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시골생활1

무주이장 2018. 4. 24. 10:04

시골생활 1



“어이 사무장 이번 주는 언제 올 거야?”

몸집은 나보다 절반이나 작은 형님의 큰 목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달려온다.


무주를 찾아온 것은 부산에서 8년여를 살면서 이웃으로 알던 형님의 고향집이 비어 있어서였다. 바깥채 두 채에 본채가 한 채인 집인데,

바깥채는 따로 세를 주었지만 본채는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난 뒤에도 마치 부모님이 그대로 계신 듯 어느 것, 어느 곳 하나 손대지 않고

그대로 간직한 집이었다. 회사에서 밀려난 뒤 쉬고 싶다는 생각으로 부산에 전화를 걸어 집을 사용할 수 있는지를 물었고 형님은 즉각,

그리고 기꺼이 승낙을 했다. 승낙 후 혼자서 내려온 곳이 이곳 무주였다.



무주에서 책을 실컷 읽고, 지겨우면 산을 가고, 그리고도 시간이 남으면 글쓰기 연습을 하기로 했다. 산골의 대명사, 반딧불이 사는 곳, 전라도 땅

어느 것 하나 나에게 연고가 있었던 곳은 아니었지만 평소 시골생활을 동경하던 나에게는 편안한 곳이었다.



아침이면 밥을 짓고 간단하게 찌개를 끓여 아침을 먹는다. 설거지를 하고, 조그만 소반에 책을 펴고 읽는다. 엉덩이가 아프면 방석을 내려서 앉고,

허리가 아프면 누워서 책을 읽었다. 본채는 방3개와 마루, 부엌 그리고 보일러실로 이루어 졌고 화장실은 따로 떨어져있었다. 아침을 먹고, 책을 읽는

안방의 미닫이문을 열고 마주한 마루 출입문도 연다. 안방의 앞, 마루 양 옆으로 붙은 방문들도 모두 열어놓는다. 모든 문이 개방되면 열리는 세상은

온유함으로 가득하다. 봄기운이 찬 마루를 데우는 듯 따뜻하다. 따뜻한 봄기운에 못 이겨 배낭을 메고 물병에 시골기운이 가득 든 물을 채우고 산으로 간다.

앞섬과 뒷섬이 눈아래 펼쳐지는 향로봉에서 무주읍의 지리를 익힌다. 그리고 머리에 드는 상상을 메모하고는 집으로와 글쓰기의 재료를 씻고 다듬어

먹기 좋게 잘라 찌개를 끓이듯 글을 쓴다. 낡은 컴퓨터의 자판은 내 생각대로 움직이기는 하지만 글이 맛깔스럽지는 못하다.

하루를 보내는 여유가 마음속에서 생겨난다. 얼마만이든가. 이러한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



시골이기에, 받은 퇴직금이 아직 남아있기에, 여유로운 하루를 보내는 행복감에 빠졌기에 잊은 줄 알았던 일 중독증은 재발했다.

약간의 돈이라도 벌 수 있으면, 그리고 무주를 이해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나는 큰돈을 바라는 것도 아니니 일자리를 쉽게

얻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무주군 귀농귀촌협의회의 회장을 찾아갔다. 블루베리를 키우는 대전출신, 자동차 영업맨 출신의 사람이었다. 내가 귀농을 원하니

귀농귀촌협의회라는 단체와 거기의 회장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귀농과 귀촌을 한 분들을 찾아 다녔다. 찾아다니는 과정에서 부남면의 마늘밭에서

일을 도와드리면서 사귄 어르신 부부가 있었고, 무주읍 뒷섬의 포도와 복숭아 농사를 지으시는 형님 부부도 만났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두려움이

도시의 경험이었다면, 새로운 만남의 즐거움을 준 곳은 이곳 무주였다.



매일 세 끼의 밥을 지어먹고, 설거지를 하고, 책을 읽고, 산을 가고, 글연습을 하면서 일중독 증세의 하나로 일자리를 주선하는 군청사이트를 기웃거리다

사무장 구인공고를 보았다. 마을 사업을 지원하기 위하여 무주군이 만든 부서인 마을사업소를 물어물어 찾았다. 사무장이 무엇을 하는 일이며 내가 지원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관련 공무원의 얼굴에서 난색이 보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사무장을 뽑는다는 공고를 하긴 했어도 이미 사람을 정해놓고 올린 것이었다.

여기가 어디라고 그것을 비난할까. 시골의 모습이 조금씩 가깝게 보였다.



귀농귀촌협의회의 사무장을 찾아갔다. 사무장은 무슨 일을 하며, 마을 사업의 위원장의 권한은 어떻는지 등등을 묻다가 사무장이 정보를 주었다.

무풍면에 무풍승지 철목마을에서 사무장을 구한다는 것이었다. 위원장과 만나 사무장일을 따냈다. 귀농귀촌협의회장이 된장공장에서 직원을 찾는다고

 연락도 왔다. 기왕에 하는 일 무주의 본동 마을사람들과 부딪혀 보기로 했다. 협의회장에게 정중하게 그간의 사정을 말하고 사양을 했다.



사무장의 일을 간단했다. 회사에서도 실무를 귀찮아하지 않았던 지라 일은 쉬웠다. 단지 전임 사무장이 그만두고 사무인계를 해주지 않아 일을 다시

정리하는 것이 어려웠다. 사무장으로 무풍면 철목마을의 주민이 되었다.


“형님 이번 주는 일요일 무풍으로 갈게요. 같이 김천에 가서 회 한 접시 할까요?”

말로만 하는 회 한 접시다. 형님은 몸을 뺄 시간이 거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일에 파묻힌 농장주, 돼지들의 아버지, 무풍면 쌀농사의 대농,

그리고 형님보다 더 바쁜 여자의 지아비기에 형수의 눈을 벗어나 나와 같이 김천 횟집을 가는 것은 미션 임파스블에 가깝다.

그동안 나와 김천을 간 것도 1년 동안 단 두 번이었다. 트랙터 부품을 사러 갈 때와 기억나지 않는 다른 일 때문에 간 것.

회는 단지 업무 중의 식사였다.

“좋지. 내려와.”

항상 안 된다, 어렵다, 불가능하다는 답을 하는 형님이 아니다. 무엇이든지 되는 형님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