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정본’이란 말이 제목에 왜 붙었는지 궁금했습니다. 백석은 분단 이후 북쪽에서도 얼마간 작품활동을 했지만, 백석 시의 본령은 그 이전에 발표한 작품들에 있다고 합니다. (4쪽)
백석 시에서는 방언과 고어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모두 표준어로 바꾸면 시의 맛이 사라지고 맙니다. 이상적인 것은 원본에서 오자와 탈자, 편집과정에서 일어난 착오만을 고치는 것인데, 그 밖에 백석이 당시 제정된 맞춤법 규정을 충분히 수용하지 않아 일어난 표기의 혼란도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백석 시의 원본에서 방언과 고어는 살리고 맞춤법 규정에 위배된 표기와 오 ∙ 탈자를 바로잡은 ‘정본’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 시집에 ‘정본’을 붙인 이유입니다. (4~5쪽)
김연수의 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을 통하여 처음 시인을 알게 되어 ‘정본 백석 시집’을 읽습니다. 그의 시는 마음과 풍경이 함께 그려진 풍경화였습니다. 눈이 번쩍 띌 정도로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마도 시골의 풍경과 정취가 그대로 보여 옛날이 추억되고 돌아가신 분들이 살아 돌아온 듯하여 그런 듯합니다. 읽다가 넋을 잃을 정도로 추억에 잠기게 하는 시가 있으면 소개하겠습니다.
산지(山地)
갈부던 같은 약수터의 산山거리
여인숙이 다래나무지팽이와 같이 많다
시냇물이 버러지 소리를 하며 흐르고
대낮이라도 산 옆에서는
승냥이가 개울물 흐르듯 운다
소와 말은 도로 산으로 돌아갔다
염소만이 아직 된비가 오면 산개울에 놓인 다리를 건너 인가 근처로 뛰여온다
벼랑탁의 어두운 그늘에 아츰이면
부헝이가 무거웁게 날아온다
낮이 되면 더 무거웁게 날러가버린다
산 너머 십오리서 나무뒝치 차고 싸리신 신고 산비에 촉촉이
젖어서 약물을 받으러 오는 산아이도 있다
아비가 앓는가부다
다래 먹고 앓는가부다
아랫마을에서는 애기무당이 작두를 타며 굿을 하는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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