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 김현아 지음. 창비 간행

무주이장 2024. 4. 25. 17:01

 책의 제목부터 가슴이 서늘해집니다. 가슴속에서 뛰던 심장이 조여지며 쿵쿵 불규칙적으로 뛰면서 아픕니다. 옆집의 아이가 아니라, 친척 집의 아이가 아니라, 그토록 귀엽고 예뻐서 사랑받던 딸이 조용히 무너진 것을 확인한 어머니와 아버지의 가슴은 무너집니다. 양극성 스펙트럼 장애를 앓는 딸을 보살피는 엄마의 이야기입니다. 의사 부부의 둘째 딸로 태어나 부러움의 대상이 될 아이가, 부족함이 없을 듯한 아이가 아픈 것을 확인한 어머니는 딸을 돌봅니다. 딸을 돌보는 어머니의 가슴은 뜨겁지만 말과 행동은 냉정합니다. 책을 읽던 중 저의 첫 반응은 아픈 딸을 대하는 어머니가 너무 냉정해 놀랐습니다. 하지만 곧 그렇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고 어머니의 마음을 알 것 같았습니다. 뜨거운 가슴보다는 찬 머리를 가져야 조용히 무너진 딸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럼에도 쉽지 않습니다. 회복하려는 아이의 노력은 좀체 성공하지 못합니다. 공원 한 구석에서 두는 장기나 바둑을 보고도 참지 못하고는 훈수를 두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인데, 딸을 도우려는 마음은 오죽하겠습니까? 책을 보는 내내 마음이 아팠습니다.

 

 언제부턴가 우리 주위에는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세상이 번잡해지고 사람과의 관계가 힘들어지면서 마음을 다친 사람들이 흔해졌습니다. 다행히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불행 중 다행입니다.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아픈 사람의 병을 이해하고 회복하는데 어떤 과정이 필요하며 도움을 어떻게 주어야 할지 이해의 단초를 제공하는 책입니다. 아픈 사람은 자기의 병을 잘 숨긴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모라고 해도 아픈 것을 빨리 알지 못합니다. 증세가 심해져서야 알아채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 책이 알려준 내용 일부를 정리합니다.

 

있는 힘껏 병을 끌어안아야 하지만 아이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당황하게 됩니다. 아무렇지 않은 말에도 아이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어머니가 알려준 내용입니다.

1. 부모가 먼저 마음을 추슬러야 한다.

양극성 장애는 높은 유전적 소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부모 중 어느 한쪽이 환자와 비슷한 성향을 지닐 수 있습니다. 이는 때로 마주 보는 폭주 기관차처럼 파괴적인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 질환이 심장이나 콩팥에 생기는 병처럼 뇌에 생기는 병이라는 사실을 되풀이해서 마음에 각인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의 병에 대해 부단히 공부해야 합니다.

2. 아이의 걱정과 공포를 이해하고 아이를 다독여주어야 한다.

아이는 병이 없는 사람의 시각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로 절망하고 두려워합니다. 이는 아이의 의지 부족이나 나약함 때문이 아니고 외부의 위협을 처리할 수 있는 뇌 기능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어 아이를 안심시키고, 아이의 잘못이 아니라 뇌의 신호 전달에 생긴 문제일 뿐이라는 것을 최대한 아이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고 아이를 다독여줘야 합니다.

3. 입 밖에 냈다가 본전도 못 건지는 말들이 있다.

내 말에 아이의 반응이 좋지 않은 말들입니다. 책에서는 몇 가지의 말을 소개합니다. 책을 보시기 바랍니다.

4. 듣고 또 듣는다.

대화를 시작하면 부모는 아이의 말에 수시로 토를 달고 싶습니다.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점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끝까지 들어야 합니다. 말을 끊지 않습니다. 그래야 아이의 생각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가급적 부모는 말을 아껴야 합니다. 열 마디 하고 싶으면 가려서 한마디 하고, 지레짐작이나 속단에서 나온 말은 금물입니다.

5. 함부로 화를 내지 않는다.

정말 큰일이 아니라면 아이와 맞서지 말라고 합니다. 감정적인 반응은 항상 결과가 좋지 않다고 합니다. 만약 큰일이라면(아이가 남에게 해를 끼쳤다거나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낭비를 했다면) 정선된 언어로 아이에게 그런 행동은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단호히 말합니다.

6.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처럼 말하기를 배운다.

이 내용은 책을 보시더라도 실천하기가 어렵습니다. 이게 된다면 아이와 갈등이 생기지 않겠지요. ‘아이가 문제를 보일 때 금지. 자책의 언어보다는 이해의 언어를 구사하도록 노력합니다는 설명이 있지만 글쎄요. 쉽지 않을 듯합니다. 역시 책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7. 발화점을 찾고 피한다.

부모는 무해하다고 생각하는데 환자에게는 참을 수 없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환자는 그대로 폭발하고, 당황스러운 상황을 맞게 됩니다. 이런 상황을 일으키는 발화점을 찾고 대화 목록에서 삭제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이상이 저자가 소개한 내용입니다. 책에서는 181쪽에서 187쪽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양극성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딸을 대하는 방법입니다. 병을 가진 아이를 보살필 때 필요한 마음과 말과 행동입니다. 그런데 이 내용을 보시면 사춘기의 아이와 다투면서 부모가 필요하다고 느꼈던 내용과 비슷하지 않나요? 늘 귀여움을 받고, 화를 좀체 내지 않으면서 예쁜 행동만 하던 아이가 갑자기 돌변하여 부모에게 대들 때 부모는 당황합니다. 더 나쁜 관계가 되지 않기 위해서 저자가 알려준 것을 연습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책에서는 아픈 아이를 돌보는 부모의 생존을 위한 가이드도 소개합니다. 224쪽에서 242쪽에는 부모 서바이벌 가이드라는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소개합니다.

““부모는 해 줄 수 있는 것을 해줄 뿐이다.” 아주 구체적으로 경제적. 심리적 한계를 설정하고 항상 환자와 대화하면서 조율해나가야 한다. 이 원칙을 늘 기억하면서 정신질환을 가진 아이의 부모가 해야 할 일들을 적어본다.”

1. 과도한 연민 대신 이해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2. 나의 마음을 먼저 다스린다

3. 돈 계산을 확실히 하자

정신질환은 만성질환이므로 부모의 은퇴 후에도 돌봄이 필요하기에 나온 가이드입니다.

4. 가족을 지켜라

부부의 관계가 가장 큰 타격을 입는다고 합니다. 아이의 질병 때문에 부부가 갈라서는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한 사람이 주도하고 다른 한 사람은 그에 따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합니다. 단지 부부만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책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5. 선을 긋기

내가 해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환자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의 한계선, 내가 환자의 삶에 개입해서는 안 되는 경계선 등 수시로 수많은 임계선을 긋고 이를 지키느라 안간힘 써야 합니다.

6. 소중한 건 바로 지금, 여기

정신질환 환자의 가족에게 미래에 대한 걱정은 불안의 수준을 넘어 끊임없는 비탄의 원인이 됩니다. 하지만 걱정하고 비탄한들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부모는 단지 힘닿는 데까지 도울뿐입니다. 오늘 하루를 잘 보냈다면 아이와 내가 함께 잘 산 인생이었다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가슴 졸이며 읽었습니다. 마음이 아파 책장을 넘기기가 어려운 경우도 있었습니다. 병이 든 아이를 둔 부모의 노력과 용기 그리고 지혜가 얼마나 중요한지 배웠습니다. 고마운 책입니다.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