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망월폐견. 전우용의 시사상식 사전. 새움 간행 28

무주이장 2023. 7. 29. 11:16

  역사학자 전우용, 그를 안 것은 그가 출연하는 방송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회자가 묻는 어떤 말에도 거침없이 기원과 출처를 알려주고, 역사적 의미를 설명하면서 정확한 용례와 잘못된 용례를 드는 해박함에 놀라서 그가 쓴 책을 읽으면 나도 상식이 늘 수 있지 않을까 욕심을 부려 고른 책입니다. 개가 달을 보고 짓는다는 말인데, 달이야 원래 항상 언제나 그 시각에 그 자리에서 뜨고 지는 것인데 개가 달을 보고 짓는 것은 어떤 연유일지 궁금했습니다. 그 궁금증을 하나씩 같이 해결하는 의미로 정리할 생각입니다.

 

 

패기

 

  선생의 글입니다. 이명박 박근혜 때 기자들이 보인 태도와 문재인 때 기자들의 그것을 비교하면서 나라 사정을 알았다고 합니다. (이명박 박근혜 때) 기자들은 사정이 나쁠 때 공손한 태도로 침묵하고, 사정이 좋아지면 ‘패기 있는’ 태도로 아무 말이나 합니다. 그러니 언론에 ‘나라 망해 간다’는 기사가 (문재인 때) 많이 나오는 건, 사정이 좋아지고 있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기자들의 패기가 보이는 게 사정이 좋아졌다는 증거라는 말씀입니다. 기자의 패기는 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일까요?

 

  선생의 다른 글입니다. 일부 기자들이 이번 ‘대통령 특집 대담’을 ‘박근혜-정규재 대담’과 비교하며, “정규재와 달리 기자답게 잘 진행했다.”고 송기자를 칭찬합니다. 그러나 선생은 박근혜 앞에서 ‘기자다웠던’ 기자가 있었는지, 기억을 반추합니다만 기억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권위 앞에 위축되지 않는 기자정신을 제대로 보여줬다”고 칭찬하는 다른 기자들을 보면, ‘안 때리는 선생에게만 개기던 고등학교 때 양아치’가 떠올라 기분이 영 씁쓸하다면서 공포를 동반하지 않는 패기는, 교활의 다른 이름이라고 설명합니다.

 

  저는 선생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선생은 이번 대담으로 드러난 것은 ‘정규재-송현정’의 차이가 아니라 ‘박근혜-문재인의 차이’라고 주장합니다만 그리고 박근혜와 이명박을 때리는 선생으로 비유하고 문재인을 안 때리는 만만한 선생으로 비유했지만 동의할 수 없습니다. 송현정 기자가 지금 KBS에서 근무하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윤석열 때라고 해서 그때 있던 패기가 지금은 사라졌다고는 믿을 수도 없고, 그때 송기자를 칭찬하던 기자들의 패기 또한 때에 따라 있다가도 없어진다는 듯 얘기하는 것은 그들에 대한 모욕으로 느껴집니다.

 

  제 고등학교 시절, 잘 때리는 선생에게 수업 중 질문 겸 농담을 했다가 무차별적으로 두들겨 맞은 친구가 있었습니다. 수업 중 농담을 했던 순간부터 남은 수업시간 동안 영화 친구의 장면처럼 선생은 손목시계를 풀어 교탁에 던지고, 잠바를 벗어서 아무렇게나 던지고는 좌우 훅으로 농담한 아이를 때리면서 아무 욕이나 던지다가(그 아이는 때로는 커버링을 하여 선생이 더욱 흥분하기도 했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수업종이 울리자 풀었던 손목시계를 다시 손목에 차고, 아무렇게나 던졌던 옷을 부리나케 챙겨 입고는 선생은 교실을 황급히 나갔습니다(지금의 짐작으로는 순간의 흥분을 참지 못하고 학생을 상대로 훅을 날리는 자기 모습이 갑자기 부끄러워져서 수업 마침 종을 신호로 자연스럽게 교실을 나갔다고 생각합니다. 선생이 그 후 같은 이유로 지속적으로 그 아이를 폭행하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의 태도에 우리 반 모두는 놀라움과 함께 감탄을 했습니다. 그 아이를 둘러싸고는 때렸던 선생에 대하여 같이 욕을 하면서 그 친구를 위로했습니다(지금 생각해도 우리의 그때 행동은 자연스러웠고 자랑스러웠습니다. 비록 우리들이 선생을 말리지 못한 것에 대하여 부끄러웠지만 그랬습니다). 그 아이는 아마도 기자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기질이 없으면 기자를 할 수 없다고 한때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아마도 이런 추억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선생의 설명에 동의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기자가 양아치라뇨?

 

  지금은 윤석열 때입니다. 이명박 박근혜 때도 아니고 문재인 때도 아닌데, 새로운 정권에서 우리 기자들 패기 있게 대담도 좀 하시고, 질문도 좀 하시고, 기사도 좀 쓰세요. 선생이 말하는 ‘안 때리는 선생에게만 개기던 고등학교 때 양아치’가 아니잖아요? 좀 맞아도 수업 시간만 잘 견디면 되잖아요? 그리고 특히 KBS 송현정 기자 뭐 하세요? 수신료 분리징수 해달라고 부탁을 하셨나요? 왜 말이 없어요?  끝.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