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생활2 : 반딧불 초갓집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 싶어’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이 누구나 시골집을 짓거나 사려고 하면 떠 올리는 노래다. 가끔은 전원생활을 동경하는
엉뚱한 젊은이들도 있지만 노년의 삶을 준비하는 분들이 태반이니, 남진의 노래를 생각한다는 것이 이상할 일은 아니다.
무주의 형님집을 빌려서 살면서 느낀 것이 있다. 주거생활의 불편을 초래하는 집의 구조나 시설물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진장 눈이 온다는 무주의 춥고 긴 겨울을 견디려면 난방시설이 편해야 한다. 난 기름보일러가 편했다. 안방의 스위치를 켜고
온도를 조절하면 시골의 방들은 금방 따뜻해졌다. 기름이 떨어질 때쯤 연락만 하면 금방 보일러의 기름통을 채워주었다.
화장실도 수세식이 위생적이다. 어차피 거름으로는 거의 사용을 하지 않는 현실에서 푸세식 화장실을 권장할 일이 아니다.
주방도 입식으로 연료는 가스를 사용하는 것이 편리하고 효율적이다.
단 전제가 있다. 시골집은 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무주집의 경우 화장실을 제외한 본채의 크기는 12m * 5m = 60㎡ 정도이다.
방3개의 면적은 훨씬 작다. 보일러실과 부엌, 그리고 난방을 않는 마루를 빼면 절반의 크기로 줄어든다. 이정도의 면적이기에
보일러를 켬과 동시에 방이 따뜻해진다고 뻥을 칠 수가 있다. 한 겨울 등유 난로를 켜면 바닥이 찬 마루에서 한담을 나누는 것도
가능하다. 난방을 위한 기름값도 그렇게 부담스럽지는 않다는 것이다. 특별히 구들을 놓고 아궁이를 만들어 시골생활을 즐기는 것은
별채를 지어 즐기는 것을 권한다. 우리의 일상은 취미활동이 아닌 생활이기에 매일 아궁이에 불 지피라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작은 집의 장점을 하나 소개한다. 좀처럼 우리 부부를 따라다니지 않는 큰 딸이 여름휴가를 무주에서 보낸 날이 있었다.
안방에서 뒹굴뒹굴 굴러다니던 아이가 엄마, 아빠를 찾았다. 각각 다른 방에서 책을 읽고, 카톡을 하던 나와 아내가
"응. 왜?"하고 박자를 맞췄다.
"여기 딱 내 스타일이야. 매년 휴가는 이리로 와야겠어,"라고 한다. 기뻤다. 시골을 싫어할 젊은 아이가 매년 여기로 오겠다지 않는가.
그 이유는 간단했다. 각자 방에서 뒹굴면서도 대화를 할 수 있고(그래서 혼자가 아니라는, 우리는 가족이라는 일체감을 느낀다는 얘기겠지?)
청소도 방 한가운데에서 도깨비 빗자루로 쓰윽 한 바퀴만 돌면 힘들지 않고 청소를 할 수 있다(제가 언제부터 제 방 청소를 했다는 것인가)는
것이다.
무주군 안성면 덕유산 자락에 시골집이 있다. 집 대문으로 가려면 잠실이 있는 골목을 조금 걸어 들어와 잠실 옆 대문을 지나야 한다.
대문 옆에는 두 칸의 문간방이 있고 마당을 건너 본채와 문간방과 마주한 창고가 딸린 한 칸의 별채가 있다. 집의 앞과 뒤를 두른 돌담은
세월이 밟아 사람의 손길을 기다리고 돌담에 기댄 듯 감나무 두 그루가 있다. 한 그루는 죽었고, 한 그루는 생기가 있다. 마당에는 텃밭이
손바닥만큼 있어 쪽파가 숨을 쉬고 있다. 처음 이 집을 보고 고치면 훌륭한 집이 될 것 같았다. 잠실은 찻집으로 만들면 독특한 사랑방이
될 것 같았다. 그곳에는 부산 형님의 이모가 홀로 사시고 계셨다. 이모님에게 인사를 하러 가는 형님 내외를 따라가 매력덩어리 집을 본 것이다. 그 이모님이 돌아가셨다. 장례를 치르고 한참을 기다려 부산 형님에게 문자를 보냈다.
부산형님 내외와 우리 부부가 사용하는 공동카톡방을 사용했다.
‘형님, 안성 돌아가신 이모님 집은 어떻게 하신답니까? 혹 파시는지?’
잠시 후 문자가 부산에서 숨가쁘게 뛰어왔다.
‘작년 가을에 물어보니 큰형님이 이모가 사시던 건물 헐고 조립식으로 작은 집을 지을 생각을 갖고 있던데... 지금은 모르겠네요?..’
‘파실 생각이 있나 해서요? 고쳐서 쓰면 어떨까 해서요?’
아내가 전화를 했다.
“응. 왜?”
“당신, 왜 시골집을 물어보세요?”
목소리가 파란 것이 뿔이 난 것 같았다.
“그 집을 사면해서. 왜?”
“그런 일이라면 먼저 나하고 상의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혼자 살려고요?”
“아니, 당신도 그 집보고 좋다고 했잖아?”
“그 때는 그랬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요. 마당도 좁고 집도 너무 작아요. 아이들이 시골에 오면 너무 옹색해 보일까 싶어 싫어요.”
“응 알았어. 미리 상의 안 해서 미안해.”
전화가 끊어지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부산 형님에게 문자를 보냈다.
‘따로 알아보실 건 아닙니다. 형님.’
아내와 아이의 동의를 모두 구했다고 생각했거나 쉽게 승낙할 것으로 착각한 것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었다.
‘멋쟁이 높은 빌딩 으시대지만, 유행 따라 사는 것도 제멋이지만, 반딧불 초갓집도 님과 함께면’
나는 좋다고 생각했는데 내 님은 딴 생각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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