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대한 저항시
술을 끊으면 세상의 간판 절반이 술집 간판이란 것을 알 게 됩니다. 내가 저 절반의 간판을 단 곳에서 접대를 핑계 삼아 술을 마셨고 술이 좋아 술을 마셨습니다. 술은 제 간에 하얗게 기록을 쌓았습니다. 이건 그때 얼마를 주고 마신 술이고 저건 네가 얻어먹고는 후회했던 술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간의 기록은 술에 대한 저항의 뜻으로 기록을 했던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순순히 술 흐르는 대로 살기를 거부하며 남긴 저항시일지도 모릅니다.
김태형의 행복론을 읽으면서 시간 되고 건강되면 마셨던 술의 개념을 개념치 않았듯이 행복에 대해서도 이러면 이런가 보다, 저러면 저런가 보다 그래서 행복하고 저래서 불행했던가보다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때로는 저항하고 때로는 항복하여 살았던 시간들의 연속입니다. 시인은 행복에 대한 저항시를 적었습니다. 사람의 삶이 도찐개찐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도로 잡으나 개로 잡으나 쉽게 행복을 잡을 수 있을 듯했는데 잡았는지 못 잡았는지 낚시꾼의 망태를 확인하는 여유는 없었습니다.
연금을 계산하고 노후를 설계하고 새로 나온 보험을 좇아다니다가
봄날이 다 지나갔다
아파트 한 채를 장만하고 차 한 대를 갖고
여행상품을 검색하는 동안
명품을 간파하는 눈이 생겼는데 사람은 알아보지 못하고
배신 타령을 한다
와인맛 커피맛을 아는 혀
좋은 브랜드 옷의 감촉은 좋아하면서도
정작 네 살갗에는 무덤덤
행복해져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주말이면 쇼핑과 외식으로 파김치가 되어 돌아온다
여행을 가도 남는 건 사진밖에 없더라 법석을 떨면서
폭식하듯 사진을 찍는다
뼈 빠지게 사노라 살지 못했는가
죽는 것은 습관이 아닌데 사는 것은 습관이 되어서
행복이여, 어쩌다 나는 행복에 대한 저항시를 쓴다
행복을 위해서도 저항시를 위해서도 이건 참 서글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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