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1980년 5월 24일. 조성기 장편소설. 한길사 간행1

무주이장 2023. 8. 2. 23:30

정치군인, 그들만의 리그

 

  1980년 5월 24일, 박정희를 쏘아 죽인 김재규가 사형을 당한 날이라고 합니다. 김재규에 관한 책은 처음 접합니다. 간혹 제가 육군사관학교를 입학했더라면 제 인생이 어떠했을까 상상합니다. 정치군인이 판을 치던 세상, 군인은 국가를 책임지고, 부패한 정치인을 관리하며 불철주야 국가를 사수하는 책임감에 술이 아니면 밤을 새지 못하는 번뇌의 삶을 살았을까요? 제가 육군사관학교를 지원한다는 얘기를 들으시고 나이가 지긋하신 어른 한분이 저에게 충고를 했습니다. 길을 가는 사람이 둘이 있다고 하자. 군인과 민간인이 지나간다. 그러면 사람들은 뭐라고 말하니? 사람 하나 하고 군인 하나가 지나간다고 한다. 그 말이 무슨 뜻이니? 군인은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그 뜻을 접으라.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고 비록 육군사관학교 입학은 실패했지만 그 말은 그 뒤에도 잊히지 않는 말입니다.

 

  이 책은 정치군인들의 이야기입니다. 궁정동 중정 안가에서 술판을 벌인 사람들은 모두 정치군인 출신입니다. 거짓 책임감으로 풀을 매긴 군복을 가볍게 벗어던지고 권력을 찬탈한 뒤 시대의 무거운 짐을 진 듯, 피곤을 핑계하여 위무하고, 권력의 단맛을 맛보려 가수와 모델을 불러들이고 술판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 출신으로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일본 장교 다카키 마사오입니다. 비서실장인 김계원은 일본육군 견습사관으로 복무했으며, 육군참모총장으로 중앙정보부장과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습니다. 경호실장인 차지철도 5.16 쿠데타에 가담한 육군 대위로 들었습니다. 권총을 발사해 차지철과 박정희를 사살한 김재규 또한 군인 출신입니다.

 

  작가는 김재규 일인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김재규가 성남 육군교도소에서 사형장으로 이동하는 도정에서 지난 일들을 추억하는 방식의 이야기입니다. 작가는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여 상상력으로 허구를 가미한 팩션적인 요소가 많다고 스스로 설명합니다.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하고 불의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군인들의 인맥을 이용하여 권력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군인들이 득세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군인들은 모르는 것이 없었고, 못하는 것이 없었고, 안 되는 일이 없던 세상이었다고 합니다. 김재규가 회상하는 모든 일에서 그는 자신의 역할이 있으면 있어서 자긍심을 가졌고, 역할이 없으면 없었던 아쉬움을 토로합니다. 그는 이야기의 주인공이었지 조연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듯합니다. 세상은 김재규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정말 그랬을까요?

 

  역사적인 사건을 한 면만 보고 설명을 하는 것은 아무래도 설득력이 떨어질 것입니다. 김재규가 없었다면 박정희의 권력은 18년을 지나 언제까지 연장되었을까요? 차지철이 자기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김재규를 견제하지 않았다면 김재규는 박정희를 쏘았을까요? 부마사태가 없었다면 김재규는 박정희를 쏘지 않았을까요? 김재규가 박정희를 사살하고 계엄령이 내려지면 민주화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은 머리가 나빠서일까요? 권력에 대한 욕망이 없어서일까요? 아니면 세상을 보는 시야가 제대로 없었던 것일까요?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실마리들을 주는 글들이 죽 이어집니다. 박정희는 그때 총을 맞아도 될 상황을 스스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재규는 그때 총을 쏠 상황을 스스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지철도 그때 총을 맞아도 될 상황을 스스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시대를 살았던 저는 그들이 총을 쏘고 총을 맞았던 그 상황을 그렇게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았습니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그들만의 다툼으로 일어난 사건일 뿐으로 보였습니다. 국민이 빠진 무대에서 권력을 쥔 사람들끼리의 역할극이었습니다. 그 자리 어디에도 국민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이야기가 재미가 없는 이유입니다. 2023년 정권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권력을 쥔 자들의 막말만 무성하지만 그래도 기사의 행간에는 그 말을 듣고 기억하며 때를 기다리는 국민이 늘 있습니다. 그런 세상을 만든 것에 김재규가 조금이라도 기여한 바가 있다면 감사할 일입니다. 자기 목숨을 던져 대통령을 죽인 사람이 예상한 나라가 이런 나라였다고 주장한다면 그 말이 맞던 그르던 고마운 일입니다.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