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씨 노인에 이은 심만평(75세) 씨 소식
농사를 돈을 보고 짓냐? 그렇게 얘기하며 꼭두새벽에 밭으로 가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자식 입에 들어가는 밥을 보는 부모 마음이 그렇게 보기 좋다면서요? 그래서 자식들이 “그것 몇 푼 된다고 고생을 하십니까? 제가 버는 돈으로 쌀은 먹을 만큼은 되니 이제 그만 농사지으세요.” 자식의 타박 정도야 참을 만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추수 때면 바리바리 자식에게 보내는 아내의 손길에 자꾸 눈이 갔습니다. 그런데 변하지 않는 게 어디 있겠습니까? 허리 굽혀 밭만 보던 농부도 돈 계산쯤은 해야 사람대접받는 시절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돈이 되지 않는 밭은 해고됩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닌가 봅니다.
밭이 해고되다
쌀 이십 키로가 손자들 피자 네판 값도 안 된다 카이!
논을 흙으로 덮고 밭으로 업종 변경했던 심만평(75세)씨가 밭농사 이년 만에 생강 값이 주저앉자 주저 없이 쇠스랑을 던졌다.
밭은 또다시 해고당했다. 도꼬마리 씨앗이 뱀의 혀처럼 풀어져 이 바람 따라 우르르, 저 바람 따라 우르르 애비 없는 자식처럼 남의 삼밭으로 몰려다녔다. 마을의 메기입들이 일제히 만평씨 쪽을 노려보았지만 만평씨는 모른 척했다. 약을 되우 쳐서 고들빼기는 물론이고 민들레 뿌리나 약쑥도 걷어 먹을 수가 없다는 것이 노인네들의 불만의 일절이었지만, 그보다는 어떻게 생으로 멀쩡한 땅을 묵힐 수 있냐는 것이 만평씨에 대한 세간의 중평이었다. 키가 껑충한 명아주에 환삼덩굴이 군용 위장막처럼 덮여서 유격 훈련장 같았지만 그는 문을 굳게 걸어 잠근 자신의 초록 공장을 휙, 한번 둘러보고 “돈도 안 되는 것들~” 하고는 휭하니, 시내 부동산을 거쳐 다방으로 출퇴근했다.
논물 찰랑찰랑 비라도 오시는 밤이면 개구리 일가족, 옛 집터라도 다녀가는지 봄밤의 흰 꽃잎들 자지러질 듯 떨어졌다.
경지 정리된 넓은 들, 논들 사이에 비닐하우스가 빼곡히 들어선 부분들이 군데군데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쌀 농사를 짓지 말고 현금보상을 받으라는 권유에 몇 번이나 망설이든 사람들이 논을 밭으로 바꿉니다. 제 계절 맞춰 시장에 나오는 농산물은 똥값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앞당겨 시장에 내려고 저렇게 비닐하우스를 짓는 것이지요. 이제 농부는 세계의 작물에 대한 정보도 알아 농사지을 작물을 선정해야 합니다. 농업기술지원센터에는 오늘도 새로운 작물 재배법을 배우려고 머리 희끗한 청년농부들이 60이 넘어 교실을 채웁니다. 도시나 농촌이나 해고당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건 같은가 봅니다. 심만평 씨는 은퇴할 나이가 아직도 몇 년 남았는데 밭을 해고하고 스스로 실업자가 되려고 결심했나 봅니다. 그나저나 손자들 피자값은 이제 어떻게 봉창하려고 그러는지 제가 오히려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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