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동
많은 세월을 살아낸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때로는 그 특징들 때문에 세상이 어려워진다며 사라져 주길 바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공부머리가 있는 사람들이 책도 내고 입도 열어 수많은 사람들의 개개의 특성을 일반화하고는 그들 때문에 사회의 화합이 어렵고 협의를 통한 콘센서스 형성이 불가능하다고도 합니다. 정치적 성향이 다르다고 해서 좌우 두 쪽으로 쪼개는 것도 일반화의 오류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런 사회를 살아가는 것은 스트레스의 연속입니다. 노인이 되어 “지금 가장 최대의 비극은 노인네들이 너무 오래 사는 것이다. 그러니까 빨리빨리 돌아가셔라”라는 말을 들으면 회한이 들까요, 아니면 화가 날까요, 묻는 것이 어리석을까요? 나이 든 지금까지 그들이 살아오면서 받았던 수모와 모멸감이 어디 한두 번일까? 그럼에도 지금까지 살아온 이유 또한 그들 개개인의 역사일 것입니다. 시인은 어떻게 모멸과 수모 그리고 감당하기 힘든 책임을 견뎌냈을까 짐작하는 시입니다.
도라지 속살은 막 퍼올린 찬물 빛이다
역 귀퉁이 쓸모없어진 전화 부스 옆에서
하루종일 도라지 껍질을 벗기던 노인
도려낸 상처 위로 끼치던
그 정갈한 향을 나는 얼마나 좋아하였던지
코 끝에 심심산골을 옮겨온 듯
시장 귀퉁이 들끓는 소음 먼지 속에
그저 정물처럼 묵묵히 앉아 있었다
지상에 와서 아까운 몇 가지를 뽑으라면 십년 넘게
내 귀갓길을 지켜준 노인의 도라지를 빠뜨릴 수 없으리라
껍질을 벗기는 일이 우물을 푸는 일이라
바가지 가득 넘실넘실 길어올리는 일이라
먼지잼처럼 지나가던 망원
돌아와 보니 그곳이 가장 먼 곳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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