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사람을 우리는 바보라 부릅니다. 실수는 누구나 하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용납을 하지 않습니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역사가 반복된다면 그런 역사를 만든 사람들이 바보란 말이 될 것입니다. 역사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전제가 있습니다. 과거 어떤 역사가 있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알지도 못하는 역사인데 어떻게 반복 여부를 알 수 있겠습니까.
선생의 짤막한 글들을 읽으면서 우리는 역사를 반복하는 실수를 거듭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무언가 조금은 다른 역사를 보기도 합니다. 귤을 키우려다 탱자가 된 아쉬운 역사도 봅니다. 안타까움에 아쉽고 분함에 치를 떨기도 합니다. 그런 인식들이 모여서 우리는 오늘의 역사를 과거의 그것과는 다른 역사로 쓰는 것이겠지요. 선생의 글을 보면서 어찌 이리 다식한 가에 놀랍니다. 탁월한 기억력을 넘어 역사를 해석하는 선생의 혜안에 놀라기도 합니다. 칭찬과 격려, 비판과 조롱의 글들은 책을 읽는 시간을 잊게 합니다. 그렇다고 한 번에 다 읽기를 주저합니다. 조금씩 읽으면서 오늘을 사는 역사인식을 가진 생활인이 되기를 배우고 익히기 위해서입니다.
‘시일야방성대곡’ 장지연 (36쪽)
어린 시절 국사를 배우면서 들었던 장지연이 황성신문에 게재한 글이라는 것만 외웠습니다. 한자 배우기를 좋아한 저는 ‘오늘, 소리 놓아 크게 곡을 한다’는 제목이 멋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생은 한국인 대다수는, 이글의 제목만 알지 내용은 모른다면서 내용을 소개합니다. “대한제국 정부의 대신들만 개돼지 같다고 욕했을 뿐, 일본 정부와 이토 히로부미를 비난하지도, 황제의 무능을 한탄하지도 않았습니다. 동포의 분기를 촉구하기는 했으나, 그조차 우회적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장지연은 일제강점기 조선인 언론이 전면적으로 탄압받았던 무단통치 시기에 경남일보 주필이 되었고 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에도 친일기사를 여럿 썼다고 소개합니다. 그를 친일인명사전에 등재할 것이냐를 두고 논란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의 등재를 반대하는 주장 중에는 ‘시일야방성대곡’의 상징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도 있었다고 합니다. 제가 몰랐던 사실들입니다. 국사 시간에 배웠는데 잊었던 것인지 애초 가르치지 않았던 사실인지 모르지만 혐의 가는 곳은 있습니다.
지금의 언론인들이라고 다를 것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훈계하고 비판하고 외국 사례를 들면서 많이 배웠다고 자랑하는 기레기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의 뒤에 숨겨둔 악의나 욕망은 그들의 자격을 의심하게 합니다. 지금은 과거의 행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함부로 훈계하는 자들은 과거 행적을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말년의 장지연은 매일 술에 취해 살았고, 결국 술병으로 죽었다고 합니다. 선생은 그의 이름은 지금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어 있으나, 그래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데에 탐닉한 자들보다는 그가 훨씬 나은 듯하다고 의견을 붙입니다.
기레기들이 술을 찾는 것은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기사로 한 건 엮은 것을 축하해서 그런 것이 아닌지 심히 의심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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