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망월폐견. 전우용의 시사상식 사전. 새움 간행 25

무주이장 2023. 7. 28. 09:56

  역사학자 전우용, 그를 안 것은 그가 출연하는 방송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회자가 묻는 어떤 말에도 거침없이 기원과 출처를 알려주고, 역사적 의미를 설명하면서 정확한 용례와 잘못된 용례를 드는 해박함에 놀라서 그가 쓴 책을 읽으면 나도 상식이 늘 수 있지 않을까 욕심을 부려 고른 책입니다. 개가 달을 보고 짓는다는 말인데, 달이야 원래 항상 언제나 그 시각에 그 자리에서 뜨고 지는 것인데 개가 달을 보고 짓는 것은 어떤 연유일지 궁금했습니다. 그 궁금증을 하나씩 같이 해결하는 의미로 정리할 생각입니다.

 

 

인건비

 

  여자들은 남자들이 하는 이야기 중에서 가장 지겹게 생각하는 소재가 군대이야기, 축구이야기라고 하지요. 특히 가장 지겨운 이야기는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제가 들었던 재미없는 군대 이야기를 하나 소개합니다. 최전방 겨울, 전방 초소는 눈이 얼어 길이 폐쇄되는 경우를 대비해 당나귀를 두었답니다. 전방 물자 보급을 위한 화물차량의 대체 수단이었습니다. 당연히 당나귀를 관리하는 병사도 있습니다. 그런데 당나귀가 아프거나 하면 당나귀 당번병은 곤욕을 치렀답니다. 병사 값보다 당나귀 값이 훨씬 비싼데 제대로 관리를 못했다는 이유였습니다. 당나귀뿐 아니라 군견 당번병도 개보다 못한 대접을 받았다고 합니다.

 

  기업에서도 간혹 ‘사람보다 물건이 먼저다’라는 철학으로 경영을 하는 사장들이 있습니다. 자재대금을 지불 않으면 공장을 돌릴 수 없다며 인건비는 체불해도 물건비를 먼저 지불합니다. ‘인건비’는 ‘물건비’에 상대되는 말입니다. 월급쟁이가 제때 월급을 못 받으면 식구들까지 손가락 빨고 앉아 있어야 하는데, 사업가 이전에 인간으로서 어떻게 자기 직원들을 그런 지경에 몰아넣을 수 있느냐고 자조하는 사장과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선생은 적었습니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말을 경제생활 영역에 적용하면, ‘인건비가 먼저다’와 ‘인건비는 사람답게 살 수 있을 정도로 책정돼야 한다’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사람의 삶이 곧 경제입니다. ‘경제가 무너진다’는 말은, ‘사람의 삶이 무너진다’는 말과 같습니다. 최저임금 인상은 우리 사회가 가장 어려운 조건에 있는 사람들에게 ‘인간적으로’ 손을 내미는 일이라고 선생은 주장합니다.

 

  최저임금을 정하는 시기가 되면 사용자들은 최저임금의 동결이나 최저 수준의 인상률을 주장합니다. 특히 자영업자들은 최저임금의 인상에 대하여 몸서리를 칠 정도로 동결을 주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임금인상은 선생이 주장하듯 ‘인간적으로’ 손을 내미는 일이기도 하지만 제한적인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기능을 담당합니다. 임금이 낮다는 것은 부가가치가 낮다는 의미일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 저임금으로만 유지되는 사업체는 다른 물가인상 등의 요인으로 존속이 불가능합니다. 그런데도 물가인상률보다 낮거나 아예 동결시킨 임금을 주장하는 것은 없어질 수 밖에 없는 사업을 계속 유지시켜 자원 배분의 왜곡을 부른다는 것이 경제학에서의 주장입니다.

 

  물건 값은 매년 물가라는 이름으로 발표됩니다. 물가는 매년 얼마라도 오르는 것이 우리의 경험입니다. 제가 어릴 때 먹던 5원짜리 찐빵은 지금은 1,000원입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먹던 1,000원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몇 년 전 1,500원을 거쳐 지금은 최소 3,000원 이상을 줘야 먹을 수 있습니다. 물건 값이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이치로 생각하면서 인건비가 오르는 것은 살 떨려하며 반대하는 주장은 어떤 근거일까요. 인건비를 많이 올리면 물건 값도 올라갈 겁니다.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물건 값을 올리듯이 인건비를 올리면 물건 값을 올리면 됩니다. 값을 올리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사장이 원자재 값이 오르면 가격을 올리는 것을 당연히 생각합니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가격을 올리면 됩니다. 오른 임금을 감당할 수 없는 곳은 문을 닫는 것이 경제입니다. 지금 경제적 충격을 줄인다고 구조조정을 않고 금리만 낮추려는 정책을 지속한다면 나라가 망할 것이라는 한국은행 총재의 말은 듣기는 싫지만 사실입니다.

 

  지난 정권, 한 번 최저임금을 많이 올렸더니 자영업자가 죽겠다는 소리도 있었지만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던 사람들이 조금 편해졌다고 하는 말도 많이 했습니다. 그 후 다시 최저임금은 오르지 않아 시급 10,000원의 공약은 물 건너갔습니다. 최저임금을 올려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지 제 기억에는 충격으로 다가온 경우는 없습니다. 그에 비해 에너지 가격은 즉각 반영되면서 임금의 축소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임금 때문에 죽겠다는 말보다는 물건비가 인상되는 부분을 관리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입니다. 많은 원자재를 수입하니, 더욱 더 원자재 수입가격을 낮추는 노력을 하는 것이 매년 최저임금인상을 놓고 싸우는 것보다 더 효율적이라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 물건이라서, 수입품이라서 우리가 가격인상에 대응할 수단이 없다는 말은 너무 쉽게 튀어나오면서 왜 남의 인건비, 노동력의 가격은 그리 쉽게 입을 대는지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일이라고 믿습니다.

 

  먹고 마시고 움직이고 싸는 모든 일이 원활할 때 사람들은 건강하다는 말을 합니다. 선생은 경제를 ‘사람의 삶’이라고 풀이합니다. 가족들이 손가락을 빨지 않으려면 나아가 잘 먹고 잘 마시고, 일을 더 잘하려면 적정한 임금, 아니 최고의 임금이 필요합니다. 대장 가득 똥이 가득 찼는데, 변비가 걸려 똥이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먹지 말고, 마시지 말라고 하면 사람은 살 수 없습니다. 변비는 고통스러운 병입니다. 관장을 하던 변비약을 먹던 할 일이지, 그 처방이 임금을 억제하는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선생의 인건비 풀이를 보다 든 생각입니다.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