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고금과 동서를 구분 않는 그 지루함, 그리고 언뜻 보이는 찬란함.
녹턴,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사람은 어떤 존재일까요? 자꾸 묻기 시작하는 것이 철학의 시작이라고 하죠. 묻고 답하고 다시 묻는 과정에서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살고, 어떻게 사는 것이 폼 나게 사는 것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어떤 지 확인하면서 다시 질문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철학자들은 질문을 하고 답을 얻는데 일가를 이룬 사람들일 것입니다. 하지만 존경해 마지않는 철학자들의 질문은 애초 왜,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전 그들이 살았던 환경, 건강, 가족, 만났던 여성들(또는 남성들)이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믿습니다. 평범했던 주변의 사람들과 그들이 만든 환경으로 인하여 생각의 씨앗을 뿌리고 밭을 일궈 수확을 하며 생각의 지평을 넓혔다고 믿고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건강이 좋지 않아 매일 죽음을 생각했던 철학자의 주제는 죽음에서부터 그 지평을 넓혔을 것입니다. 평범함에서 시작한 비범함, 평범함과 비범함이 변주를 이루는 것이 사람의 삶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유명한 가수와 그런 유명한 가수와 결혼하는 것이 성공 그 자체였던 여성은 결혼을 합니다. 이들이 살면서 의도하지 않았던 사랑이 싹트고 맙니다. 원래 공학적인 짝 맞춤은 사랑이 필요 없는 것임에도 의도하지 못한 사랑이 싹트고 만 것입니다. 아마도 20년쯤 살았을까요? 이젠 퇴물이 된 가수는 부인이 더 늙기 전에 다른 성공한 사람과의 재혼을 위해 헤어지길 결심합니다. 남편의 결심을 거부하지 않는 부인은 서로 눈물 흘리며 헤어집니다. 헤어진 여성은 또 다른 성공적인 재혼을 위하여 성형수술을 합니다. 시장에서 팔리려면 예뻐야 하니까요. 성형수술이 성공의 열쇠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여성만이 아닙니다. 실패자형 추남이기에 뛰어난 음악적 재능이 사장된다고 믿는 남자도 성형수술을 받게 됩니다. 이 남자는 음악적 재능의 지평을 넓혀 성공했을까요? 그렇지 못하여 누나네 가게에서 일이나 도와주며 숙식을 해결하는 지루하고 불편한 삶을 살진 않았을까요? 성공적인 성형수술 후 이 여성의 새로운 결혼생활은 과연 찬란할까요? 남편이 바람을 피우거나, 아내가 남편을 지루하게 느끼지는 않았을까요? 지루한 인생에서 피할 길이 있다면, 적어도 지루함을 견딜 수만 있다면 사기꾼의 말에 현혹되거나, 그저 그런 거짓말을 속아주듯 속는 일은 없을까요?
사람들의 삶의 족적을 볼 기회가 있다면, 우리는 화려함으로 치장한 사람들의 등에 붙은 지루함을 볼지도 모릅니다. 비겁한 사람의 마음속에서 불타는 용맹을 보게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사람을 웃기는 개그맨의 울음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죠. 인생의 화려함은 지루함이 뒷배경이 되어야 화려해 보이고,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삶의 지루함은 찰나에 지나지 않은 화려함이라도 대비가 되어야 참아낼 것 같지 않습니까?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녹턴은 5편의 작품이 실려 있습니다. 별 볼 일 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이 전하는 별 볼 일 있을 듯한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별 볼 일 없다고 말을 했지만 볼품없이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한없이 처량하게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그래서 자기가 얘기하는 사람들의 화려함을 강조하지만, 사람들의 삶은 한순간 벅차게 아름다운 순간이 사진 찍힌 후에는 지루한 일상이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이야기꾼의 그저 그런 일상이 너무 어둡지 않듯이, 벅찬 아름다운 순간을 누린 이야기 속 사람들이 결코 눈부시지 않습니다. 결국 이야기꾼이나 그 속의 사람들이나 모두 비슷한 역사를 쓰고 있는 것이지요. 이 책을 읽는 과정이 밋밋했습니다. 무언가 힘이 빠지고, 축축한 양말을 신은 듯 불편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우리들이 살아온 이야기는 아닐까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이야기를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이 질문의 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은 어떤 존재일까요? 인생은 과연 즐거울까요? 우울할까요? 질문에 이은 답들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래도 빅데이터를 이용해 확인한다면 그게 그것이다는 결론이 나오지 않을까요? 비슷하니 어울려 살고, 서로 다르니 약간은 떨어져서 살아가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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