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망월폐견. 전우용의 시사상식 사전. 새움 간행 26

무주이장 2023. 7. 28. 11:47

  역사학자 전우용, 그를 안 것은 그가 출연하는 방송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회자가 묻는 어떤 말에도 거침없이 기원과 출처를 알려주고, 역사적 의미를 설명하면서 정확한 용례와 잘못된 용례를 드는 해박함에 놀라서 그가 쓴 책을 읽으면 나도 상식이 늘 수 있지 않을까 욕심을 부려 고른 책입니다. 개가 달을 보고 짓는다는 말인데, 달이야 원래 항상 언제나 그 시각에 그 자리에서 뜨고 지는 것인데 개가 달을 보고 짓는 것은 어떤 연유일지 궁금했습니다. 그 궁금증을 하나씩 같이 해결하는 의미로 정리할 생각입니다.

 

 

전염병

 

  “전쟁 중이던 1951년 초, 한반도 전역에서 발진티푸스가 유행했습니다” 선생의 글 한 줄에서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났습니다.

 

  아버지는 6.25 참전 사실을 함부로 얘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장남인 저와 소주 한 잔을 하거나, 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마음이 풀리면 잠깐 참전 경험을 이야기하셨습니다. 아버지는 경험을 이야기하시면서 연도와 일시를 분명히 얘기하셨지만 듣는 저는 그렇게 심각하게 듣질 않았던 모양입니다. 연도와 일시는 잊힌 채 사건의 개요만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는 참전을 하신 후 전쟁 포로가 되었습니다. 숱한 전투의 피로를 견디지 못하고 개인 참호에서 잠이 들었는데, 부대가 후퇴한 것을 모를 정도로 피곤했던 것인지, 아니면 후퇴 자체가 너무 급해 휘하의 부대원을 모두 데리고 가지 못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옆구리를 찌르는 통증에 눈을 떠보니 솰라솰라 중국말을 하는 중공군이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포로가 된 이후 소속 부대원을 만난 적이 없으니 왜 당신을 그냥 두고 갔는지 확인이 되지 않았을 것이고, 중공군이라고 설명을 해주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중공군의 참전은 1950년 10월 19일부터였다고 하니 아버지가 포로가 된 시기는 그 이후일 것입니다.

 

  북한군에 인계된 후 아버지는 북한 전역을 옮겨 다녔다고 합니다. 북한군은 따로 독립적인 포로수용소를 운용하고 있지 않아서 개별 부대에서 관리를 하였는데, 북한군은 전황에 따라 후퇴를 하면서 포로를 데리고 다녔고 아버지도 그때마다 장소를 달리해서 수용되었다고 합니다. 주로 민가나 헛간 등에 수 명에서 수십 명씩 집단으로 수용되었다고 합니다. 제가 선생의 글에서 아버지를 기억한 단어는 ‘발진티푸스’입니다. 아버지는 포로 생활 중 발진티푸스에 걸렸는데, 고열과 설사로 거의 죽을 상황이었는데 북한군이 이동을 하면서 민가에 아버지를 맡겼습니다. 죽으면 신고하라는 공허한 명령만 내리고 이동을 했는데, 아무도 아버지가 살 수 있다고 판단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런데 민가에는 서울에서 시집온 며느리가 한 분 있었고, 아버지는 그분의 전직이 간호사였다고 기억을 하였습니다. 아무런 약이 없던 전쟁통에 그분은 아궁이에 붙은 그을음을 긁어서 아버지에게 먹였다고 합니다. 숯이 습기를 먹는 것을 이용한 민간처방이었습니다. 다행히 아버지는 그분의 지극한 간병으로 발진티푸스의 아귀에서 벗어나 목숨을 건졌다고 했습니다. 그 후 다시 중강진까지 끌려갔다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에 이어 단행된 포로교환에서 돌아오셨습니다.

 

  포로에서 풀려난 아버지는 군부대에 수용되어 방첩대의 조사를 수차례 받은 후 예편을 하였습니다. 집에 돌아온 아버지를 본 고모부는 저에게 아버지의 당시 몰골을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흑달에 걸려 새까맣고 살점 하나 없이 깡마른 시체 같은 사람이 집으로 들어오는데, 이미 제사까지 지냈던 네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지금은 민간회사가 된 국방부 산하 부산 조병창에서 문관으로 잠깐 근무를 하셨습니다. 그런 아버지는 제가 육군사관학교 시험을 합격하고, 면접을 본 후에도 합격 소식이 없는 이유가 아버지의 포로 이력이 작용했다는 말에 많이 미안해하셨습니다. 전쟁의 고통을 고스란히 감내한 아버지 같은 사람들이 이룬 평화를 지금은 잊은 듯 군 면제자들이 전쟁을 운운하고 있습니다. 선생의 글을 읽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리워졌습니다.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