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저 사람들 안에서 당신을 볼 수 있습니까?
시인은 타인 안에서 자신을 봄으로써 타자와 함께 공동체를 이루며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108쪽) 그래서 그는 타인의 삶과 죽음을 시의 소재로 삼았나 봅니다. 그런데 ‘타자(타인)’는 ‘나’에게 낯선 것, 이질적인 것입니다. 세계에는 그런 것이 지천입니다. 박정희에서 박근혜로 이어지는 “패키지 상품”(번지점프)에 현혹된 것은 우리의 ‘적’이 아니라, ‘산으로 가는 밭’에서도 그렇듯 우리의 부모님이고 지인입니다.(109쪽)
그런데 타자 안에서 자신을 본다는 것이 말만큼 쉽지만 않습니다. 편이 갈렸는데, 사회적 지위가 다른데, 먹고 사는 데 차이가 있는데, 정치적 소신이 다른데 어찌 그런 사람에게서 자신을 볼 수 있겠습니까? 아니 어떨 땐 타인 안의 자신을 간혹 볼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타인을 우리의 부모님이고 지인으로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어려움을 아는지 시인은 “왜 진보적인 가치에 몸을 담은 사람은 자신에게 더 혹독한가”(108쪽) 불만이면서도 끝내 자신을 타인 속에서 보기를 포기하지 못합니다. 백골이 진토 되어 골방에서 나오는 그를 증언하고, 죽어서도 결코 자유롭지 못한 “꽉 찬 빚 속”의 그를 기록합니다. 시인은 백골 속에서 어떤 자신을 보았을까요? 시를 옮깁니다.
백골이 진토 되어
그는 혼자였고
혼자인 것처럼 보였고
그가 늘 혼자인 것처럼 보인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머니와 누이는 있었으나 없었고
밤마다 온몸을 다해 그를 붉게 안아준 건
값싼 참이슬 몇병.
나침반처럼 자꾸 흔들리는 마음의 극점을 잡아준 건
먹어서 배고프지 않던 막걸리 두어병.
악취를 따라 들어온 지구대 소속의 흰 장갑에 실려
드디어 그가 이 세상, 꽉 찬 빚 속으로 하얗게 나오고 있다.
시인의 속이 까맣게 탔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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