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이야기 1. 양정무 지음. 사회평론 간행 5.

무주이장 2022. 10. 24. 13:41

메소포타미아 미술 : 삶은 처절한 투쟁이다.

 

  인류 역사를 보면 메소포타미아에서 최초로 발명된 것이 수없이 많다고 합니다. 달력, 바퀴와 쟁기, 돛단배, 화폐, 법전도 그렇습니다. 심지어 맥주까지도요. 이 모든 것보다 중요한 발명품은 도시입니다. 농사가 잘 되는 곳을 선택하여 잉여생산물이 나오고, 모든 사람이 식량 생산에 매달릴 필요가 없어지면서 다른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고, 다양한 직업 집단이 생겨났습니다. ‘농업혁명이라고 표현하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지만 이후에 본격적으로 진행됐던 것이 ‘도시혁명’이었습니다. 기원전 1만 년경에 일어났던 농업혁명으로 사람들이 한 지역에 머물러 살면서, 기원전 4000~3000년에 이르자 메소포타미아에 인구 1만 명 이상을 가진 복잡한 사회구조를 갖춘 도시들이 대거 출현하게 됩니다. 이런 변화를 양 교수는 ‘도시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메소포타미아의 미술은 이들 도시와는 떼려야 뗄 수 없습니다.

 

  도시의 중심에 지구라트가 지어지고 신전의 기능을 합니다. 그곳에는 그릇이 있고, 와르크 병이 출토되고, 조각상이 나왔습니다. 도시에는 권력자의 무덤이 있어 화려한 금과 라피스 라줄리 장식이 있는 부장품들이 발견되었습니다. 도시 국가들 간의 갈등이 표현된 우르의 군기같은 유물도 확인됩니다. 자신의 공적을 찬양하고 권력의 정당성을 표현하기 위한 왕의 조각상과 전승비도 보입니다. 신이 자신에게 권력을 주었다는 것을 함무라비 법비에도 새깁니다. 이 지역에서 번성했던 도시들은 차츰 거대한 국가로 가는 징검다리가 되거나, 전쟁으로 인하여 폐허가 되기도 하고 새로운 도시가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그들 패권국의 이름이 아카드의 사르곤 1세 왕으로부터 구바빌로니아, 히타이트, 히타이트 신왕국, 아시리아, 신바빌로니아, 페르시아, 알렉산더의 마케도니아까지 면면이 이어집니다. 이들은 이집트와도 패권을 겨루지요. 이들 패권국이 만들어 지녔던 미술품들의 설명이 책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아쉽게도 이들의 미술품들은 서구 열강에 의해 빼앗기고 파괴된 것이 많아 이들 땅에서 보는 것보다는 영국이나 프랑스의 미술관을 가야 볼 수 있다는 것이 아쉽기만 합니다. 제가 가장 인상적으로 본 미술품은 이슈타르 문(복원)이었습니다. 이 문은 아시리아를 물리치고 바빌로니아를 다시 건설한 신바빌로니아의 수도 바빌론의 관문입니다. 우리나라의 숭례문이라고 비유를 하더군요. 이 문은 모두 부서져 발굴한 독일인들이 베를린으로 조각들을 모두 가져가서 일일이 복원을 하였다고 하는데 독일인들의 끈기와 노력에 감탄하면서도 이 문을 바빌론이 아닌 베를린페르가몬 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다는 것에 아쉬웠습니다. 장소성을 감안하면 이 문이 원래 있던 곳에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혼자 상상을 했습니다. 바빌론의 복원도를 보면서 든 생각이었습니다.

 

  페르시아의 수도 수사와 제국의 영토를 넓힌 후 새로운 수도로 건설한 페르세폴리스의 설명도 흥미로웠고, 이 도시들이 알렉산더에 의해 파괴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페르시아가 남긴 찬란한 문화를 모두 없애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오히려 페르시아 문화의 특정 부분은 알렉산더의 제국에 스며들었다고 합니다. 우수한 문화는 언제나 멸종되지 않고 어디엔가 그 유전자를 전달하기 마련이지요. 알렉산더가 페르시아를 정복한 다음 자신의 얼굴이 새겨진 금화를 만들었는데, 금으로 화폐를 만든 뒤 표면에 지배자의 모습을 새겨 넣는 것은 페르시아 사람들이 처음 고안해낸 방식이라고 합니다. 왕의 얼굴이 새겨진 금화가 전국에서 사용될 때 피정복민들은 그들이 누구에게 정복당했고, 그 힘이 얼마나 강하며, 언제나 자기들을 지배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 날, 한 시도 잊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국제무역의 통화로도 사용하는 것에 손색이 없었을 것입니다.

 

 이집트에 로제타스톤이 있다면 메소포타미아에는 베히스툰산 100미터 높이에 다리우스 1세가 자신이 반란자를 처단하고 페르시아 제국의 황제로 등극하게 된 과정을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아주 높은 위치의 바위에 새긴 비문이 있습니다. 다민족 국가였던 페르시아 제국을 지배한 다리우스 1세가 치적을 자랑할 때, 고대 페르시아어, 엘람어, 바빌로니아어 등 세 가지 쇄기문자로 기록했습니다. 이 세 가지 언어 중 고대 페르시아의 언어는 1802년 이미 해독이 되어 사전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다양한 민족이 문명을 발전시킴과 동시에 갈등을 만나야만 했던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이집트와는 달리 영원불멸을 표현했던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가 투쟁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들의 삶은 처절한 투쟁 그 자체였고 그들의 이런 삶은 그들이 만들고 남긴 미술품을 통하여 우리가 지금도 알 수 있다는 것에 미술사를 연구하는 분들의 노고와 뛰어남에 존경의 뜻을 표하고 싶습니다. .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