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 미술 – 이거 쉽게 생각할 미술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이름도 아득한 기억 속에 있던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 구석기시대의 사람들이 그린 그림을 흑백 사진으로 교과서 속에서 조그맣게 붙이고 설명을 한 것을 본 기억으로는 입학 전 아동이 그린 그림 정도로만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신석기시대의 유물로 서울 암사동 집터에서 출토된 빗살무늬토기는 그저 농경생활을 증명하는 토기로만 기억합니다. 빗살은 토기에 그려진 무늬로 출토된 토기에 쉽게 이름 붙이는 용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설명은 책을 읽는 이유를 알게 했고, 그 책을 좋아하는 이유도 만들었습니다. 이리저리 깨어 만든 주먹도끼도 지능이 낮은 영장류가 처음 만든 도구라는 이유만으로 중요한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미술이라는 눈으로 보기 시작할 때 그 의미는 고고학의 의미와는 같으면서도 다른 인간과 그 시대에 대하여 깊은 이해의 눈을 가질 수 있게 합니다.
주먹도끼의 고고학적 의미보다는 모양을 보고 좌우대칭으로 만든 이유를 묻습니다. 껍질을 벗기든, 찌르든, 자르든, 어쨌거나 날이 잘 들기만 하면 되는데 굳이 왜 좌우 대칭으로 양날을 만들었을까요? 멋지게 만들려고 그랬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칼싸움을 위해 만들었던 나무칼도 그랬습니다. 그저 작대기면 되었는데도 굳이 손잡이를 만들고 나무칼의 양날을 벽에 대고 문질러 칼날을 벼려 만들었던 이유와 비슷했습니다. 그래야 칼이 칼 같았거든요. 내 칼을 보고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자랑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 마음이 돌로 만든 좌우대칭의 주먹도끼에 숨어 있던 것을 사람들이 찾아낸 것입니다. 빗살무늬토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들여 일일이 손톱무늬, 세모띠무늬, 겹톱니무늬, 생선뼈무늬를 낸 이유는 그릇을 그릇으로 쓰려는 목적 이상이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도 집으로 쓰던 동굴에서 심실 풀이로 낙서하던 그림이 아닌 모양입니다.
1만 7,000년 전의 비밀이 숨겨져 있는 프랑스 중부 내륙 도르도뉴에 자리한 시골마을 몽티냑에서 발견된 라스코 동굴벽화의 그림은 17,000년 전 그림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잘 그려진 그림이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솜씨도 솜씨이지만 그림의 어마어마한 크기에 놀라게 됩니다. 동굴에 그려진 소를 하필 벽의 튀어나온 부분에 그려서 휘어진 벽면을 활용한 것을 보면서는 탁월한 미술가를 상상하게 됩니다. 현대미술에서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게 하는 ‘장소성’이라는 중요한 메시지를 읽게 하니까요. ‘장소성’이란 작품과 전시하는 공간의 관계를 잘 살리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라스코 동굴벽화 못지않게 유명한 곳이 스페인 북부의 알타미라 동굴입니다. 피카소가 이곳의 동굴벽화를 보고 나서 “인류는 2만 년 동안 나아진 게 없구나”라고 말했다고 하는 황소 그림이 있습니다. 피카소가 그린 황소 연작은 2만 년 전 그린 알타미라의 황소에게서 피카소가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1994년 12월 18일에 발견된 프랑스 퐁다르크 지역의 쇼베 동굴의 곰 그림도 귀여운 곰 한 마리였고 단순히 선으로만 표현한 곰의 두 귀는 제게 그림의 입체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창작자의 솜씨를 느꼈습니다. 그럼 이런 동굴벽화는 왜 그렸을까요? 제가 짐작했던 것처럼 집에서 심심풀이로 그린 그림이거나, 과거 우리 집에도 두었던 신줏단지와 비슷한 기능을 가진 그림이었을까요? 일단 동굴이 주거 기능을 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라스코 동굴은 실제 사람이 주거지로 쓰기에는 동굴이 낮고 좁답니다. 특별한 기능을 위한 장소였고 여기에 어떤 목적을 가지고 그린 그림이라는 설명(가설)이었습니다. 가설 중에서 사냥감의 증가를 기원하는 의식이라는 설이 있지만 이는 당시 주된 사냥감이 작은 사슴이었는데 그려진 대상은 황소나 매머드 등 거대 동물이라는 것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가설 또 하나는 지금도 존재하는 원시부족들의 벽화처럼, 동물을 통해 은유적으로 자신들의 세계관을 설명하는 방법이었을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구석기시대의 동굴벽화의 화가는 누구였을까? 이 화가는 남자였을까? 여자였을까? 등 궁금한 내용을 책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책을 보시기를 권합니다. 원시미술이라고 하는 것이 2만 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을 느끼지 못하게 할 정도로 잘 그려진 작품이라는 설명에 공감하였습니다. 세계사를 배우는 방법을 미술사를 배우면서 하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런 감탄은 이어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미술사를 배우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역사와 미술을 같이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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