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란 게, 언어를 갈고닦아 영롱한 빛을 내게 하고, 의미를 욱이고 채워 탁하면 억하고 알아먹어야 함에도 능력이 되지 않아 멀리 했습니다. 그러나 어쩌다 이해가 될 듯한 시를 만나면 너무 반가운 나머지 따라 하고 싶어지고 말을 붙여 보고 싶어 집니다. 그래서 시인에게 반가움을 표시하고, 응원을 하고 싶어서 주접일지도 모를 글을 씁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이 계시다면 그렇게 이해해 주시면 감사할 일입니다.
레이몬드 카바를 읽고 목욕을 하고
나는 다시 나의 의자에 앉아
눈 덮인 겨울나무 가지 위에
부지런히 눈을 터는 새를 본다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은 멀리서 빛나고
당신을 위해
나는 이 시를 억지로 완성하지 않으리 (대화 상대, 마지막 두 연, 43쪽)
내가
시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는 시간은
수많은 시집과 시인들의 이름 속에서
내가 너와 나눈 말들이
고스란히 차곡차곡 다른 틈 주지 않아
일 년에 한 번 쓸까 말까 한
현학의 비단옷을 두른 것들이 들어오지 못하는
시를 읽었을 때야.
그런 시인을 만났을 때야
그 찰나 말이야.
후보 선수인 내게 공은
어떻게든 만지고픈 무엇이었다.
공은 그가 기다리는 곳에서 오지 않았다.
그가 보지 못한 뒤에서 날아온 공이 그를 쓰러뜨렸고
내가 기대하지 않던 친구의 도움이 나를 살렸다.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공이 오고가며 게임이 완성
된다. (공은 기다리는 곳에서 오지 않는다 중에서 65쪽)
다행이네
널 쓰러뜨린 공이 아니어서.
월드컵 골 모음 비디오를 보고 나는 알았다
같은 골은 하나도 없다
비슷하지만 다른 인생을 다루는
진짜 작가라면 같은 문장을 두 번 쓰지 않는다(닮은 꼴. 69쪽)
그랬구나
그래서 네게서는
지루함이 없었던 거야
늘 틀면
중계되는 축구경기였건만
늘 지루하지 않아
보는 축구처럼 말이야
국민학교 피구선수였던 나는, 상대를 정확히 맞춰 때리는 재주가 없음을 일찍이 간파하고 용감한 수비수가 되었다.
그러나 운동장 밖에는 더 큰 세상이 있어, 치명적인 공이 바로 내 앞에 떨어지기까지 누가 적이고 누가 진짜 친구인지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다. (나는 왜 수비수가 되었나 중에서, 72쪽)
네가 하는 피구경기를
누군가는 한 조각의 진실이 살아 움직이는 아름다움으로 감격하고, 너의 플레이는 발랄한 총천연색 사진처럼 앨범 속에 넣어두고, 생생한 풍경처럼, 마약처럼 고통을 이겨내게 한다.
넌 영원한 수비수야. 넌 영원한 우리들의 주전이야.
밖에서 더 잘 보이게 만들어진 어항 속의 물고기처럼
눈을 감고 헤엄치는 나의 언어들은-
요리사 마음대로 요리하기 쉬운, 도마 위에 오는 생선
솜씨 없이 무딘 칼에도 무방비일지언정
내 시에 향수와 방부제를 뿌리지는 않겠다.
자신의 약점을 보이지 않는 시를 나는 믿지 않는다. (눈 감고 헤엄치기 중에서, 106쪽)
자신의 약점을 보이지 않는 사람을 나는 믿지 않는다.
최영미 시집 (돼지들에게)를 읽으면서 돼지는 누구며, 진주는 누군지 궁금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시인의 궤적이 널리 알려지긴 했지만, 그가 한 마리의 돼지와 하나의 진주알만 생각하고 시를 썼다면 시에 공감을 하지 않았을 것을 믿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자주 가는 무주의 한 마을에서 돼지를 키우는 형님 내외의 농장을 보면 돼지는 한 마리씩 키우지 않습니다. 농가의 구조가 바뀐 지 오래되어 집마다 한두 마리씩 키우던 돼지들은 모두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농가가 있다고 하더라도 오명을 씌울 만큼 그 돼지들은 사납지 않지요. 나는 무주의 형님에게 늘 권합니다. 가진 농장의 땅도 넓은데, 돼지를 방목해보는 게 어떠냐고. 씨알도 먹히지 않습니다. 만약 돼지가 욕심의 대명사라면 돼지에게 잘못이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의 욕망이 돼지에게 덧 씐 것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농장엔 돼지들이 밀집되어 있고 6개월을 채워 순서대로 농장을 떠납니다. 그 옆 넓은 농장엔 사과 묘목이 최근 다시 심어졌습니다. 틈이라곤 없는 농장에서 형님 내외는 사시사철 아침저녁 끊임없이 일만 하십니다. 다행인 것은 돼지의 두 수는 늘 그대로입니다.
우리는 돼지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수많은 진주를 꿰어 자기 목에 걸어달라고 하는 돼지들의 아우성이 넘치고, 돼지가 여우가 된다 해도 그 시작은 사람의 욕망에서 시작한 것이어서 사람이 끝을 내야 할 것이지 돼지와 여우에게 기댈 일은 아닙니다. 돼지를 키우는 사람들이 가득한 한 시인은 영원한 수비수로서 둥그런 아픔을 가슴으로 껴안으며 살 운명일지도 모릅니다. 비록 조그만 손이라도 포개고, 마음 한 구석으로 응원을 하면서 시인에게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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