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사람풍경. 김형경 심리여행 에세이. 사람풍경 간행

무주이장 2023. 12. 16. 10:40

문학적 향기가 나는 정신분석서?

 

  ‘문학적 향기가 나는 정신분석서’ 책의 뒷면에 작가의 책을 소개하는 글귀입니다. 저자의 약력을 보니 시와 소설을 쓰며 문학을 전공한 작가입니다. 문학은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려면 사람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을 알려면 그 사람이 사는 세상도 알아야 합니다. 어떤 환경에서 살았고, 살고 있기에 저 사람은 저런 생각과 행동을 할까 이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정신분석이라고 다를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작가가 쓴 에세이는 정신분석에서 쓰는 용어가 계속해서 나옵니다. 비전공자의 불리함을 통섭의 수단으로 사용하여 단어 사용의 제한을 이겨내면서 사람의 정신과 심리를 분석하는 점에서 경신술이 대단합니다. 무협지에서 나오는 경신술은 무예가 깊어야 시전을 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그렇다면 작가의 에세이에 불만을 가질 이유는 없을 텐데 읽을수록 자꾸만 목에 가시가 걸린 듯 불편했습니다. 그 이유를 제 나름의 기준으로 살펴보겠습니다.

 

  ‘틀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틀니 딱딱’이라는 말의 줄인 말이라고 합니다. 입에 틀니를 낀 노인이 딱딱거리면서 말하는 모습을 폄하하는 신조어입니다. “틀딱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탄핵정국을 전후하여 박근혜를 지지하는 노인 세대와 탄핵을 요구하는 젊은 세대 간의 갈등이 고조되는 과정에서 노인 세대에 대한 혐오가 확산”(김태형의 가짜 자존감 27쪽)되면서 유행한 말이라고 합니다. 혐오를 위키백과에서 검색하면, 공포와 불안 강박 등의 용어가 연관되어 설명됩니다. 틀딱이라는 신조어 설명이 여기에서 멈추면 무언가 불편합니다.

 

  젊은이가 노인을 혐오하는 이유는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어린 시절 남달리 손자를 싫어한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틀니에 투사되었을 수도 있고, 할아버지가 주무시면서 물이 든 유리컵에 담겨 둔 틀니를 보고 느꼈던 공포심이 원인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부정적인 이미지가 겹쳐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본 노인들의 불유쾌한 행동이 원인일 수도 있습니다. 문학이 개인의 감정과 심리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설명은 불완전합니다. 마치 태백산맥이라는 소설이 개인들의 갈등에만 초점을 맞추면 시대가 만든 부조리의 희생이 된 사람이 보이지 않는 이야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김태형 소장의 이야기를 조금 더 인용해 보겠습니다. 젊은이들이 노인 세대를 애정과 존경의 대상으로 간주하기보다 혐오와 공격의 대상으로 간주한 것은 젊은이들이 예의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만약 젊은 세대가 어른 세대로부터 존중받으며 자랐다면 노인들을 지금처럼 혐오했을까?"라고 질문을 한다면 여러분들은 어떤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극우 사대 세력이 지배하는 병든 세상이 아니라 건강한 세상에서 살고 싶어 한다는 젊은 세대에게 노인들은 어떤 대답을 했습니까?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뭐가 병든 사회야. 지금 같은 세상에서 계속 살아”로 대답한 노인들이 없었을까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세상도 모르는 것들이, 배를 곯아본 적도 없는 것들이”라면서 무시한 노인은 없었을까요? 그러면 그런 노인들의 심리는 어떤 심리학 용어나 정신분석학의 용어로 정의될까요? 간단하게 개인의 부족함이나 트라우마나 불안, 공포, 무의식, 우울의 용어로 중언부언 설명이 가능할 것입니다. 여기에 문학의 섬세한 표현이 가미된다면 글은 더욱 길어지고 설명은 창연할 것입니다.

 

 

사람의 심리와 정신에 영향을 주는 사회적 환경

 

  김 소장은 노인은 나이 들어서 갑자기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분명 자신이 어렸을 때에도 의견을 존중해주지 않는 부모 밑에서 자랐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면서 결국 한국의 젊은 세대는 어렸을 때에도 부모에게 존중받지 못했고,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부모에게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그러니 젊은 세대가 노인 세대에게 혐오를 표현하고 증오와 적개심을 드러내는 것은 필연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합니다.

 

  술에 취해 경찰지구대에서 행패를 부리는 행위는 과거 일제강점기 순사와 이승만 독재시대 폭력적인 경찰에 짓눌린 것에 대한 반작용이고, 지금 교사들에 대한 학부모의 폭력은 자신들의 어린 시절,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교사들에게 당한 피해를 자기 자식들도 당할지도 모른다는 심리적 트라우마 때문이라는 설명은 너무 나간 걸까요? 개선책으로 개인을 비난하고 처벌하면 끝날 수 있을까요? 

 

  이런 이유로 ‘문학적 향기가 나는 정신분석서’라는 표현이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한 정신분석서’로 오독되면서 목에 가시처럼 걸렸습니다. 작가가 “이제 나는 인간의 속성에 대해 이렇게 이해한다. 한 인간의 내면에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댄서와 화가, 육식동물과 초식동물, 어둠이 밀려오는 밤바다를 지켜보면서 울어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네팔을 여행할 수 있는 사람과 여행할 수 없는 사람이 모두 존재한다고” (사람풍경 164쪽) 얘기를 하지만 한 인간의 내면에 드리운 사회적 역사적 환경적 경험과 그것이 개인에게 준 영향에 대한 얘기가 빠져 아쉽기만 합니다. 그렇지만 이건 비전문적인 그래서 이 단어 저 단어 이 생각 저 생각을 제한 없이 끌어들여 사용한 저의 편협성 때문일 수 있습니다.

 

  책의 추천사를 쓴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는 ‘사람풍경’을 목욕을 막 끝낸 사람의 비누 냄새처럼 인간의 무의식을 생생하게 보여준다고 하면서 이 책을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문학적 향기가 나는 정신분석서’라고 말하겠다고 했습니다. 아! 전문가의 말에 제가 딴지를 건 꼴입니다. 불안과 공포가 무의식에서 튀어나옵니다.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