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민음사,세계문학전집 13

무주이장 2022. 2. 11. 16:31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

 

 내가 정녕 원하진 않았지만 자발적으로 들어간 논산훈련소에서 만났던 장정들의 기억은 정말이지 하나도 없다. 나처럼 밖에서 미리 까까머리로 입소한 소심한 장정도 있었지만, 국방부가 제공하는 무료 이발소를 이용하려는 강단이 있는 터벅 머리 장정도 있었다. 논산훈련소에 빈자리가 생길 때까지 대기하는 장소가 장정 대기소였다. 아직까지는 배가 고프지 않아, 타 온 밥과 국이 남았던 짧은 사나흘로 기억한다. 기억은 그것뿐이다. 19824월 봄날이었다.

 

 전국에서 모인 장정이었다. 군가 제목 그대로 우리는 팔도 사나이였다. 같은 내무반을 사용할 예정이었던 우리는 통성명을 하며 즐거이 인사를 하는 여유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다리는 무료한 시간을 메꾸기 위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앞으로 닥칠 훈련소 생활의 공포를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직 사복을 입은 채, 군대가 제공하는 시설을 사용하는 부조화가 우리들의 몸과 마음에 불안을 만들고 있었다.

 

 드디어 훈련소로 입소하는 날, 훈련소 입구를 지나 건물을 돌아섰을 때부터 욕설은 시작되었다. 인솔하는 조교들이 갖가지 욕을 하며, 우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앉아, 일어섯, 뒤로 취침, 앞으로 취침, 좌로 굴러, 우로 굴러,

씨발, 초장 군기를 잡는 방식이 이렇구나예상은 했지만 아직 훈련복도 지급하지 않은 상황에서 당하는 기분이 더러웠다. 우리들의 더러운 기분은 집으로 돌아간 사복에 그대로 묻어 집에서 걱정하던 어머니의 마음에 큰 상처를 주었고, 며칠을 잠 못 들고 울게 만들었다. 사복은 흙먼지가 묻었고, 우리들의 옷에는 훈련소에서 훈련병들 안전의 기본 조건이라는 군기를 위한 폭력의 흔적이 잔뜩 묻어 있었다.

 

 이반 데니소비치는 1941년 전쟁에 참전, 전투 중 독일군에게 잡혔다가 간신히 탈출하였지만, 독일군의 스파이라는 죄목으로 수용소에 투옥되었다. 자기의 잘못은 독일군에게서 탈출 후 소련군을 만났을 때, 길을 잃었다고 거짓말을 하지 못한 정직이었다. 국가가 부르면 달려가 총탄이 되고, 국가가 꾸짖으면 찍소리 못하고 수용소로 가야 하는 소심하고 정직한 소비에트 연방의 국민이었다. 수용소에서의 인원점검에서 줄을 제대로 안 서고, 뒤에서 개기는 수형자들에게 가하는 간수들의 날카롭고 둔탁한 폭력은 정작 줄을 제대로 안 선 뺀질이들은 피하고, 두려운 눈을 굴리며 시키는 대로 줄을 섰던 모지리들에게 향하듯이, 국가 권력의 피해자들은 시키는 대로 무엇이든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던 정직한 사람들이었다. 위대한 소비에트가 불세출의 영광을 발휘했던 세월이었다.

 

 6.25 전쟁 중 전사하던 우리의 용감한 군인 아저씨들이 마지막으로 외치던 말이 이라고 회자되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빽이 있었다면 전쟁터에 징집되지도 않았고, 총 맞아 죽을 일이 없었다는 것을 생각하며 마지막으로 뱉은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나 자신을 졸로 본 사회에 대한 회환이었을 말 같다는 느낌이 든다. 다만 한 조각이라도  진실을 품고 있는 말이었으니 세상에 오랫동안 살아 돌아다녔다. 지금도 엄연히 분리된 3권의 고위직들이나, 방구깨나 뀐다는 유력자들이나 그들의 아들들은 체크 앤 밸란스를 유지하여 너도나도 져야 할 국방의 의무를 한통속으로 회피한 경우가 많다. 무슨 병인지 젊은 시절 한때 군대를 피해 병마에 시달리다가도 잠깐 뒤면 건강해지는 비결은 3권 통합을 이뤄 총화단결한 비법 덕이리라.

 

 훈련소에서 불렀던 군가 속에는 충성 같은 이념의 말들이 잔뜩 들어있다. 내 한 몸 죽어 나라가 선다면, 불꽃 같이, 초개와 같이 목숨을 던지겠다는 결의가 가득 있다. 그것은 거짓말이다. 우리는 피할 수 없어 군대를 갔다. 만약 전쟁이 터졌다면 우리는 입으로만 떠들며 젊은이를 사지로 모는 늙은이들을 위해 죽었을 것이다. 다행히 우리는 전쟁을 겪지 않았다.

 

 솔제니친은 이 소설에서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기만을 희망하는 소망도 그리 길지 않은 수형 동안에 잊어버리게끔 만들 정도로 하루하루 살아내기에 버거운 일상을 단 하루만 소개한다. 국가권력의 비정함, 부패도 목놓아 강조하지 않는다. 수형생활을 하는 죄수들의 단 하루를 건조하게 소개하는 것으로 우리는 당시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슈호프를 따라 하루를 보내다 잊은 듯했던 논산훈련소 기억이 떠올랐다. 슈호프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누구나 자기의 고통이 제일 절실한 기억이다. 나에게는 수용소와 가장 비슷한 경험이 군대의 기억이다. 슈호프의 고통이 비록 절대적으로 비참하여 듣는 사람이 슈호프와 비교한 나를 욕하더라도 어쩔 수가 없다.

 

 국가와 민족을 이야기하면서 자기의 배를 채우는 이들은 2022년에도 세계 여기저기에 있다. 우리라고 다를 것이라는 확신은 금물이다.

 

추신 : 자대 생활할 때, 주일 한낮에 북한의 공습경보를 듣고는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는 결의를 그때 나는 그래도 했었다. 다행히 이웅평이 미그기를 몰고 귀순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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