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끝은 끝으로 이어진. 박승민 시집. 창비시선448 5

무주이장 2024. 2. 12. 08:57

 사람이 죽었습니다. 한두 사람이 죽은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은 하나의 우주라고 했는데, 하늘에 구멍이 뚫릴 정도로 많은 우주가 죽었습니다. 현장을 수습하며 브리핑을 하던 소방책임자의 손이 덜덜 떨고 있었습니다. 숱한 사고 현장을 수습하던 그 조차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광경에 전율했습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죽은 자의 이름을 봉인하고 얼굴을 가린 채 사라진 우주를 추모하겠다고 합니다. 분명 정부 지침 어딘가에 있을 근조 리본은 사실을 뒤집듯 공무원들의 가슴에 뒤집혀 달렸습니다. 근조는 사라졌습니다.

 

 사람의 가치를 정권의 안정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생각하거나, 최소한 어떤 무모한 가치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습니다. 지키려던 그 가치는 무엇일까요? 국력을 채우는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고 함부로 얘기하는 머리 길고, 한글도 못 깨친 사이비 무당의 말에 산 사람의 생기를 먹고사는 악귀가 떠올랐습니다.

 

 역사의 발전은 도로와 철도가 건설되고 물질적 풍요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역사의 발전은 ‘사람다움’이 구현되는 것을 뜻한다고 믿습니다. 몽매한 점파치를 선생으로 믿고 사는 사람들이 사람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역사를 후퇴시킵니다.

 

 시인은 떨어지는 오리털 하나에도 ‘들썩’을 느낍니다.

 

오리털 하나가 떨어져 들썩

 

 오리가 화낼만도 했다.

 자기의 털을 뽑아 온몸을 감고 있었으니.

 

 그러나 오리여,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안 되겠니?

어떤 인간은 오소리의 쓸개나 사슴뿔, 사향노루의 향낭보다도 못한 게 사실이다. 누군가의 핸드백에 붙여진 비단뱀의 껍질보다도 싸다. 매매가 안 되는 인간의 근육은 다만 벗겨지지 않았을 뿐이다. 불판에 올라가 구워지지 않았을 뿐이다. 은근한 눈짓과 사람 좋은 표정은 더이상 구매 대상이 아니라서 냉골의 침침한 바닥에 누워 천장의 늙은 장미꽃을 향해 혼자 벙긋거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노골적으로 가죽을 벗겨내는 것이 솔직한 일이라고?

안심이든 등심이든 불판에 올라 누군가의 입에 들어가는 편이 덜 고통스러울지도 모르겠다만 인간이 인간을 직접 뜯어먹는 행위는 ‘문명 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범죄이다. 그러니 구매되기 전에는 몸은 있어도 ‘없는 존재’로 살아가는 유령들이 유행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니겠니. 아침마다 양복을 입고 등산로에 출몰하는 좀비들의 이야기를 너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활짝 웃으며 바나나를 쥐여주던 어떤 손들을 생각해보렴. 인간은 아직 나누어 먹는 ‘즐거움의 신약’을 개발하지 못했다. 염치없지만 이런 속사정을 네가 좀 봐주면 안 되겠니? 물론 너의 오리털 한 오라기는 내가 잘 보관해두겠다만.

 

 발바닥의 오리만 한 햇빛 속에서 인간의 털 하나가 떨어져 살짝 떠올랐다가 실없이 가라앉는다.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