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망월폐견. 전우용의 시사상식 사전. 새움 간행 27

무주이장 2023. 7. 29. 08:32

  역사학자 전우용, 그를 안 것은 그가 출연하는 방송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회자가 묻는 어떤 말에도 거침없이 기원과 출처를 알려주고, 역사적 의미를 설명하면서 정확한 용례와 잘못된 용례를 드는 해박함에 놀라서 그가 쓴 책을 읽으면 나도 상식이 늘 수 있지 않을까 욕심을 부려 고른 책입니다. 개가 달을 보고 짓는다는 말인데, 달이야 원래 항상 언제나 그 시각에 그 자리에서 뜨고 지는 것인데 개가 달을 보고 짓는 것은 어떤 연유일지 궁금했습니다. 그 궁금증을 하나씩 같이 해결하는 의미로 정리할 생각입니다.

 

 

정정보도문

 

  “이 기사로 상처를 받은 분과 독자 여러분께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울러 본지 보도로 조 전 장관과 정 전 교수의 명예에 누를 끼친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조주빈 사진을 넣을 자리에 조국 전 장관 부부 사진을 실었던 세계일보의 ‘정정보도문’입니다. 한국 언론의 처참한 수준을 잘 보여주는 문장입니다. 선생의 주장입니다.

 

   “일본에 의해 초래된 이 불행했던 시기(일제강점기)에 귀국(한국)의 국민들이 겪으셨던 고통을 생각하며 통석의 념을 금할 수 없습니다.”  

 

  1990년 5월 24일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본 아키히토 일왕의 만찬사 중 일부입니다. 이 말이 무슨 의미일까요?

 

  당시 대통령 방일에 앞서 일왕의 사과 발언 수위 등을 놓고 일본 외무성과 조율한 최호중 당시 외교부 장관은 회고록에서 “일본이 무슨 저의로 일반적으로 잘 쓰지 않는 이런 문구(통석의 념)를 애써 찾아낸 것일까. 나는 주한 일본대사로부터 이것이 확정된 일본 측 최종 문안임을 확인한 후 통석의 념이란 잘못을 아픈 마음으로 뉘우친다는 것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하고, 이에 이의가 없느냐고 물었다. 대사는 그런 뜻으로 해석해도 좋다고 양해했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우리 외교부는 일왕의 만찬사 내용을 언론에 전하며 통석의 념이란 ‘뼈저리게 뉘우친다’는 의미라고 공식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국내 반응은 어땠을까요? 한마디로 싸늘했습니다. 애통하고 애석하다는 뉘앙스의 통석은 아무리 잘 봐줘도 ‘반성’보다 ‘후회’에 더 가까운 표현이기 때문이었습니다(세계일보 김태훈 국제부장, 2021.11.9. 오피니언 중에서)

 

  일본 일왕이 한 말 ‘통석의 념’에 대한 우리 언론의 언어적 해석은 정확한 듯합니다. 통석은 ‘몹시 애석하고 아깝다’의 뜻입니다. 유의어로는 ‘분하다’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 국민들이 겪은 고통에 대하여 ‘몹시 애석하고 아깝게 생각한다’는 의미로 보면 이것이 최호중 당시 장관이 해석한 ‘아픈 마음으로 뉘우친다’는 표현과 거리가 멉니다. 일본대사가 양해를 했다고 하는데 양해의 의미가 ‘네가 그렇게 (굳이) 생각한다고 말해도 우리는 (그 뜻이 아니라고 대응하는 대신)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겠다’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외교관들이 자국의 입장에서 짬짜미가 된 표현으로 보일 정도입니다. 서로 좋은 게 좋은 거지요. 그게 외교니까요. 이쯤 되면 사과에 관한 표현을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선생의 설명입니다.

 

  ‘유감’은 ‘마음에 꺼림칙한 점이 있다’는 뜻이고 ‘사과’는 ‘내가 지나쳤다’는 뜻이며, ‘사죄’는 ‘죄를 지었으니 용서해 다오’라는 뜻입니다. 세계일보의 정정보도문이 어떤 부분이 잘못인지 확인이 가능하시지요? 선생이 세계일보를 대신해 정정보도문을 교정하였습니다.

 

  “본지가 큰 잘못을 저질러 조 전 장관과 정 전 교수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한 데 대해 깊이 사죄드리며, 합당한 책임을 지겠습니다.”

 

  반성하고 뉘우치고 용서를 비는 단어는 2020년 3월이나 2021년 11월이나 2023년 7월이나 같습니다. 단지 반성하고 뉘우치고 용서를 비는 상대가 다를 뿐입니다. 정확한 어휘로 기사를 쓸 기자들의 자질은 낮지가 않은데, 문제는 의식과 정신이 비열할 뿐인 것 같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런 사람과 상종을 하시면 손해를 볼 위험이 높습니다. 유의하십시오.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