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미술품의 완벽했던 기준
이집트 미술품은 거대하면서도 섬세하고 완벽하다면서 아부심벨 신정을 설명하고, 이 정도의 실력이니 작은 공예품을 완벽하게 만드는 것들은 어려운 일도 아니라며 고대 이집트 목걸이와 투탕카멘 펜던트를 보여줍니다. 또한 이집트 미술품은 이론적 측면에서 체계가 잡혀 있었고, 확실한 규칙이 존재했으며, 미술품을 제작한 사람이 그 체계와 규칙을 철저하게 따랐다면서 ‘정면성의 원리’를 설명합니다. 정면성의 원리는 고대 이집트인이 인체를 표현할 때 적용한 규칙입니다. 얼굴은 옆모습, 눈은 정면, 상체도 정면, 하체는 걸어가고 있는 측면으로 그렸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집트 벽화를 볼 때마다 사람의 모습이 이상한 점이 있었는데 그 이유가 그들의 원칙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벽화 속의 그들이 달리 보였습니다. ‘어? 그런데 그런 원칙을 적용하지 않은 사람의 그림도 보입니다.’ 정면성의 원리가 적용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책에서 왜 그런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이집트 미술은 그리드(grid)에 맞춰 그림을 그리는 원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림을 그릴 때 우선 그리드를 친 다음 그리드의 크기에 맞춰 사람을 그려 나갔다는 말입니다. 발끝에서 문 있는 데까지의 그리드 개수가 일정하게 정해져 있답니다. 그리드를 키우면 그림이 커지고, 그리드의 크기를 줄이면 사람의 키는 작아진다는 말입니다. 그리드에 맞춰 신체의 비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도 이집트 사람들이 고수하려 했던 완벽함의 기준이었답니다.
영생불멸을 믿었던 이집트인이기에 그들은 철저한 준비를 합니다. 미라를 제작한 이유입니다. 미라 외에 영생의 상징으로 부가적으로 조각상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생전 모습을 조각상으로 만들었는데 오늘날로 치면 가족사진 같은 작품이라고 합니다.
피라미드는 고왕국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이라는 것과 우주에서도 보인다는 피라미드를 외계인이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실제는 기중기를 사용했을 것이라는 설명과 피라미드 제작 상상도를 보면서 이집트의 당시 기술력을 상상했습니다. 장례의 형식이 바뀌면서 신왕국 시대에는 피라미드가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왕들의 계곡’이 피라미드를 대신한 왕들의 공동묘지가 되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영화에서 보던 이집트 신들의 형상이 괴기스러웠다면, 책에서 본 오시리스, 세트, 호루스, 히토르, 토트, 아누비스는 매우 정답게 느껴졌습니다. 이해를 하면 그렇게 보이나 봅니다. ‘모르면 무섭다’는 말이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네페르티티 상은 이집트의 조각상 중 누구나 한 번쯤은 보았을 것입니다. 양 교수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그녀가 더 없는 미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가 도굴을 피한 이유를 들으면서 불행은 영원하지 않고 행운으로 바뀔 수 있다는 인생의 원리도 새삼 생각했습니다.
‘쿠데타로 정국이 불안하던 시기에 죽은 소년 파라오인 투탕카멘의 무덤은 별로 좋지 않은 위치에 조성되고, 입구 쪽, 눈에 잘 띄지 않는 가려진 곳에 있었던 데다가 크기도 작았’기에 투탕카멘의 무덤을 빼고는 전부 도굴당했다고 합니다. 11킬로그램의 금과 각종 화려한 보석들로 장식된 미라의 얼굴을 덮었던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가 저주의 물건이 아니라 완벽한 이집트의 미술품으로 저에게 각인이 되었습니다.
이집트가 알렉산더의 마케도니아에 의해 정복당하면서 이집트의 상류사회에는 이집트인과 그리스인이 뒤섞이면서 공문서를 만들 때, 그리스어, 신성문자, 대중이 이해하는 문자 세 가지를 함께 써야 했습니다. 로제타스톤(로제타석)은 이렇게 작성된 비석입니다. 그리스어를 알고 있었으니, 신성문자와 대중이 이해하는 문자를 해석하는 사전이 될 수 있었다는 설명은 전에도 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마케도니아에 의해 정복되어 공문서가 3개의 언어로 작성되었다는 이야기는 이번에 들었습니다. 역사와 미술사가 분리되어 있으면 기억하기에 지장을 줍니다. 이번에 들은 이야기는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습니다. 자세한 해석의 방법은 책을 읽기를 권합니다.
양 교수의 이집트 미술사는 너무도 재미있습니다. 미술품을 읽는 눈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늘 관심을 가집니다. 한때 진중권 교수가 쓴 ‘미학 오디세이’를 너무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지만, 요즘 그의 정치 평론을 보면 그가 다시 쓰는 미학 책은 재미가 많이 떨어질 것 같습니다. ‘당대의 삶과 환경을 이해하는 것’이 미술사 공부의 핵심이라고 하는데, 당대의 삶과 환경을 읽는 시각에 완벽성이 떨어지기에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양정무 교수라고 해서 다를 리가 없는 '사람'이지만, 그의 미술품을 보는 시각이 마음에 흡족합니다. 변화가 있는 그의 설명은 아마도 그동안 우리가 미술품을 보는 시각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엿장수처럼 변하는 정치평론처럼 불안하고 아전인수격이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언젠가는 미술을 보는 다양한 시각들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미술품을 감상할 수 있는 시기가 도래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양정무 교수님의 책에 감사의 댓글을 달았다고 생각하며 이집트 미술 부분의 감상을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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