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더 지혜로운 선택 (전도서 7:1-14)
오늘 묵상하는 말씀은 인용의 순서를 바꾸어 저를 경계하는 말씀으로 정리해야 하겠다는 생각입니다. 따로 몇 절의 말씀인지는 표시하지 않겠습니다. 모두 14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뒤돌아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요즘 인기 있다는 드라마 중에 ‘재벌집 막내아들’이 있지요. 주인공이 타임슬립을 하여 미래를 예측하며 복수를 하는 드라마입니다. 주인공은 미래를 예측하여 투자에 성공하지만, 그 시대를 살던 많은 사람들은 당시 기준의 많은 정보를 쥐고서도 번번이 투자나 경영 실패를 합니다. 주인공은 하나님이 만드시는 일을 예측하는 듯합니다. 그럼에도 주인공이 어쩔 수 없는 것은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피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방책을 쓰더라도 하나님이 만든 일은 불변하게 일어난다는 말이 되지요.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누구라도 능히 곧게 할 수 없다는 말 같았습니다.
탐욕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하고 뇌물이 사람의 명철을 망하게 하느니라
거대한 불의와 구조적 악에 대항하여 한 치의 물러섬도 없던 지혜가, 사소한 탐욕과 조그마한 뇌물 앞에서 일순간에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을 자주 보지 않습니까? 생활인은 거대담론을 입에 올리기보다는 생활 속의 작지만 신선한 소망들을 소박하게 이뤄가는 성실과 인내가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거대담론으로 세상이 바뀌기는 어렵지만 개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실히 인내하며 변하면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렇다고 정치인은 그러면 거대담론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느냐? 무슨 특권이 있다고 하나님이 만든 일을 자기 뜻대로 바꿀 수 있겠습니까? 단지 말이 아니라 사람을 감동시키는 정치인의 일상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감동시키면 더욱 좋지요. 우리는 ‘사람이 곧 하늘이다’는 말도 하지 않습니까?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한 자들의 품에 머무름이니라
어떤 일이든 소임을 맡으면 권한과 함께 의무가 생깁니다. 제가 하나님을 믿기 시작하면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권력이 생기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다른 편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라는 의무도 받았습니다. 권력의 시작을 달지만 그 끝은 권력의 사용에 대한 청구서를 받게 됩니다. 그러니 끝이 시작보다 낫다고 하시는 게지요. 시작의 달콤함에서 교만하게 서두르지만 세상일 모두 하나님이 하신 것인데 서두른다고 쉽게 이뤄지겠습니까? 이를 잊고 화를 내니 그 끝은 더욱 참혹하지요. 정치인이나 생활인이나 경계해야 할 말씀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
친구와 통화를 했습니다. 제 주장을 듣던 친구가 저를 책망했습니다. 책망을 듣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도 얼른 그랬습니다.
“내가 잘못했다.” 친구가 그럽니다.
“너 많이 변했다.” 고마운 평가입니다. 모두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세상일에 더 지혜로운 선택을 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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