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 : 명나라
“몽골 통치의 말년은 엄청난 혼란과 많은 반란으로 얼룩졌다. 주원장은 원래 반란군의 일개 병사에 불과했으나 점차 신분이 상승하여 1368년에는 명나라를 창건하는 데 이른다. 그는 1127년 북송이 망한 뒤 240년 만에 다시 중국을 통일한 한족 통치자였다. 주원장은 중화와 이적의 이분법에 따라 노골적으로 몽골을 비방하고, 자신의 집권을 정당화하였다. 민족 구성, 영토 크기, 문화 등 모든 방면에서 명나라는 앞선 원나라와 상당히 달랐다. 첫째, 여러 민족 간의 정치적 구별에 기초했던 원나라의 다민족 정책을 명시적으로 포기하였다. 둘째, 명나라 통치자들은 외국과 교류를 금지함으로써 바다를 통한 위협을 관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셋째, 한족 중국문화와 유목민 문화의 차이를 강조해온 도학을 자신들의 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로 삼았다. 이러한 사례들은 명나라의 창건 비전이 민족, 공간, 문화의 세 측면에서 모두 협소하게 정의되었음을 보여준다. 상대적으로 폐쇄적인 정치 환경에서 명나라 창건자 주원장은 자신에게 권력을 집중하였고, 그 권력을 피치자들을 통치하는데 여지없이 휘둘렀다. 따라서 많은 학자가 명나라야 말로 독재의 전형이며, 독재 또한 중국 정치의 항구적인 특징 중 하나라고 주장하였다”(505~511쪽)
시민사회 혹은 정체? : 대안적 접근, 대학의 팔조목
“국가와 사회를 영원한 갈등 관계에 매여 있는 이분화된 존재로 간주하는 근본적으로 양극적인 방식으로는 후기 중국 제국의 정치체를 제대로 개념화하기 어렵다. 국가 관료제와 외부 결사체의 관계, 그리고 국가와 친족 조직의 관계는 갈등 관계보다는 협조 관계로 이해되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후기 중국 제국은 지방질서에 직접 개입하기보다는 기존 사회적 힘들에 의존하며 통치에 임하였다. 이러한 상황을 자율적인 시민사회가 성장한 끝에 국가가 위축되었다고 이해하면 안 된다. 그러한 의존 현상은 국가 기능의 보강이자 유포 작용이었다고 할 수 있다. 관료제 외부의 매우 다양한 조직이 준국가 기능을 수행했던 것이다. 서양의 담론 전통에서 발전된 시민사회 개념을 사용해서 중국 후기 제국 시기의 결사체를 서둘러 개념화하는 대신 대안적인 접근법을 취할 필요가 있다. 갈등에 기초한 국가-사회 모델을 폐기하고 친족 관계를 공적인 통치의 중요한 일부로 고려하는 접근법이 필요하다. 후기 중국 제국의 질서를 이해할 대안적인 접근법을 ‘대학’의 팔조목(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에서 찾을 수 있다.”(575~576쪽)
“그런데 팔조목의 정확한 성격은 그다지 명백하지 않다. 도식으로서의 팔조목의 특징을 살펴보자. 첫째, 인간의 ‘자아 수양’과 그보다 훨씬 더 큰 사안인 ‘통치’ 사이에 연속성을 설정했다. 둘째, 팔조목은 독특한 총괄형 비전이다. 셋째, 팔조목은 천하를 모든 것이 포괄되는 조화로운 협동 구조로 본다. 요컨대 팔조목은 제국을 도덕적 유기체로 상상하는데 적절한 언어다. 팔조목이 일종의 정치 언어인 한, 정치 행위자들은 그 언어를 자신의 목적에 맞추어 전유할 수 있다. 첫째, 군주를 위한 귀감서로서 하향식 유기체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중국 황제에게 정체란 사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고립된 조각들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니다. 통치술의 핵심은 구성원들을 조화와 믿음에 기초한 신뢰 공동체에 통합하는 것이다. 둘째, 보통 사람을 위한 귀감서라는 제목으로 왕양명의 정치사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인간의 본성은 동일하다는 도학의 입장을 왕양명은 그 논리적 극단까지 밀어붙였다. 왕양명의 비전에서는 “거리에 가득한 사람들이 다 성인이었다” 모든 사람이 성인인 이유는 사람이라면 모두 타고난 도덕 감각과 의지력을 통해 즉각적으로 자신을 윤리적인 인간으로 변모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경전 공부마저도 필수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현실과 이상의 긴장에 근거를 둔 인간 세계의 규범성이 없다고 주장을 하지 않았다. 마음의 본체와 ‘인심’(이기심에 의해 어두워진 나머지 원래 가지고 있는 도덕적 역량을 실현하지 못하는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간의 유일한 차이는 마음이 이기심에 의해 흐려져 있느냐 여부이다.”(576~5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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