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일천하 : 원 제국
“중국 역사에서 중화질서가 현실적으로 구현된 시간은 절반에 지나지 않으며, 특히 당나라의 쇠락 이후 명나라가 완전히 성립하기까지 약 500년간 중화질서는 환상에 불과하다. 우선, 당나라가 쇠망한 뒤 송나라가 성립하기까지 약 반세기에 걸쳐 이른바 5대10국이라 불리는 분열기가 존재했다. 분열기를 종식하고 성립한 송나라 이후의 동아시아 국제 정치질서는 이전과 매우 다르다. 북방 지역을 장악하고 있던 거란에 송은 매년 재물을 제공하였고, 남송은 여진에 신하의 예를 취하였다. 이렇게 볼 때 원나라가 성립하기까지 동아시아에는 다극체제가 존재하였거나, 혹은 매우 유동적인 힘의 균형이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원 왕조 시기에는 이민족에 의한 지배가 이루어지면서 중화사상이 기초하고 있던 문화적 탁월성과 지배력의 결합이라는 사고는 재고될 수밖에 없었다. 그에 대해 각기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반응하였다.” (466~467쪽)
“야율초재는 과거 시험과 세금 수취를 제시하였다. 이 제안을 받아들여 몽골 통치자들은 문치체제를 수립하였다. 한족 중심의 역사관을 가진 학자들은 이와 같은 변화가 곧 야만적인 몽골족이 우월한 한족 문화에 압도된 결과라고 설명하곤 하지만, 몽골족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극대화하려 했다는 합리적인 선택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 몽골의 원나라는 유목민 종족 집단에서 정주형 관료 제국으로 변화를 겪었다. 무력에 의존한 지도자들은 그간 자신들의 정복 방식으로는 이미 정복된 제국 전체를 감독할 수 없다.”(467~468쪽)
“몽골족의 정복에 대해 두 가지 대조되는 송나라 황족의 반응이 있다. 조창운의 반응과 조맹부의 반응이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체험에 바탕하여 독특한 예술품을 창작하였다. 조창운은 철두철미한 은자가 됨으로써 자신의 좌절을 표시하였다. 예술 말고는 딱히 관심을 보인 영역도 없다. 그것은 위험천만한 정치 환경에서 조창운이 취할 수 있었던 나름의 대응 방식이었다. 그의 작품은 ‘유신완조입천태산도’(한나라 때 유신과 완조가 천태산에 약초를 캐러 입산한 후의 전설을 묘사한 작품)이다. 또 한 명의 송나라 황족인 조맹부는 조창운과 정반대의 길을 간다. 1286년 조맹부가 몽골 정부에서 고위직을 맡기로 결정하자 많은 사람이 깜짝 놀랐다. 이에 조맹부는 공적인 실천과 개인적인 실존 사이에 낀 상황을 묘사하는 몇 점의 그림을 그렸다. 그것이 ‘이양도’이다(二羊은 한나라 때 활동한 두 장군 소무와 이릉에 대한 일화를 소재로 한 그림으로 소무는 흉노에 충성하기를 거부하고 양치기로 살아간 반면, 이릉은 흉노의 신하로 봉사했다. 이양도에 그려진 양은 소무를, 염소는 이릉을 상징한다) 양은 조맹부가 관직을 맡지 않았을 때의 모습을 상징하고, 염소는 몽골족의 신하로 일할 때의 모습을 상징한다.”(474~483쪽)
중국 4대 미녀 중 한 명인 왕소군은 “한서의 흉노열전, 금조, 서경잡기, 후한서 등에 기록되어 있지만 마치유는 ‘한궁추’에서 국제 관계가 사안의 핵심이 되게끔 왕소군 이야기를 재구성한다. 마치원은 왕소군이 조국을 떠나야 하는 것도 흉노와의 외교 관계 때문이며, 그 외교 문제를 해소하는 것도 다름 아닌 왕소군의 죽음 덕분이다. 특히 주목할 것은 ‘한궁추’에서는 한나라의 국력이 쇠약하여 왕소군이 불가피하게 떠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한나라와 흉노의 역학 관계는 한나라의 국력이 흉노보다 강하기도 하고 약하기도 했던 실제 역사, 그리고 ‘한서’의 기록과 다르다. 게다가 그 왕소군이 양갓집 처녀에서 천민으로 바뀌어 있다는 점을 상기하면 마치원의 의도를 해석할 수 있다(요약을 위해 술어를 추가했습니다) “우리가 도덕적이 되면 이민족도 도덕적이 될 것이라는 중화질서의 관념은 그대로 유지하되 그 질서의 주체만 기존 지배층에서 피지배층으로 바뀌게 됨을 의미한다. 이것은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기존 국제 정치사상을 절묘하게 재전유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비도덕적인 지배층 대 도덕적인 피지배층의 대조를 한껏 도드라지게 한 것이고 이민족은 지배층이 아니라 도덕적인 피지배층에 의해 교화된다”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중화질서의 면면은 아주 다양하다. 중화질서가 전제하고 있는 ‘중국이라는 실체의 내용도 다양하고, 그 중화질서가 역사 속에서 각 주체들에 의해 변용되어온 모습 또한 다양하다. 때로 중화질서는 존재하는 현실의 반영일 수도 있다. 지배의 정당성을 제고하는 데 불가결한 요건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 한족의 우월적 위치가 상실된 정복 왕조 시기에도 이민족은 이민족대로 자신의 지배 정당성을 보증한 논리로 사용하기도 하였고, 한족은 한족대로 저항의 논리로 사용한 것이기도 하다.”(488~5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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