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세네카의 말.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지음. 메이트북스 간행

무주이장 2024. 4. 12. 14:47

 고대 로마 스토아 철학자였던 세네카의 말을 번역한 책입니다. 부제는 주체적이고 행복한 삶을 위한 철학 에세이라고 적었습니다. 세네카는 BC4년부터 65년까지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가 살았던 까마득한 과거 로마시대에 했던 말을 2024년 읽는 소감이 특별하진 않았습니다. 다만 옛날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지금을 사는 지혜와 다름이 없다는 생각에 철학이든 인문학이든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크게 변한 게 없다는 생각에 지루함을 느꼈습니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읽던 몇몇 동창이나 선배들은 그 책을 읽으면서 무엇을 느꼈을까요?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스토아학파의 주장을 검색하면 올바른 이성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 사람의 유일한 선은 덕을 행하는 데 있다고 설명합니다. 책은 초지일관 스토아주의자스러운 주장으로 일관되고 있습니다. 남의 주장을 쉽게 수용하지 못하는 현대를 사는 저로서 그의 훌륭한 말의 성찬에도 불구하고 감동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마음에 닿는 글이 없지는 않은지라 한 부분을 소개합니다.

 

 이미 지나간 시간은 제아무리 큰 권력을 가졌다고 해도 과거를 돌이킬 수는 없다고 하면서, 다른 일에 신경 쓰느라 바쁜 사람들은 과거를 돌이켜볼 시간도 없지만, 만약 그럴 시간이 있다고 해도 후회로 가득한 과거를 돌이키는 일은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을 것이다고 합니다. 이어진 다른 글에서는 지나간 과거는 빈곤과 두려움, 그리고 느닷없이 찾아오는 질병으로부터 안전하다. 누구의 방해를 받을 수도 없고, 빼앗길 수도 없는 시간인 동시에 위험할 것 하나 없이 온전히 지속되는 시간이다고 설명합니다. (64~67)

 

 앞의 말과 뒤의 글이 상반되는 느낌이 들지만 제 나름 해석을 하면 앞의 문장은 후회가 가득한 과거를 돌이키는 불쾌함을 모면하려 과거를 왜곡하는 짓은 하지 말라는 말로 이해됐고, 이어진 글은 과거는 반성의 대상이지 누구의 방해를 받아 빼앗기거나 공격을 받아 위험할 것 하나 없으며 어떤 방법을 써도 없어지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는 주장 같았습니다. 세네카의 말은 그 시대 그가 처한 상황에서 한 말이겠지요? 제가 저렇게 해석한 이유는 오늘을 사는 저의 해석입니다.

 

 김활란은 친일반민족행위자입니다. 이번 선거에 후보자 중 한 사람이 해방 후 이화여자대학교 초대총장을 지냈던 이 사람이 주둔 미군을 위하여 제자들을 동원해 접대를 했다는 주장을 한 사실이 있다며 여당이 스피커를 통해 동네방네 떠들었습니다. 그러자 이화여자대학교 동문들이 그의 말이 잘못되었다고 후보 사퇴를 하라고 주장을 했습니다. 부끄러운 과거는 숨길 수도 없고 없앨 수도 없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왜곡하는 일은 옳지도 않지만 유쾌하지도 않습니다. 이것을 아니라고 말을 하면 할수록 과거는 소환되어 유쾌하지 않은 사실들이 줄줄이 나올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위험할 것도 없습니다. 과거는 반성을 하면 될 일입니다. 과거는 누구도 훼손할 수 없는 온전히 지속되는 시간입니다. 동문들이 난리를 피울 시간에 과거를 온전히 기억하고 곱씹어서 다시 반복하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 나은 일로 보입니다. (김활란의 교내 동상은 동문들의 요구로 벌써 철거되었다고 합니다)

 

 누구나 부끄러운 과거의 개인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걸 들추어낼 때 대처하는 태도에서 세네카가 신봉한 올바른 이성이 작동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선거가 끝난 후 대통령의 행동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한 이유입니다. 정말 세상에 돌아다니는 말처럼 그가 바보인지 아닌지 이번에 알아볼 참입니다.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