듭니다.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