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절대 권력 아래, 부조리한 현실에서, 불가피한 죽음 앞에서의 지혜 (전도서 8:1-9:10)
전도자는 왕의 명령은 지키라고 권합니다. 왕 앞에서 물러가기를 급하게 하지 말며 악한 것을 일삼지 말라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왕은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다 행함이라고 합니다. 그런 왕에게 왜 그러십니까? 하고 물을 수 있겠냐고 반문합니다. 왕의 명령을 지키는 자는 불행을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지혜자는 때와 판단을 구별하여 상황을 잘 파악하고 대응한다고 합니다.
전도자는 사람이 사람을 주장하여 해롭게 하는 때가 있다면서 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하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해진다고 합니다. 더욱 어려운 일이 악인들의 행위에 따라 벌을 받는 의인들도 있고 의인들의 행위에 따라 상을 받는 악인들도 있다고 합니다.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이런 일들을 사람이 능히 알아낼 수 없으므로 전도자는 사람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해 아래에는 없다고 합니다.
전도자는 의인들이나 지혜자들이나 가릴 것 없이 그들의 행위나 다른 모든 것이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사람이 알지 못하는 이유가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고, 모두 미래에 일어날 일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소망은 오직 산 자들에만 해당된다고 하면서 죽은 자들은 아무 것도 모르며 사람들 사이에서 잊혀진다고 합니다. 죽은 자들이 살았을 때 받았던 사랑과 미움과 시기도 없어진 지 오래 전이니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 중에는 죽은 자들에게 돌아갈 몫은 영원히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가서 기쁨으로 나에게 주어진 음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나의 포도주를 마시라고 합니다. 이렇게 주어진 것은 하나님이 이미 내가 하는 일들을 벌써 기쁘게 받았다는 증거라고 합니다.
사람의 삶이란 것이 어떤 구속이나 제한이 없이 자유롭지 않습니다. 처세론이 회자되는 이유겠지요. 때와 상황에 맞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지혜로운 처신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많습니다. 딸이 세상에 태어날 때보다 지금이 더 나은 세상이 된 데에는 이런 사람들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더 나은 세상을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혹시 성경 때문일까요? 아님 성경을 읽은 사람들 때문일까요?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을까요? 상황이 적당하지 않아서일까요? 묵상이 방향을 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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