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백한 언덕 풍경, 가즈오 이시구로, 김남주 옮김
상실의 시대를 산 그들의 창백한 이야기,
최선의 전쟁보다 최악의 평화가 낫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또 평화는 구걸하면 얻지 못한다는 말도 있다. 선제타격을 주장하면서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잠꼬대도 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을 받으면서 민간인들의 집과 재산이 파괴되고 사라졌다. 러시아 군인 7,000명이 전사했다는 소식도 들리고, 우크라이나 여기저기에서 민간인 사망자 소식이 전해진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국민이 똘똘 뭉쳐 어려운 전황을 극복해간다는 소식에 위안도 받지만, 애초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을 없애려는 노력은 부족하지 않았는지 아쉽기만 하다. 나토에 가입을 시켜 줄 가능성이 당초 없었다면 우크라이나는 왜 나토 가입 의지를 표명하여 러시아에게 침략의 핑계를 주었을까 아쉽기만 하다. 다행히 서방의 군사 지원과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자주국방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의 추축국으로 전쟁을 도발했다. 전쟁준비를 위하여 군사 내각이 들어서고, 일본 내 반전 세력들을 억압하면서 군국주의의 길을 내달았다. 일본의 군국주의 반대의 역사는 도드라져 보이지 않는다. 한반도가 병점 되고, 중국에 만주국 괴뢰정부가 들어서고 점령된 지역의 국민들은 일본을 위한 총과 방패가 되고, 노동인력이 되어 전쟁을 억지로 지원했다. 그리고 종전이 되면서 우리는 해방을 맞았다. 중국 사정을 얘기하자면 글이 한없이 길어질 수 있으므로, 우리나라의 사정만 보더라도 일제강점기 사람들은 세계 곳곳으로 살기 위해 부유했고, 해방이 되어서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운명을 맞았다. 일본이 벌인 전쟁의 인과 고리로 우리는 남북이 나뉘어 전쟁을 치렀다.
가족을 잃은 자가 한둘이 아니고, 재산을 잃은 것이 한두 푼이 아니다. 쓰러진 마음을 가누지 못한 한은 이 땅 여기저기, 해외 곳곳에 시퍼렇게 살아있다. 이들의 상실은 누가 위로할까?
삶의 여백에서 새어 나오는 그 숱한 말들을 일본 출신의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창백한 언덕 풍경’이라는 소설은 탁월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극찬을 한다고 한다. 일본인이 하고 싶고 하지 못한 말들 말이다.
전쟁의 직접 책임이 있었던 일본이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폭을 맞고 항복을 한 후, 나가사키를 무대로 한 일본의 사회를 소개하는 소설이다. 작가의 지난 작품을 통해서도 느꼈지만 일본인 특유의 감성이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왜 일본 드라마를 보면 느껴지는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이야기와 정서 말이다. 하도 책을 소개하는 문구가 화려하고, 노벨상도 수상한 작가라고 하기에 많이들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술집 접대부의 아메리칸드림과 가족들을 잃은 사람들, 일생동안 지켜온 신념체계의 와해와 정립되지 않은 새로운 사상의 급류에 정신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진다. 주인공 에츠코의 둘째 딸 니키는 편지로는 동거하는 남자와 사는 이야기를 어느 정도는 자세히 하지만 막상 얼굴을 마주하면 엄마에게 얘기하기를 주저한다. 부모 세대의 과거와 니키의 현재, 과거와 현재의 인과론적인 미래와 얽혀 있지만 ‘아무것에도 묶이고 싶어 하지 않는’ 니키다. 김남주 씨는 니키가 작가가 말하는 우리의 미래라고 설명을 한다. 글쎄 그렇게 하면 될까?
영국과 미국에서 극찬을 하는 거장 중 한 명이라고는 하지만 일전에 읽었던 ‘녹턴’도 그렇고 우울하고 심란하고 창백하고 잿빛의 이야기와 감성이 묻어 나오는 것이 일본인의 글에서 느끼다 보니, "이거 오버 아냐?"라는 반감이 스멀스멀 생기더라. 고백하건대, 일본에 대한 반감은 특별하게 없다. 적당히 일반화하여 한 묶음으로 싫어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전쟁으로 인한 상실의 시대를 산 일본인들이라니.... 공감이 잘 안 되었고, 그들 스스로 우울과 창백을 얘기하는 것에 반감이 생기더라.
만약 우리 시대, 누가 나서서 전쟁을 일으킨다면 그 전쟁을 일으킨 편의 사람들은 우울이니 창백하다느니 얘기할 건 아니라는 말이다. 러시아 국민들이 푸틴을 말리지 못했으면서, 전쟁 때문에 “우린 우울해”라고 말한다면 당신 생각은 어떨까? 물어볼 일이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반전 운동이라도 하면, 우울해질 시간도 없다는 것이 나의 믿음이다. 쫓겨다니기 바쁜데 우울할 시간이 어디 있을까?
개인의 책임이 한정된 전쟁에서, 후유증을 개인이 고스란히 받는 것을 무시했다는 비난은 고스란히 나의 몫이겠지. 할 수 없는 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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