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같은 시를 소개합니다.
흰밤
넷성의 돌담에 달이 올랐다
묵은 초가지붕에 박이
또 하나 달같이 하이얗게 빛난다
언젠가 마을에서 수절과부 하나가 목을 매여 죽은 밤도 이러한 밤이었다
초동일(初冬日)
흙담벽에 볕이 따사하니
아이들은 물코를 흘리며 무감자를 먹었다
돌덜구에 천상수가 차게
복숭아나무에 시라리타래가 말러갔다
*무감자: 고구마
*돌덜구: 돌절구
*천상수: 빗물
*시라리타래:시래기를 길게 엮은 타래
하답(夏畓)
짝새가 발뿌리에서 닐은 논두렁에서 아이들은 개구리의 뒷다리를 구워 먹었다
게구멍을 쑤시다 물쿤하고 배암을 잡은 눞의 피 같은 물이끼에 햇볕이 따그웠다
돌다리에 앉어 날버들치를 먹고 몸을 말리는 아이들은 물총새가 되었다
*짝새: 뱁새
*닐은: 일어난의 고어
*눞: 늪의 평안 방언
흰밤은 핼로윈데이를 소개하는 포스터에 그리면 좋을 듯하지요?. 하지만 목 맨 수절과부가 무섭기보다는 슬퍼 보입니다.
겨울이 시작되면 마을 정미소 마당 담벼락에 줄줄이 기대어 서서 해바라기 하던 옛날이 기억났습니다. 모두 코를 물고 있었는데… 그걸 물코라고 부르는군요. 시래기타래가 걸쳐 있던 곳이 복숭아나무가 아니라 처마밑이었던 것만 다릅니다.
여름논에서 잡은 개구리 뒷다리를 구워 먹었던 친구들은 아직도 현역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개구리가 도약할 때 썼던 뒷다리가 친구들의 다리 근육에 붙은 까닭입니다. 그때는 논에 약을 치지 않아 농게가 많았습니다. 똘이장군의 오른팔 같았던 비대칭의 커다란 오른쪽 집게발이 신기했습니다. 그런데… 농게를 검색하니 바닷가에 서식한다는군요. 제가 보았던 논바닥을 기어 다니던 그 게는 그럼 무엇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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