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누가 능히 통달하랴 (전도서 7:15-29)
전도서를 설명하는 글에서 ‘반성적 지혜’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알 수 없기에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겸손할 수밖에 없다지요. 그러면서 ‘규범적 지혜’의 겸손은 ‘반성적 지혜’에서는 교만이 된답니다. 잠언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고, 알게 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겸손이라고 했는데, 전도서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알 수 없다는 전제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안다는 것이 교만이 되는 것이란 설명이었습니다. 그러면 이번 장의 전도자의 말이 이해가 될 듯합니다.
자기의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장수하는 악인이 있으니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하게 하겠느냐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우매한 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고 하느냐
매일성경의 해설을 보겠습니다. ‘전도자는 의로워도 멸망하고 악해도 장수하는 것을 보면서, 지나치게 의로운 삶과 지나치게 악한 삶을 피하여 일찍 죽는 것을 면하는 것이 낫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적당히 악하고 적당히 의롭게 사는 게 답이 될 리 없습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선과 악의 중간 지대가 아니라, 모든 일에 하나님만 경외하며 믿고 따르는 단순한 길입니다.’
전도서는 반성적 지혜라는 설명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알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고 했지요. 전도자가 허무한 날을 사는 동안 그 모든 것을 살펴보았더니 세상일 이래도 탈, 저래도 탈이라는 것을 본 것입니다. 그러니 적당히 중간을 잡아 살라고 충고를 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그대로 전하자니 많이 불편할 수도 있을 것으로 짐작이 되었고 그래서 해설은 중간 지대는 없다. 모든 일에 하나님만 경외하며 믿고 따르라 권면하는 것 아닐까요? 하나님을 온전히 모르는데 하나님만 경외하며 무엇을 믿고 따르는 것이 단순한 길인지는 설명이 부족한 듯합니다.
전도자의 말은 이어집니다.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
사실을 무시하고 규범을 강조하면 교조적이 되고, 규범을 무시하고 사실을 강조하면 현실과 타협하는 무원칙주의자가 되기가 쉽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매일 매시간마다 주의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마 매주 대표기도에서는 매번 이런 기도가 나오는 모양입니다.
“하나님을 따라 살아야 함에도 매일 세상의 법을 따라 사는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전도서의 묵상이 점점 더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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